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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따돌림, 데이트 폭력… 한 번도 봄이 온 적 없는 내 인생 어떻게 추슬러야 할까요?

202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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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주간지 K-공감
가난, 따돌림, 데이트 폭력… 한 번도 봄이 온 적 없는 내 인생 어떻게 추슬러야 할까요?
'신기율의 마음 상담소'


내담자 사연
    저는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생활력이 없고 알코올의존증이 있던 아버지는 제가 열 살 되던 해에 행방불명됐고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새벽같이 집을 나가 늦은 저녁에 들어왔습니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단칸방에서 대충 밥을 찾아 먹고 TV를 보다가 혼자 잠든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어머니의 돈벌이가 불안정하니 1년이 멀다 하고 이사를 했고 전학 간 낯선 학교에서는 자주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성인이 된 뒤로도 제 인생은 암흑기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사귄 남자 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심하게 당해 지금도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있어서인지 회사에 취직해도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그만두는 일이 반복되고 있고요. 자신감이 없으니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쉽지 않고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수면장애가 심해져 깊은 잠을 자지 못합니다. 제 삶을 돌이켜보면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온다고 하지만 제게는 한 번도 봄이 오지 않은 것 같아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 인생은 왜 이럴까요? 어떻게 해야 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까요? (이한나·가명, 34)




 
마음 상담소 답변
    한나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개해주고 싶은 지인 한 분이 떠올랐습니다. 그녀도 한나 님처럼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어머니는 한 분이지만 아버지는 세 분이었거든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의 아버지가 모두 달랐습니다. 집안이 어려워 대학에 가지 못하고 곧바로 취업했는데 입사 하루 전날, 건널목에서 오토바이와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사고 때문에 하루도 회사에 출근해보지 못했고 치료를 받을 수도 쉴 수도 없었습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지요. 몸을 회복하고 다시 회사에 취업해 5년 정도 힘들게 돈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남자 친구가 돈을 모두 가져가버렸습니다. 도박에 빠져 있던 남자 친구와는 그 뒤로 연락이 끊겼고요. 영화처럼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을 거두는 극적인 상황이 일어났다면 좋았겠지만 그녀는 지금도 잔잔한 사건·사고를 겪으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동정 어린 눈으로 그녀의 삶을 바라보곤 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런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누구보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런 생각과 태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명의 아버지를 경험하게 한 어머니를 대할 때는 분노가 아닌 연민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어머니가 선택한 인생에 대해 이해하려고 합니다. 주말이면 자신보다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봉사활동을 다니고 연말이 되면 불우이웃을 돕는 기부도 잊지 않습니다. 언제 문 닫을 줄 모르는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며 자신의 미래가 불안할 수도 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할 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찾아낸 용서의 마음과 이 순간에 집중하는 마음, 그 마음을 실천하는 부지런함이 그녀의 삶을 불행의 늪으로 빠지게 하지 않는 지혜가 된 것이지요.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저는 그녀를 볼 때마다 굽은 나무가 떠오릅니다. 정호승 시인의 ‘나무에 대하여’라는 시에는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만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온갖 풍파를 견디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이리저리 굽은 모습으로 자란 나무는 그렇게 굽어서 더 큰 그늘을 만들 수 있습니다. 굽은 나뭇가지 위로는 더 많은 새가 앉을 수 있으며 큰 그늘 안에서 더 많은 사람이 쉬었다 갈 수 있습니다. 그녀의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녀가 만들어놓은 시원한 그늘이 그녀를 아는 많은 사람에게 조용한 위로를 나눠주고 있으니까요.
    한나 님에게 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한나 님의 삶도 굽은 나무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굽은 나무가 아름다울 수 있듯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한나 님의 삶도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힘든 현실이 마법처럼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수용하고 해석하는 마음은 바꿀 수 있습니다.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삶의 궤적도 바뀌게 됩니다. 한나 님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인생의 겨울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긴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겨울 속에서 자신만의 봄을 만들면 되니까요. 그 봄은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그 마음을 실천해갈 수 있는 인내와 노력으로 만들어집니다. 한나 님, 현실은 과거와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내 앞에 있습니다. 지난 시절 나를 힘들게 했던 과거도 막연한 미래의 불안도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을 가지세요. 그러다 보면 차갑고 시린 겨울 속에서 한나 님만의 봄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하루아침에 힘든 현실이 마법처럼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수용하고 해석하는 마음은 바꿀 수 있습니다.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삶의 궤적도 바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