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움직임에 기대어
'움직임표현예술협회 오진숙 대표'

‘걸을 수 있는 날까지 춤추고 싶다’는 오진숙 예술가의 말을 듣고 냉큼 용기를 얻었다. 뭐든지 지긋하게 해내고 싶다는 무구한 열정도 들끓었다. 그는 5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춤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며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었다. 사람, 치유, 자연 그가 열거하는 단어들에서 평화로운 봄 향기가 났다. 춤을 매개로 개인을 넘어 타인과 협력하고 자연과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수차례 놀라기도 했다. 공원과 숲, 댐을 가리지 않고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 자연과 사람을 치유하는 그는 현대무용가이자 ‘움직임표현예술가’다.
Q.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충북무용협회 회장을 맡으셨어요, 선생님 인생의 첫 무용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초등학교 시절 무용을 취미로 잠깐 접한 이후 중학교 1학년 때 발레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청주 대성여자중학교에 다녔는데 당시 학교 강당에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무용하는 선배들을 마주하게 되었어요. 그 모습이 계속 눈길을 잡아끌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빠져든 것이죠. 그리고 곧장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학교 무용반에 들어갔어요. 이후 자연스럽게 현대무용을 전공했고, 박사 과정은 무용사회학을 연구했어요. 무용인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또 은퇴 후에는 어떤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무용과 생활이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들을 폭넓게 연구했어요. 그리고 최근 10년 동안은 ‘움직임 위주의 표현예술 • 치유 • 교육’, 과 관련된 프로그램 개발 및 적용 그리고 자유로운 춤사위를 연구하고 있고요.

움직임표현예술협회 오진숙 대표

Q. 현재 작업하시는 ‘움직임표현예술’이라는 단어가 다소 낯설기도 합니다. 현대무용에서 새로운 장르로 나아가신 과정도 궁금합니다.
현대무용은 계속해서 실험적이고 새로운 것들을 요구해요. 그리고 그 바탕에 테크닉을 넣어야 하는 예술이죠. 나이가 드니까 이 부분에서 육체적으로 한계가 오더라고요. 나이는 자꾸 들겠지만 제 마음은 아직도 춤을 계속 추고 싶었어요. 몸이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까지 춤을 추고 싶어서 그 고민이 계속되었죠. 그런데 주변에서 ‘무용 명상’에 대한 강의를 요청하시더라고요. 제 전문 분야는 아니라 계속 고사했는데, 꾸준히 요청이 오는 바람에 저도 자료를 찾아보며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우연히 ‘안나 할프린’이라는 무용가이자 표현예술치유가를 알게 되었죠. 모니터로 그분의 춤사위를 보는데 가슴이 뛰더라고요. 모니터에서 손을 내밀면 당장 쫓아가고 싶을 정도로요. 제 나이 50을 넘어 인생의 변곡점을 겪는구나 싶었어요. 그 정도로 큰 울림이 있었어요.
국가공인 무용교육자, 동작치유사, 동작교육사(ISMETA)가 되기 위한 교육 과정 중 미국에 가서 직접 ‘안나 할프린’을 만났어요. 당시 그분은 90세가 넘은 나이였지만, 여전히 춤을 추는 현직 표현예술치유가 였어요. 그리고 100세가 되던 해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제 가슴에 살아계신 분이세요. 세계적인 무용가이자 표현예술가의 대모라 할 만한 분을 만나고 나니 춤이라는 게 예술 그 이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특히 춤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이나 고통받는 자연에 다가가 소통하고 그들과 동화되어 치유에 이르는 과정이 경이로웠어요. 춤이란 세상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계속 ‘안나 할프린’은 저의 롤모델이 되었어요. 저 역시 할머니가 되어서도 춤을 추고 싶거든요. 또 작은 실천이나마 사회에 헌신하는 자세를 가지고 살고 싶고요.
현재 작업하는 이 ‘움직임’은 이전의 작업과 달라요. 손짓 하나, 눈빛 한 번에 의식을 담아 나를 표현하는 자체로 춤이 될 수 있게 하는 과정이에요. 일반인들과 ‘움직임’을 함께 해보면 그들이 춤의 테크닉을 배운 것도 아닌데 아주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들의 의식이 담긴 감동적인 무엇인가를요……. 이전에 했던 작업은 주제 선정부터 무대 구성, 안무 창작 등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부담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대중들 앞에서 화려한 공연을 올리고 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허감에 휩싸이곤 했죠. 하지만 표현⋅예술⋅치유, 그 모든 걸 포용하는 ‘움직임’을 하고 나서부터는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행복한 거예요. 그렇게 지금에 이르게 된 거죠.




Q. 인생의 중반에서 변곡점을 경험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지금 예술을 하는 청년세대에게 좋은 사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변곡점은 언제 올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요. 그 모든 과정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여전히 기대되는 것들이 참 많아요.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움직임’을 할 수 있을지. 그간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대학 강의도 하고, 노인이나 중년들과 만나서 프로그램을 하기도 했죠. 그리고 청소년들과 만나 수업하기도 했어요. 돌아보면 그 아이들을 대하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아마도 청소년에게 완벽하길 바라는 마음을 놓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그들은 아직 완전한 완성에 이르지 않았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과정임을 인지하고 욕심을 내려놓으니 예술 강사로서 변화된 제가 보이더라고요. 아이들이 저에게 준 배움이 많아요. 유연한 생각과 태도를 얻었으니까요. 예술이란 늘 그렇듯 창작자와 참여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활발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요.
Q. 삶에 대한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늘 생각했던 것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춤출 거야’였어요. 그리고 놀랍게도 ‘움직임표현예술교육’을 진행하면서 그 생각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죠. 삶의 태도나 가치관도 많이 변했어요. 춤이라는 행위에만 한정하지 않고 삶의 모든 ‘움직임’에서 내면을 관찰하고, 표현하고, 치유하니까요.
‘움직임’을 ‘무브먼트 리추얼(movement ritual)’이라고도 해요. 움직임마다 의식을 갖는 것이죠. 지금 내 맥박이 어떻게 뛰는지, 호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금, 여기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어떠한지. 아주 미세한 내면의 움직임마저도 의식을 가지고 관찰해요. 그러면 나를 알게 되고 타인을 잘 이해하게 되죠. 점차 안에서 밖으로 뻗어 나가면서 의식의 확장이 일어나게 돼요.
Q. 나를 넘어서 타인 그리고 더 확장해서 환경과 자연까지 도달하는 것일 테죠.
관련해서 청주 구룡산 두꺼비 쉼터에서 진행하셨던 ‘즉흥춤숨’, ‘숲길에서 삶 속으로’의 공연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청주시 산남동 원흥이 방죽과 구룡산 일대는 두꺼비의 서식지를 개발로부터 지키기 위해 굉장히 많은 사람의 노력이 담긴 곳이에요. 이곳에서 (사) 두꺼비친구들의 초청으로 2021년 공연이 있었고, 충북문화재단 지원사업 다원예술의 분야로 2022년 후배들과 협업팀들과 공연을 했어요. 구룡산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이 안에 이렇게 예쁜 동산이 있었나 놀라웠어요. 그리고 찬찬히 그 숲을 돌아볼 때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모여 일궈진 장소라는 감사함이 있었고요. 그래서 그 마음을 담아 ‘춤숨’으로 에너지를 전달해 주고 싶었어요. 공원의 깊은 숲으로 들어가 땅을 밟는 걸음마다 ‘버텨줘서 고맙다’, ‘지켜줘서 감사하다’라는 마음을 담아 공연을 했었죠. 그곳에 뿌리를 내려주고 싶었어요. 공연하면서 저희의 움직임이 자연뿐만 아니라 공연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좋은 에너지로 전달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공연을 보는 아이들이 ‘움직임’ 동작을 따라 할 때였어요. 햇빛을 가리는 동작, 나무를 감싸 안고 토닥거리는 동작 등을 따라 하며 공연을 함께 즐기고 있었죠.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표현하는 아이들이 기특했어요. 장소나 나이에 제한 없이 모두와 즐길 수 있었던 공연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Q. 즉흥적인 춤이라는 부분이 매력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소리는 더튠(The Tune)이라는 팀과 협업하셨다고 들었어요.
소리하는 더튠(The Tune)이라는 친구들과의 작업도 그렇고 함께 몸을 움직이는 저희 팀도 그 현장에서 다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공연이라 서로 간의 교감이 중요했어요. 그간 지역사회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즉흥 음악과 춤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숲에 들어가 공연을 할 때 들숨과 날숨 같은 춤숨을 쉰다고 표현해요. 자연의 소리가 나의 몸에 어떻게 느껴지는지, 내면의 감각을 춤으로 나타내는 거예요. 모든 춤숨은 즉흥적으로 구성되는 거라서 저도 궁금해요. ‘오늘 이 숲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나올까’ 하면서요. 우리가 자주 말하는 ‘생태, 환경’도 결국 자연에 다가가 자연을 느끼고 나만의 ‘춤숨’을 쉬는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올해도 ‘기후위기 시대 일상회복을 꿈꾸며 300 - 3000 느티에게’ 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두꺼비생태공원의 청주시 시민 보호수 1호로 선포된 300살의 느티나무와 기후위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하는지, 그 미래를 함께 그려보는 작업이에요. 느티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관객들과 함께 ‘커뮤니티 춤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꾸밀 예정이에요.
Q. ‘움직임표현예술’을 통해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일부 사람들이 기후 변화 같은 생태·환경 문제가 나와 깊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당장 우리의 1년 후, 5년 후 우리가 생태·환경 문제로 위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해요. 지금이 위기라는 걸 깨닫고, 어떤 변화를 기대해야 하는지 인지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내가 먼저 열려야 해요. ‘움직임표현예술’에서는 일명 ‘몸작업’을 통해 몸을 일깨워 오감을 발동시켜요. 몸과 마음을 모두 여는 작업이죠. 이 작업을 통해서 나를 넘어서 타인, 그리고 자연에 다가갈 수 있는 한 걸음을 떼는 거예요. 물론 그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어요. 반복된 훈련으로 조금씩 변하는 거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너무 각박하고 빠르잖아요. 잠시만 정신을 잃어도 그 속에 휩쓸려 세상과 단절되고 내 안에 갇히게 될 수 있어요. 의도적으로 몸을 열어 안팎으로 깨어있어야 해요. 타인 그리고 자연과 소통하는 자세를 기르는 ‘움직임’에 많은 사람이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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