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망월사에서
'글. 이정연'

한낮의 망월사는 칠월의 뜨거운 지열로 가벼운 현기증에 휩싸인 것 같았다. 엷게 낀 연무 속에 산자락에 안긴 고즈넉한 산사가 오수에 든 듯 조용하였다. 백련지엔 드문드문 연꽃이 피었고 무심한 바람은 연 줄기를 흔들며 지나갔다. 연잎 하나가 바람이 불 때마다 돌맞이 어린아이처럼 도리도리 도리질을 하였다. 올해는 연이 흉작이라고 하였다. 꽃대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올라온 꽃대도 그냥 말라 버리거나 진딧물이 생겨 깨끗한 송이가 많지 않았다. 긴 장마에 가뜩이나 진흙탕 속에서 지켜가야 할 아름다움이니 연인들 오죽 힘겨울까.
요사채에는 마치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노보살님 한 분이 단정히 마루 끝에 앉아 계셨다. 뽀얗게 창호지를 바른 우물살문 앞에 앉은 작고도 하얀 모습이 마치 막 집을 다 지은 누에고치처럼 고왔다. 올올이 진 주름을 손을 뻗어 가만히 쓸어보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고 망월사의 역사와 뒷산의 바위에 대해 여쭈어보았다.
“절이야 저 위에서 한 삼십 년 여기 와서 한 이십 수년이 흘렀지요! 뒷산에 잘 생긴 바위가 있긴한데....” 전해들은 바위에 대해서는 소재만 한 번 더 확인하였을 뿐 역시 이름은 알 수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사진을 찍으면서도 내 마음은 망월사 뒷산의 잘 생긴 바위에 가 있었다. 그 바위의 이름은 무엇일까. 언제 누가 그 바위 아래 비를 피할 장소에 머물렀던 것일까. 그 바위가 망월사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작은 의문들이 연 줄기처럼 빽빽이 일어났다 스러졌다. 때맞춰 선방 뒤에서 주지 스님께서 걸어 나오셨다. 짧게 방문 목적을 말씀드렸다. 스님은 한 번에 마음을 모두 아신 듯 뒷산 장군바위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대구 인근의 지명 꽤 여러 곳이 공산전투에서 패한 왕건의 도주 행로를 따라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왕건이 견훤과의 공산전투에서 대패하여 군사를 물렸다 해서 파군재(破軍領), 이 때 숨어들어 목숨을 구했다는 왕산(王山), 혼자 앉았다는 독좌암(獨座岩), 도주하다 이곳에 이르러서야 겨우 찌푸린 얼굴을 펴게 되었다는 해안(解顔), 나무꾼에게 물 한 바가지를 요청하고도 기다리지 못해 달아나서 왕을 잃어 버렸다는 실왕(失王)리, 때는 밤이고 반달이 도주로를 비추며 떠 있었다고 해서 반야월(半夜月), 이곳에 와서야 심신의 안전을 확인하고 안심하게 되었다는 안심(安心), 숨어서 정세를 살폈다는 은적사(隱迹寺) , 편히쉬어 간 곳이라 하여 안일사(安逸寺) 또 병사들에게 태만함이 없도록 지시했다는 무태(無怠), 임시로 쉬어 간 곳이라는 임휴사(臨休寺) 에 이르면 그만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된다.
아무리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지만 공산전투에서 대승한 견훤을 기념한 지명은 단 한 곳도 없다. 역사뿐만 아니라 최후의 승리자 곁에 머문 시대의 인심이 날 슬프게 하였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옷을 입혀 사랑하는 부하 신숭겸을 대신 죽게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런데 정말로 놀랍게도 이 장군바위가 전투에선 승리자였지만 끝내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안타깝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한 영웅 견훤에 대한 애달픈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견훤이 공산전투에 승리한 후 서라벌로 진격하는 길에 마치 나제 통문처럼 생긴 문이 하나 있었는데 이 문은 말을 타고는 지나갈 수가 없고 병사도 한 번에 여러 명이 지나갈 수 없는 좁은 바위 문이었다. 이에 견훤은 이 바위 문을 주먹으로 쳤는데 바위 문은 둘로 갈라져 그 한 조각이 이 망월사 뒷산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전설이 신빙성을 갖든 그렇지 못하든 내겐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나는 다만 끝내 패배자일 수밖에 없던 그에게도 연민을 가진 한 영혼이 그런 이야기를 지어 퍼트렸다는 게 깊은 위안이 되고도 남았다.





산 위로 잠시 올라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니 왼쪽으로 한 십여 보 아래 큰 바위가 있었다. 한눈에 주먹 자국이 선명한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크기로 보면 그 전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주먹 자국만 하더라도 성인 다섯 명은 들어가고도 남을 크기이기 때문이다. 그 바위 아래가 옛 망월사 터인 모양이었다. 흔적을 찾았으나 발목이 푹푹 빠지는 낙엽 속에 부서진 기왓장 조각 한 장 찾을 수 없었다.
전설은 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아니 어쩌면 믿을 수 없는 과장 속에 따뜻한 마음이 흐르는 이야기 그것이 전설일지도 모른다. 모두 승자의 위상을 의식해 이름지어진 지명이지만 파군재 같은 곳은 두고두고 오히려 패배를 재확인시켜 주고 있는 가운데 이렇게 나름대로 패자에게 보냈던 따뜻한 시선이 하나쯤 있다는 데서 안도하였다.
망월사를 좋아할 이유 하나가 더 는 것이다. 비록 상상한 그대로 망월사에 얽힌 애틋한 전설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스님의 마지막 말씀이 귀에 남는다.
"망월사에 달이 어디 그뿐이겠어요. 저 아래 지천지에도 달이 뜨고 찻잔 속에도 달이 뜨지요!"
언제든 찻잔에 뜨는 달을 확인하러 들러도 좋다는 뜻이었을까.
어디 지천지와 찻잔에 뜨는 달만 더할까. 가을날 지천지에 자욱하게 물안개가 서리고 대웅전 추녀 끝으로 보름달이 오른다. 망월사는 스스로 달이 되기 위한 몸짓으로 골짜기 가득한 달빛 바다 위로 조용히 떠오를 것이다.

EDITOR AE류정미
이정연 작가
이메일 : manjuyeon1@hanmail.net
2003년 4월 수필문학 등단.
2004년 중부매일신문 세정유감코너 짧은 수필 집필 (1월-4월까지)
2004년 여름호 수필 ‘망월사에서’ 에세이문학 등단
2004년 영남수필 회원 –2019년
2006년~2008년 에세이문학 올해의 수필 20선 추천
에세이문학 수필과 비평 에세이21 수필사랑 대구문협지 다수 기고
2011년 - 현재 대구 달서구 현대힐공인중개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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