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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 박 부장

2024-09-04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엽편 소설>
총리실 박 부장
'글. 박순철'

    “힘들긴 이거나마 많았으면 좋겠수.”
    발음도 어눌하고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들고 있던 찌라시를 손수레에 얹으며 힐끔 바라본 젊은이의 얼굴이 허여멀끔하다. 이 근방 사람은 아닌 듯하다.  
    “어머니 아침 식사 안 하신 것 같은데 우선 이거라도 잡수세요.”
    젊은이가 건네준 우유와 빵을 받아든 손에 드러난 굵은 힘줄이 지도에서의 철도 표시처럼 퍼렇게 보였다.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아왔으면 손까지 저리 험상궂게 변했을까. 그것을 바라보는 젊은이 마음 또한 아릿해 보였다. 
    “어머니 정부에서 지원해 줄 텐데 이렇게 고생하시지 않아도 되잖아요?”
    “지원은 무신, 얼어 죽을 지원, 우리 같은 늙은이에게 누가 관심이나 두간디?”
    노인의 말은 퉁명스럽기 그지없다. 마치 젊은이가 장본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까지 흘긴다.
    이웃집 남천 댁은 매달 받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비와 노령연금이 30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호적에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국민기초생활 보장수급자 대상이 아니라는 이장의 말을 들었을 때는 공연히 아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어머니! 더운데 이 고생하시지 말고 어서 집으로 들어가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젊은이는 폐지가 절반쯤 담긴 노인의 손수레를 빼앗다시피 밀고 한참을 가니 다 쓰러져가는 슬레이트 지붕의 집이 나왔다. 돌로 쌓은 담 위로 애호박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이다. 마당 한쪽으론 쌓아놓은 빈 상자와 종이뭉치가 작은 언덕을 이루었다. 그 모습만 본다면 사람이 사는 집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방문을 열고 들어간 노인이 유리컵에 물을 떠 오는데 얼마나 오래  썼는지 누렇게 색이 바래있다. 젊은이는 그 물을 받아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저도 어린 시절 이런 집에서 살았어요. 어머니를 보고 있으니까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아파요. 어려서는 배도 많이 곯고 추위에 무척 떨었거든요.”
    젊은이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에 생기가 도는 듯하다. 
    “초등학교에 갔다 오면 나뭇지게 지고 산에 가서 땔나무 해오고, 쇠풀도 베러 다니고 그랬어요.”
    “….”
    “저는 지금도 그때 어머니가 나물에 찬밥 한 덩어리 넣어서 비벼주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나물 먹을 줄 알어?”
    “그럼요. 보릿고개 넘을 때는 배를 얼마나 곯았다고요.”
    노인과 젊은이의 대화는 키가 껑충한 사내가 나타나면서 끊어졌다. 
    “부장님 여기 계셨군요.”
    “그래 군수 영감은 뭐라 하던가?”
    “재정이 열악해 더 이상의 지원은 어렵다고 합니다.” 
    “이런 고약한 사람들이 있나, 그래 이렇게 고생하시는 어른들을 먼저 돌봐드려야지. 어서 군수 연결해,”
    껑충한 사내가 멀끔한 사내에게 휴대폰을 건네주며 허리를 90도로 숙인다.
    “군수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총리실 감찰반 박 부장님 바꿔드리겠습니다.” 
    “아! 군수 영감이요? 아니 이런 어려운 분들 도와드리라고 예산 내려보냈더니 왜 엉뚱한 곳에 쓰고는 안 된다는 겁니까?”
    멀끔한 사내의 말투는 협박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여차하면 구속이라도 시킬 것처럼 서슬이 퍼렇다.
    “알았어요. 알았어. 내 올라가면 충분히 반영할 테니 우선 이분들 먼저 도와드리세요.”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썩은 새끼줄이라도 잡고 싶던 절박한 심정이었는데 자신을 도와주겠다며 군수에게 호통치는 젊은이가 하늘같이 우러러 보였다.
    “김 과장! 군수 영감이 해주겠다고 했으니 다시 가서 확인해, 그리고 여기 이 어머니 사정도 딱하니 다른 사람 서류 중간에 끼워 넣어서 국민기초생활 보장수급자로 만들도록 해”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어머니는 자제분이 있는 관계로….”
    “무슨 말이 그리 많아, 지금 전화하는 것 못 들었어. 어서 가보기나 해”
    “예,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장 이번 달 수당 30만 원 이상 입금하라고 하고 통장에 찍어 와.”
    껑충한 사내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굽실거린다. 껑충한 사내가 멀끔한 사내의 눈치를 살피며 노인에게 다가와 뭐라고 속삭인다. 노인은 장롱을 뒤져 도장과 통장, 주민등록증까지 그 사내에게 건네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멀끔한 사내는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군청 강당에서 전화금융사기 예방 교육이 있는 날, 각 동리에서 참석한 사람이 넓은 강당을 절반 정도 채웠다. 교육을 받으면 선물 준다는 말에 몰려온 노인이 대부분이다.
    “교육에 앞서 어제 총리실 박 부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비 받게 해준다고 해서 통장과 도장 건네주신 분 손 한번 들어보세요.”
    “…”
    “없으시군요. 우리 관내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면 오늘 전화금융사기 예방의 명강사 박종택 님을 소개하겠습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장내가 술렁거린다. 연단에 오르는 박종택을 보는 몇몇 할머니들이 깜짝 놀란다.
    “아니, 저 사람은 어제 돈 타게 해준 그 젊은이 아녀?”
    “그럼 저 사람이 사기꾼이란 말이여?”
    “저는 먼저 여기 계신 어르신들께 용서해 달라는 의미로 큰절부터 올리겠습니다. 어제는 제가 어르신들이 속는지, 안 속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잠시 총리실 박 부장 행세를 했습니다만 아쉽게도 어머니 다섯 분께서 저에게 속으셨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아니, 통장에 입금된 돈까지 확인 했는디….”
    한 할머니가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자 다른 곳에 있던 할머니 한 분도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말을 했다.
    “맞습니다. 30만 원씩 입금했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인출한 사실은 모르고 계셨지요?. 통장 페이지를 넘겨 출금하고 그 페이지가 보이지 않게 풀칠해서 붙였기 때문입니다.”
    “비밀번호는 어떻게?”
    “비밀번호는 한결같이 뒷장에 씌어있었습니다. 아니면 집 전화번호이거나 생년월일이었습니다.”
    “그럼, 우리 통장에서 돈을 다 찾았단 말이여?”
    격한 음성이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분명히 30만 원 입금했다가 전에 있던 돈까지 몽땅 찾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원래 통장에 있던 금액만큼 다시 입금했습니다.”
    누가 그런 사기를 당했는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장내가 수런거린다.
    “오늘 제가 받아야 할 강사 수당이 50만 원입니다. 그 돈을 어제 저에게 속은 어머니들께 10만 원씩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그와 같은 사기행각에 말려들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당사자들은 공돈 10만 원보다 사기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안도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