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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 땅에 전쟁이 멈추길 염원했다

202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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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 땅에 전쟁이 멈추길 염원했다
'조선 삼도수군의 본영 ‘통영’'

    동양의 나폴리 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통영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너른 품에 안겨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코발트빛 푸른 바다는 황금어장일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였으며 백척간두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활약이 깃든 역사의 무대였다. 
호국의 성지 통영에 가다
    통영의 본디 이름은 ‘가배량수’였다. 통영으로 불린 것은 임진왜란 이후이다. 통영이라는 지명은 임진왜란 당시 통영 한산도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에서 유래했다. 통제영은 경상, 전라, 충청 3도의 수군을 총괄하는 조선 수군의 총사령부로서 오늘날 해군본부 격이다. 초대 통제사는 전라좌수 이순신 장군이다.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원균이 칠전량에서 대패한 후 한산도 통제영도 불타 없어지는 비운을 겪었다. 현 위치에 있는 통제영은 전란이 끝난 이후 1603년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두룡포라는 작은 포구에 터를 닦고 1604년 옮겨 지은 것이다. 통제영 객사인 국보 세병관은 그 이듬해인 1605년에 지었다. 한때 ‘충무’라는 지명도 이순신 장군의 시호 ‘충무공’에서 따온 것을 보면 통영은 호국의 성지임이 분명하다.
 
한산도를 포함한 한려수도를 조망하는 한산대첩 전망대

    세병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호위무사처럼 깃발이 자리를 지킨다. 외삼문 ‘망일루’는 세병관의 첫 관문이자 정문이다. 망일루는 해를 조망하는 누각인데 해는 임금을 가리킨다. 누각에서 하루 두 번 종을 쳐 시간을 알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통영의 해상관문인 강구안과 동피랑, 서피랑이 한눈에 담길 뿐이다. 망일루를 지나면 내삼문인 ‘지과문’에 이른다. 문 앞에 서서 편액에 적힌 글자를 한 글자씩 꼼꼼히 따져본다. 멈출 ‘지(止)’, 전쟁 ‘과(戈)’, 즉 전쟁을 멈추는 문이다. 국란을 겪은 뒤였으니 전쟁이 멈추길 간절히 바랐을 터. 그런데 두 글자를 합치면 굳셀 무(武)가 아닌가. 평화는 굳센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음을 일깨우는 동시에 용맹한 조선 수군의 기개가 느껴진다. 
    문을 통과하자 시선이 향한 곳은 세병관이다. 세병관은 정면 9칸, 측면 6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웅장하다. 세병관은 서울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현존하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넓은 건물 중 하나다. 4면에 벽이 없어 개방감이 탁월한 데다 아름드리 기둥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어 매우 간결한 동시에 조선 수군의 본영다운 강직함과 통제영의 기상이 잘 드러난다. 세병이란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으로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왔다.
    즉,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길 바라는 열망이 이 건물에 투사된 것이리라. 편액의 글씨는 137대 통제사 서유대가 썼고, 글자의 크기가 2m에 가까우며, 편액의 총 무게는 1톤에 육박한다. 세병관 내부는 우물마루에 천장은 연등 장식으로 꾸몄다. 마루 중앙에는 임금에게 장계를 올리고 어명을 받는 ‘전패단’이 있다. 여기서 통제사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를 행했다. 한낱 작은 포구에 불과했던 곳에 삼도 수군의 핵심 군사시설인 통제영이 설치되자 전국에서 수많은 물산과 장인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군영을 유지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이고 군수품 생산과 나아가 조정에 보내는 물품까지 조달했다. 
    이 같은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 ‘12공방’인데, 다른 지역의 공방에 비해 통영 12공방의 규모가 가장 컸다고 한다. 12공방은 단순히 공방의 수가 12개라는 뜻이 아니다. 온갖 장인이 모인 수많은 공방이라는 수사적 의미로 공방이 다양하게 많다는 뜻이다. 12공방에서 만든 공예품은 당시 상류층에서 웃돈을 주고 살 만큼 최상급으로 알려졌다. 12공방이 해체된 이후에도 장인들은 꾸준히 기술을 전수하며 맥을 이어갔다. 그 덕택에 지금도 통영 장인이 만든 갓, 소반, 부채, 나전 등은 최고의 명품으로 손꼽힌다. 
 
左) 글자 크기만 2m에 달하는 세병관 편액     右) 세병관 마루 중앙에 있는 전패단
 
몸을 낮추게 되는 곳, 충렬사
    통제영에서 600m 거리에 사적인 통영 충렬사가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선조의 명령에 따라 제7대 통제사 이운용이 세운 사당이다. 현종 대에 남해 충렬사와 함께 사액을 받았다. 이후 삼도수군통제사는 통제영이 해체될 때까지 오랜 세월 봄가을에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충무공 탄신제를 비롯해 제향을 하고 있다. 충렬사 경내에는 고목이 꽤 많다. 그중 시도기념물인 통영 충렬사 동백나무가 먼저 반긴다. 수령이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니 충렬사의 역사와 함께한 셈이다. 동백나무를 지나면 가파른 계단 위에 외삼문 강한루가 올려다보인다.
    강한루 좌우로 비각 여섯 채가 나란히 잇대 있다. 비각 안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통영 충렬묘비를 비롯해 모두 11기의 비가 들어 있다. 이어 내삼문을 지나면 이순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 나온다. 내삼문 문설주를 떠받들고 있는 신방석에는 해태가 새겨져 있다. 이빨을 드러낸 모습이 익살스럽다. 내삼문 양쪽 협문은 중문보다 한 뼘 정도 더 낮다. 몸을 낮추고 몸가짐을 삼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사당에는 《명조팔사품도(明朝八賜品圖)》와 장군의 영정, 위패 등이 놓여 있다. 보물 통영 충렬사 팔사품 일괄은 명 황제 신종이 이순신 장군에게 보냈다는 8가지 보물이다. 유물전시관에 전시 중이다.
 
이순신장군 영정과 <명조팔사품도>를 감상할 수 있는 충렬사 사당
 
 한산도대첩, 그 현장을 조망하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옥포, 당포, 당항포, 한산도 등지에서 승전고를 울렸다. 그 가운데 으뜸은 학익진을 펼쳐 왜군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버린 한산도대첩이다. 그 현장을 발아래 두고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미륵산에 자리한 한산대첩 전망대다. 한려수도조망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수월하게 미륵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상부 승강장에서 나무데크 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전망대에 닿는다. 전망대에서 마주한 풍광은 매우 평온하다. 43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한려수도를 한가득 채우고 있는 섬의 빼어난 자연경관이 더 몸서리치도록 아름답게 보인다. 
    1시 방향에 넓게 펼쳐진 한산도를 중심으로 왼쪽에 죽도, 화도, 방화도가 편안하게 누운 듯 자리하고, 오른쪽에는 용초도, 비진도가 아득하다. 내친김에 미륵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따라 이동한 마지막 여행지는 이순신 공원이다. 여느 공원처럼 산과 바다를 함께 느끼며 쉬엄쉬엄 걸을 수 있어 산책코스로 제격이다. 주차장에서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큰 칼을 움켜쥐고 바다를 향해 지시하듯 손을 들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마주한다. 때마침 수평선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어디선가 이순신 장군의 엄중한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학익진을 펼쳐라!” 
 
(左)이순신 공원 위치 경남 통영시 멘데해안길 205  문의 055-642-4737    (右)통영시청 문화관광해설사 정윤정
 
통영시청 문화관광해설사 정윤정
    "통제영 관람 코스는 망일루에서 출발해 세병관을 거쳐 12공방을 지나 운주당, 경무당, 내아 등을 관람하면 좋습니다. 특히 세병관은 1605년 세워진 이후 단 한 번도 불이 나지 않은 소중한 문화재인데다, 우리나라 국보 가운데 유일하게 신발을 벗고 객사에 올라가서 관람할 수 있는 곳입니다. 여름에는 무더위까지 식힐 수 있어 통영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피서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