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옹알이
'글. 박종희'

태어난 지 달포 밖에 안 된 아기가 꽃봉오리처럼 벙긋거린다. 입을 벌려 하품을 하고 ‘우우’ 소리 내는 것을 보니 배냇저고리 입고도 사람 하는 짓은 다한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시댁 조카가 첫아들을 낳아 얼떨결에 할머니가 되었다. 워낙 아이를 좋아해서인지 종일 들여다보고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움직이는 장난감을 구경하듯 갓난쟁이 옆에 둘러앉은 가족들이 옹알이하는 아기에게 대꾸해주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아기가 ‘우우’ 거리다가 ‘까르륵’ 소리를 내면 조카며느리가 “그랬어? 아이고 그래.” 하면서 얼르고 받아준다. 그것도 싫증 나 입을 삐죽거리면 얼른 아기를 둘러업고 궁둥이를 토닥이며 방안을 서성거린다. 세상에서 혼자 엄마가 된 것처럼 들떠 있는 조카며느리를 보며 우리 부모님도 나를 저렇게 키웠지 하는 생각에 서글퍼진다.
며느리가 받아주니 마치 뭘 알고 떠드는 것처럼 옹알거리는 갓난쟁이 얼굴 위로 친정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흡인성 폐렴으로 입원한 친정어머니는 중환자실과 일반 병동을 오르내리며 투병생활이 길어졌다. 폐렴이 합병증으로 이어지며 두 번의 기관 절개도 했다.
8개월이 되도록 수액만 맞고 사신 어머니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왜, 아니겠는가. 곡기도 잊고 물 한 모금 못 드시고 계셨으니. 허깨비처럼 야위어 어린아이처럼 가벼워진 어머니는 가장 본능적인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반사작용으로 기척 했고 낯 선 사람을 대하듯 자식을 경계할 때도 있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일반 병동으로 올라오시고 나서 어머니는 가끔 뜻 모를 말을 했다. 얼핏 들으면 앓는 소리 같고 누군가를 찾는 소리도 같았다. 절개한 목이 아물지 않아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어머니가 기력을 되찾는 과정이라고 생각돼 내심 기뻤다. 하지만, 점점 늘어가는 어머니의 앓는 소리에 병실 사람들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고 급기야, 집중 관리실로 쫓겨났다. 말이 8개월이지, 그 시간이면 젊은 사람도 정신을 놓을 거라며 스스로 위안했지만, 그건 가족한테나 통하는 생각이었다.
어머니와 같이 잠을 자면서도 마음은 늘 가시방석 같았다. 쉼 없이 반복하는 군소리 중 가장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장남이 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도대체 아들이 뭐라고, 당신 몸은 꺼져가면서도 아들을 놓지 못하는 것이 야속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이해됐다.
어머니는 딸 부잣집 맏이였다. 딸만 여섯 중에 장녀였던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한 외할머니의 고독한 인생을 보고 살아 아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자식 육 남매 가운데서도 큰 아들을 목숨처럼 생각하던 어머니는 정신이 흐려도 큰 아들 얼굴만은 잊지 않은 듯했다.
오빠는 촛불처럼 사위어가는 어머니를 뵈러 자주 오지 못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박사 논문 마무리를 앞두고 오빠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독하신 어머니께 박사학위를 안겨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잠 못 자고 논문을 쓰는 동안 오빠는 어머니가 마냥 기다려줄 줄만 알았으리라. 하나, 오빠가 박사 학위를 받을 때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어머니 산소에 학위증을 놓고 아쉬워하던 오빠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돌이켜보니, 어머니가 수없이 되뇌던 것은 의사표시를 하기 위한 메시지였지 싶다. 목소리가 안 나오니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는 일종의 소통 수단이었으리라.
말은 못 해도 자기의 기분을 옹알이로 표현하는 자식은 기특하고 신기해 어쩔 줄 모르면서 어머니의 옹알이에는 짜증을 부렸으니. 8개월이 되도록 말 한마디 못 하던 어머니는 어쩌면 자식을 향한 마지막 당부 말씀이 하시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종일 가물가물하다가 정신이 나실 때는 뭔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던 어머니한테 다른 사람들 잠 못 자니 그만하시라고 야박하게 군 것 같아 가시 박힌 듯 목이 아프다.
한데, 요즘 내가 그 벌을 그대로 받고 있는 것 같다. 퇴직하고 혼자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지니 입에 곰팡이가 필 것처럼 말 한마디 안 하고 살 때가 잦다. 종일 혼자 있다가 딸애가 퇴근하면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온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점심은 맛있게 먹었는지. 무에 그리 궁금한 것이 많은지 옷도 갈아입지 않은 딸애한테 말을 건넨다.
딸애는 어떤 날은 조근조근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가끔은 대답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아니, 시큰둥하게 표정으로 대답하는 날도 있다. 우스운 일은, 그때마다 내가 엄마한테 했던 모습이 떠오르며 눈물이 핑 돈다는 거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 혼자 큰 것처럼 잘났다고 설쳐대던 지난날들이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날아왔다. 눈도 안 마주치고 쌩하고 돌아서면 너도 나중에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보면 내 마음 안다고 하시더니. 지금 내가 딱 그 짝이다. 어머니가 되면 심장이 쇳덩어리가 된다더니 갈수록 내 심장도 단단해져 간다.
나는 딸 하나 키우면서도 심장이 돌덩이 같을 때가 있는데 육 남매가 쏟아내던 짜증을 등으로 받아내던 어머니는 어떠셨을까. 한 평생 자식만 생각하고 사시던 어머니가 당신을 잊어버리고 나서야 쏟아내던 말을 큰 딸인 내가 외면했으니.
당신의 인생은 접어두고 평생 자식 낯 내주느라 엉덩이 한번 바닥에 못 붙이고 사시던 어머니. 50년간 불덩이처럼 가슴에 쌓아둔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들어드리지 못한 것에 나는 또 뒤늦은 후회를 한다.
내가 어머니의 시간 속에서 헤매는 동안 한참 배냇짓을 하며 옹알거리던 손자가 며느리 등에서 잠이 들었다. 잠든 모습조차 놓치지 않으려 아기한테 눈을 돌리는 가족들을 보니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저렇게 공들여 키운 손자는 나중에 조카며느리의 쓸쓸한 사연을 얼마나 헤아려줄까.
손자 때문인지, 오늘따라 응얼응얼 거리시던 어머니가 그리워지며 눈앞에 삼삼하다.

EDITOR AE류정미
박종희 작가
이메일 : essay0228@hanmail.net
2000년 『월간문학세계』수필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전국시흥문학상, 매월당 문학상, 김포문학상
2015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제1회 119 문화상 소설 최우수상 수상 외 다수
2008년 ~ 2019년까지 중부매일, 충북일보, 충청매일에 수필 연재
저서: 수필집 『가리개』『출가』
한국작가회의, 한국산문작가협회, 충북작가회의 회원
청주시, 세종시 수필창작 강사. 충북작가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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