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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모자이크

2021-04-08

문화


뇌는 남녀로 나눌 수 없다
젠더 모자이크
'당신의 뇌는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이 어우러진 당신만의 독특한 모자이크다'


애초에 ‘남자 뇌, 여자 뇌’는 따로 없다! 
‘화성 남자 vs 금성 여자’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화제작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 하나. 바로 런던 택시 기사에 대한 뇌 실험 사례로, 런던 택시 기사들은 공간 기억을 관장하는 뇌 구역인 ‘해마’가 일반인들에 비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운전사의 경력이 길수록 해마는 더 커져 있었고, 해마의 크기가 커진 만큼 공간 기억이 증가했다. 오랜 시간 동안 런던의 미로 같은 복잡한 거리를 운행하다 보니 이들 택시 운전기사의 뇌는 어려운 공간 경험에 대응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뇌의 ‘가소성’을 설명하는 대표적 사례로, 뇌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만, 반대로 우리의 행동도 뇌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 다프나 조엘은 이처럼 “우리의 뇌는 고정된 기계가 아니다”라는 사실이 남녀의 두뇌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10년 전, 젠더심리학 강의를 준비하던 그는 뇌의 한 영역을 남자에서 여자로, 또는 여자에서 남자로 ‘성별’을 바꾸는 데 30분의 스트레스면 충분하다는 연구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젠더와 두뇌 연구를 착수하게 된다.



    다프나 조엘의 연구진은 성인 1,400명의 두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분석했고, 그 결과 인간의 뇌는 어느 한쪽 성별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상 남녀의 뇌 구조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 즉 애초에 ‘남자 뇌, 여자 뇌’는 따로 없다는 것이다. 덧붙여, 남성적 특성 또는 여성적 특성에 치우친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 차이가 있더라도 ‘남자의 뇌’나 ‘여자의 뇌’로는 구분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다. 
    다프나 조엘은 우리 각각의 두뇌는 남성성과 여성성 그리고 기타 여러 특징이 섞인 ‘고유한 모자이크’라면서, 사람이 어떤 면에서는 남성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젠더 모자이크》는 바로 이 연구를 기초로 집필된 책으로, 뇌에 대한 성 고정관념을 깨고 젠더와 두뇌에 관한 새로운 서사를 제시한다. 
    “인간의 두뇌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 단지 여자에게 흔하거나 남자에게 흔한 특징들이 모인 고유한 모자이크일 뿐이다. 그리고 이 모자이크는 만화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색 조각의 형태처럼 일생을 거쳐 변화한다.”
    다프나 조엘의 연구가 발표되자, 영국 〈가디언〉은 “이제 남성과 여성이 되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축하할 때”라며 찬사를 보냈고, 〈더 타임스〉는 “만약 남성이 화성에서 왔다면 여성도 화성에서 왔다는 의미”라며 이 연구를 치켜세웠다. 
    그동안 ‘남자는 화성,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는 문장의 기저에는 남녀의 뇌가 다르다는 주장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 주장의 끝은 마침표가 아니라 ‘과연 그러한가’라는 물음표였다. 다프나 조엘의 《젠더 모자이크》는 바로 이 물음표를 속 시원하게 풀어주며,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어준다. 남성과 여성은 결코 ‘화성 남자, 금성 여자’로 구분될 수 없으며, 우리 인간은 모두 지구라는 같은 별에서 왔다는 사실로. 
우리의 두뇌를 생식기관처럼 구분하지 말자! 젠더 없는 세상을 제시한 과학 선언문 
    저자 다프나 조엘은 생식기로 인해 익숙한 구분의 논리를 두뇌에 적용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인간의 생식기는 평생 동안 고정된 형태를 유지하지만 인간의 뇌는 그렇지 않으며, 두뇌의 특징 또한 생식기와 달리 두 가지 이상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이나 남성으로 분류할 수 없는 간성 생식기도 있지 않은가. 저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은 두뇌에 성별 나누기를 고집한다면, 다수의 뇌가 간성으로 분류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남녀의 성차에 기초한 ‘서로 다른 뇌’에 실렸던 무게중심이 이제 ‘하나의 뇌’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젠더 구분 자체를 하지 않는 ‘젠더프리 사회(gender-free society)’를 주장하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한 가지 일화를 통해 지적한다. 
    “한번은 한 남성 참가자가 자신을 ‘젠더퀴어(genderqueer)’라고 밝혔는데, 그는 수염을 기르고 귀고리·목걸이 등의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한 여학생이 그에게 왜 그런 외적인 것으로 자기 정체성을 알리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같은 질문을 그녀에게 했다. 왜 화장을 하고 딱 붙는 여성적인 옷으로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광고하고 다니는지. 여학생은 처음에는 놀라는 듯했으나, 곧 깨달았다. 그 남자가 ‘젠더퀴어’ 표시를 하고 다니듯 자신도 매일 아침 ‘여성’이라는 표시를 치장한다는 사실을.” 
    젠더 이분법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해 있다. 어떻게 보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말은 두뇌의 차이가 아니라 화성과 금성처럼 서로 다른 환경과 사회적 위치의 차이를 가리키는 말인지 모른다. 저자는 젠더 편견을 넘어서기 위해 나 자신부터 돌아보자고 제안하며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이 책이 인간 두뇌의 진실을 밝힌 과학 보고서를 넘어서 사회학적 텍스트로 읽히는 이유다.
    “내가 꿈꾸는 세상에는 젠더가 없다. 여성, 남성, 또는 간성의 성기를 가진 인간들이 이 세계가 제공하는 모든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누구는 인형만을, 다른 누구는 공만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은 둘 다를 선택할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고 행동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인간이 해도 되는 것이라면 당신이 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