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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 감싼 보자기 속에 소중한 메시지를 담다

2023-03-17

문화 문화놀이터


잇다, 놀다
고이 감싼 보자기 속에 소중한 메시지를 담다
'김시현 작가'

    화폭 한가운데 자리한 색동 보자기의 결 고운 감촉이 마치 손으로 어루만지는 듯 선연하다. 섬세하게 여민 매듭엔 오색 빛깔 칠보 비녀가 단정히 맞물려 있는가 하면, 화사한 모란 자수 댕기가 살포시 얹어 있다. 한 겹 비단에 고이 감싼 보자기 속에는 과연 무슨 사연이 담겨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김시현 작가가 정성스러운 붓끝으로 완성한 <더 프레셔스 메시지(The Precious Message)> 시리즈에 자연스레 시선이 머무는 이유이다. 




 
시선 사로잡는 우리 전통 보자기의 화사한 매력
    겨우내 김시현 작가는 새하얀 캔버스에 전통 보자기의 색을 덧입 히면서 하루 평균 15시간씩 작업실에 머물렀다. <더 프레셔스 메시지(The Precious Message)>란 이름으로 해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 온 그는 올해도 변함없이 함박꽃 같은 미소와 더불어 찬란한 봄에 어울리는 전시를 선보인다.
    “5월 초에 여는 개인전을 위해 겨우내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광장시장에서 원단을 구하고, 오브제를 촬영하는 것을 시작으로, 밑 작업, 스케치, 초벌·재벌 채색까지 모든 과정에 정성을 쏟아내야 해요. 그렇게 정직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하니까요. 여름이 오면 다시 가을 전시를 준비하는 시간을 쌓아갈 거고요.”
    2004년 이래 43회에 이르는 개인전을 연 김시현 작가는 약 350회의 기획단체전에도 함께했다. 또한 국내외 비엔날레에 총 세 차례 초대받아 두각을 드러내는 한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참여와 마이애미·말레이시아 아트페어 출품작 매진 등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돌이켜보면 ‘보자기 작가’라 불리기 시작한 시점은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였다. 금박 물린 붉은 댕기를 두른 흰 보자기 오브제가 주목을 받은 것이다. 
 
The Precious Message 130.3x162.2cm Oil on Canvas 2021-17 (사진. 김시현)


    “전통문화에 관심 있는 분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 전통 보자기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 거예요. 그래서 보자기라는 예스러운 대상을 어떻게 하면 참신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 싶었어요.” 김시현 작가는 보자기의 색채와 무늬를 색다르게 변주했고, 형태나 재질도 차별화했다. 여기에 화관, 족두리, 비녀, 노리개 등 궁중 장신구를 더하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호평이 뒤따랐다. 

 
The Precious Message 50x116.7cm Oil on canvas 2013-23 (사진. 김시현)


    그간 다채로운 전시에 참여해 온 김 작가에게는 2016년 말 국립 민속박물관에서 진행한 전시 <때時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전통 유물과 현대 작품이 조화를 이루는 무대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삶이 투영된 다채로운 색을 보여주는 데 동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기획은 2019년 11월 주프랑스한국문화원 확장 이전을 계기로 파리 특별전도 개최 하였다. 아울러 2019년 울산문화예술회관 초청기획 <하이퍼 리얼리즘(Hyper Realism) - 자연과 미술>에서는 2세대 극사실주의 작가이자 은사인 고영훈 작가를 비롯한 1세대 작가와 화합의 장을 펼치기도 했다. 

 
01.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출품작, The Precious Message 130.3x162.2cm Oil on canvas 2009-01 (사진. 김시현)
02. 고등학교 미술창작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 The Precious Message 55x52cm Oil on Wood, canvas 2015 (사진. 김시현)
03. The Precious Message 145.5x89.4cm Oil on Canvas 2020-9 (사진.김시현)

대한민국의 위상 드높이는 K-미술을 꿈꾸며
    그렇다면 김시현 작가는 왜 보자기를 선택했을까.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졸업 작품 전시를 앞두고 영감을 얻을 만한 소재를 모색하던 때 시골 본가에 가게 된 것이 계기였다고 운을 뗐다.
    “모든 살림살이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시골집은 언제나 저에게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었어요. 그날은 호기심이 생겨 집 이곳저곳을 살펴보게 되었죠. 어머니가 시집올 때 혼수로 해 온 장롱 안에서 어린 시절 보았던 색동 이불보와 전통 자수를 발견했는데 얼마나 반갑던지요. 작업실에 가져와 상자나 책을 포장해 보면서, 속 내용에 따라 자유자재로 바뀌는 보자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어요.”
    펼치면 평면, 감싸는 방식에 따라 모양새와 크기를 바꿀 줄 아는 보자기의 포용력과 유연성은 비슷한 기능으로 사용되는 가방과 확실히 달랐다. 또 보자기 안의 모습을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특별한 궁금증과 설렘을 선사하려고 했다. 색동 천 사이로 그려낸 맑은 하늘과 대자연의 풍경은 보자기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소재에 대한 한계를 파괴하였다. 이처럼 대중의 기대 심리를 넘어서는 차원의 발상이 담긴 그의 작품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소제목과 함께 2016년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렸으며, 고등학교 미술창작 교과서에도 실리며 더욱 눈길을 끌었다.
    “최근 한류를 통해 일명 K-컬처가 나래를 펴고 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 음악에 못지않게 미술 또한 주목받고 있어요. 한국 미술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이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양평군립미술관 등과 여러 주한 해외대사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김시현 작가의 작품은 이미 대한민국을 빛내는 중이다. 어느덧 3월, 김시현 작가의 모든 작품 제목처럼 ‘소중한 메시지(The Precious Message)’를 전하기 좋은 봄이다. 흰 보자기 매듭 위로 붉은 목단꽃이 꽂힌 그의 작품에 따사로운 햇살이 슬며시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