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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뒤웅박

2023-06-14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뒤웅박
'글. 최명임'

    뒤란 처마 밑에 달덩이 같은 뒤웅박이 목을 매달고 있다. 세월에 끄달린 듯 바람에 데인 듯 꺼먹 얼룩이 피었다. 댓개비로 얼기설기 엮어 덧싸기를 했어도 바람이 불면 송두리째 흔들렸다. 어머니께 무엇이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세상 것 다 들었다고 했다. 된바람이 부는 날은 뒤웅박 끈이 떨어지면 어쩌나 마음이 쓰였다.
    어머니는 박을 따면 통박 윗머리에 주먹만 한 구멍을 내어 속은 버리고 뒤웅박으로 사용했다. 뒤웅박은 습기를 머금는 성질이 있어 밥이나 달걀, 쉬이 상할 만한 물건을 넣어두면 밥상에 오를 때까지 신선도를 유지했다. 그때는 집집마다 보꾹이나 처마 밑에 뒤웅박 몇 개쯤은 달려있었다. 제 양껏 담는 그릇이라 작은 뒝박은 남편이 동생들 꿰차고 메뚜기 잡으러 가고, 큰 됨박은 음식이나 갖은 씨앗을 담아두었다. 
    어머니는 다섯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들이 없는 부모님은 딸들을 유난히 엄하게 키웠다. 어느 가문에 들더라도 아비의 흉이 되지 말고 어미처럼 뒤웅박으로 살라고 가르쳤다. 박꽃처럼 하얗게 피었을 때 어른과 지아비를 섬기는 도리를, 온박일 때는 오장육부 다 버려야 다른 것을 품는다는 이치를 가르쳤다. 



    가난한 집 맏며느리로 시집온 어머니는 늘 책임만 무거웠다. 병으로 자리보전한 시부님의 시중들며 한 지붕 아래 둥지 튼 삼동서 사이 조율하고, 피붙이들까지 공평무사하게 마음을 주었다.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툭툭 불거지는 식솔들의 인생사 매듭을 묶고 푸는 일도 어머니가 나섰다. 배알도 없이 오장육부 다 버리고 구듭을 치러도 말 매를 맞았다. 
    대 이을 자손이 없는 친정어머니를 모시며 알알한 뒷감당도 하였다. 둥둥 북 치는 소리에 가슴이 얼얼했던 어머니는 됨박이었다. 어머니는 참을 수가 없도록 속이 아프고 욕심이 꿈틀거릴 때면 서낭할망을 찾아 고백했다. 할망은 그렇게 익어가는 아낙의 등을 토닥이고 어루만지고. 
    이념 전쟁으로 시절이 분분할 때 막내 시동생이 홀연히 집을 떠나버렸다. 살이 푸르둥둥 보이도록 밀어버린 두상에 해가 얼비치던 머슴애, 산딸기 한 줌 건네고 씨익 웃던 그 순둥이가 제 핏줄 두고 돌아오지 않았다. 두 형이 아우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사이 열여덟 살 그의 아내가 무너졌다. 태풍이 훑고 간 뒷날처럼 일상이 온통 흐트러졌다. 어머니는 그녀를 끌어안고 의연하게 버티었지만,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밤이면 스스로를 다잡아 속을 비워내고 날이 밝기 무섭게 일상을 끌어안았다. 
    멀쩡한 속도 생앓이를 하며 비워야 했으니, 어느 해 그녀를 위해 어머니가 나섰다. 곁이 없는 그녀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조카자식을 거두고 새 삶을 찾아가라,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조카딸을 품고 깨질라, 풀솜 같은 가슴으로 키워 시집보내고도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누가 어머니 속을 눈치 챘는지 그가 불귀의 객이 되어 명절마다 고향에 온다고 했단다. 그 순둥이가 면목이 없어 문밖에서 쭈뼛거린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명절마다 메 한 그릇 담아 대문 밖에 두라고 했다. 남편과 나는 차례상에 메를 올리고 집안으로 모셔 들였다. 차마 들어서지 못하지나 않는지 마음이 쓰여 소반에 메와 술 한 잔 담아 대문 밖에도 놓았다. 어머니는 생애 말미에야 그를 내려놓았다. 



    그도 저도 다 비워낸 뒤웅박이 떠날 채비를 했다. 품는 일에만 익숙해 회한도 있을 텐데, 미안한 것이 더 많다고 술회했다. 정신이 맑은 날 팔찌를 풀어 내게 건네었다. 멍에인 듯 유언인 듯 사슬을 받아 손목에 차고 보니 나는 작은 뒝박이었다. 
    팔찌는 ‘맏’의 사슬이었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할머니에게서 내게로 이어진 족쇄 같은 것, 나부터 무너질 무게감을 느꼈다. 어머니가 생애 말미까지 그 순둥이를 품었듯이 나도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을 품었다. 
    어머니 영정사진이 국화꽃 속에 파묻혔다. 오십 초반에 환쟁이에게 보리쌀 한 되 주고 그린 것이다. 어머니의 속을 다 파먹은 자식들은 젊은 날의 초상화를 사진 찍어 영정 앞에 놓았다. 어머니 얼굴이 새하얀 박꽃이다. 도솔천 건너가면 꽃으로만 환락하시라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삶, 나도 한 짐 짊어지고 고바위 넘어가는 길 손 잡아주던 뒤웅박이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뒤웅박 속에 그녀는 없었다. 속도 없는 뒤웅박이 소중한 사람들을 품고 생앓이를 했다. 마음을 다 주고도 억울한 날은 공연히 장독을 여닫고, 속이 캄캄한 날은 대빗자루가 휘도록 비워냈다. 불쑥불쑥 일어나는 ‘나’는 의지로 꺾어버리고 언제나 그들 뒤에 파수꾼처럼 버티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은 혜성처럼 여운을 남긴다. 추억이 되거나 전설이 되거나. 잃어버린 별을 찾아 총총히 뿌려놓고 땅에 박 씨를 심으면 새순이 나오겠다. 박꽃이 피면 가을이 피고 지면 가을이 익는다. 달덩이 같은 박은 눈썹달에도 익는다. 어머니는 박 속이 꽉 차올라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거든 그즈음에 따야 됨박이 된다고 했다. 숨구멍이 숭숭 나 있는 통박을 따서 뒤웅박을 만들면 무얼 담아도 좋겠다. 달은 휘둥그레 떠올라 달빛으로 변죽을 울리고 땅은 달빛 소나타로 화답할 테니. 
    사십 년째 나의 주방에 매달아두었던 뒤웅박 끈을 풀었다. 어머니가 써 온 세월과 내가 가진 세월을 합치면 못해도 육십 년은 넘었다. 세월이 쑤석거려 놓은 데다 습기에 절어 두드려도 북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뒤웅박과 이별했다. 깡마른 몸이 아궁이에서 활활 타올랐다. 
    뒤웅박은 추억의 창가에다 매달아 놓았다. 언제든 빗장을 풀면 들여다볼 수 있게.  
    달덩이 같은 뒤웅박이 우리의 추억 속에 떠다니다 먼 훗날 전설이 되면 만월을 닮은 까닭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