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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총공예의 전통을 예술로 빚어낸 성실의 시간

2022-10-07

문화 문화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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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총공예의 전통을 예술로 빚어낸 성실의 시간
'말총공예 작가 정다혜'

    전 세계 공예 작가가 참가하는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2022년 우승자로 말총공예 작품 <성실의 시간>을 출품한 정다혜 작가를 선정했다. 한올 한올 정성스럽게 빚어낸 <성실의 시간> 안에는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견디고 인내해 온 작가의 시간과 조선 왕조 500년 세월을  이어온 말총공예의 전통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전통 말총공예, 세계적인 작품이 되다
    섬세한 선과 선이 교차하며 만들어 내는 반투명의 독특한 질감과 살포시 놓아둔 듯 유연한 형태, 보일 듯 말 듯 은근한 광택이 익숙한 듯 새롭다. 꾸밈없이 담백하지만 어쩐지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정다혜 작가의 작품 <성실의 시간>이다. 인류 역사와 함께 이어져 온 공예의 장인 정신을 기리고 현대 공예의 탁월함·예술성·독창성을 후원하는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성실의 시간>을 출품한 정다혜 작가를 올해의 우승자로 선정했다. 116개 국가와 지역 작가가 출품한 3,100개 작품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공예 작가로서 이 길로 계속 나아가도 된다는 응원으로 느껴져 정말 기쁩니다. 무엇보다 이번 수상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말총공예의 전통에도 함께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작품을 통해 말총공예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주목받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니 더욱 뿌듯하고 의미 있는 일이죠.” 

 
左) <성실의 시간 (A Time of Sincerily), 말총, 375(W) x 290(L) x 270(H) mm,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Winner 선정작 (사진. 솔루나)
右) <말총-빗살무늬 (Horsehair-comb pattern)>, 말총, 290(W) x 290(L) x 380(H)mm, 202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공예공모전 대상 수상작. 
대구박물관에서  만난, 사람 몸집만 한 빗살무늬 토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사진. 솔루나)


    말의 꼬리털을 이르는 말총은 우리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공예 재료이다. 악기, 탈 등 다양한 공예에 사용되었는데 특히 망건과 탕건, 갓 등 조선시대 다양한 모자의 주된 재료로 쓰였다. 조선시대에 다량의 말총을 구할 수 있는 말 목장은 제주도 지역에 모여 있었으므로 말총공예는 자연스럽게 제주도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정다혜 작가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말총공예를 접한 것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전통미술공예 석사과정을 공부하며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의 지역 연계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였다. 그에게는 오랜 방황 끝에 공예 작가의 길을 열어 준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어릴 적부터 입체 조형물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아서 학부에서는 조소를 전공했어요. 그런데 아직 미숙했던 20대 초반의 저에게는 현대미술의 세계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죠. 이런저런 고민으로 방황하느라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전통공예를 전공하며 오랜 역사라는 굳건한 토대에서 위안을 느꼈지만 여전히 ‘나의 길’은 보이지 않았죠. 그런데 말총공예를 접하는 순간 이거라면 나만의 작품을 해 볼 수 있겠다,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01) <말총원형 모빌>, 말총·황동선·아크 릴구슬, 2022 (사진. 솔루나)  
02) 정다혜 작가는 모든 작품을 전통 말총공예 장인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03) <말총원형 노리개>, 말총·매듭술·아크릴구슬 2020 (사진.솔루나)


수백 년 역사에 기대어 새로운 길을 열다
    시작은 문화상품 개발이었다. 망건장 보유자와 탕건장 보유자로부터 말총공예의 기본을 전수받은 정다혜 작가는 가볍고 투명한 말총공예의 물성이 돋보이는 모빌 상품을 개발했다. 시간과 공이 많이 드는 말총공예로 판매 가능한 상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겪었다.
    “전통적인 말총공예 기법대로 촘촘하게 만들면 너무 긴시간이 걸려서 가격을 책정하기가 어려워요. 민간에서 쓰는 말총공예품은 궁에서 쓰이는 것만큼 촘촘하지 않은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간격을 넓히는 방법으로 작업 시간을 줄일 수 있었죠.” 

 
左) 말총. 대형 작품에 쓰는 제주산 말총의 경우 정다혜 작가가 직접 정성 스럽게 세척해 사용한다.
右) 말총공예 작업용 나물틀. 먼저 나물 틀을 작품 형태로 만들고, 나무틀에 맞춰 말총을 한땀 한땀 엮은 후 벗겨 내 완성한다.


    그렇게 완성된 그의 첫 상품이자 첫 작품이기도 한 말총 모빌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대단한 반응이나 큰 수익은 아니었지만 말총공예 작품을 계속 시도할 용기를 얻기에는 충분했다. 이후 목걸이, 노리개, 선추(扇錘)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며 그의 작품세계는 계속 확장되어 왔다.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 보고 천연염색으로 색깔도 내 보고 간격을 조정해 무늬도 넣으며 다양한 시도를 해 봤어요. 어느 정도 능숙해지니 크기를 키워 보고 싶어졌죠. 그렇게 만든 작품이 202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공예공모전 대상을 수상한 <말총-빗살무늬>와 이번에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받은 <성실의 시간>이에요.”
    말총공예로 <성실의 시간> 같은 작품을 만들려면 꼬박 두달을 매일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특히 한 치의 어긋남 없는 정연한 무늬와 형태는 서두르지도 흐트러지지도 않는 평정심을 매 순간 지켜낸 결과이다. 오늘도 묵묵히 성실의 시간을 사는 정다혜 작가에게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말총 공예 작가로서의 정점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이다.
    “작가로서 저의 바람은 피카소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작품으로 멈춤 없이 활동하는 창의적이고도 성실한 작가가 되는 거예요. 아직 말총 외에 다른 소재에는 관심이 없지만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합니다. 다음 시도로는 실제로 착용할 모자를 만들고 있어요. 말총공예가 현대 공예로 주목받게 된 만큼 전통 말총공예의 뿌리를 재해석 해 보고 싶었죠. 미학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뛰어난 말총 모자의 매력을 되살리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