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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 스미는 풍경,세상에 번지는 물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물의 나라 충북 ? 충북의 물길에 깃든 이야기를 찾아가다(괴산Ⅲ)'

스며드는 것들은 아름답다. 운교리 달천에, 문광저수지 물 위에, 갈은구곡 계곡에, 괴산호 너른 물에 비치는 하늘, 구름, 산그림자, 가끔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도 스민다. 스며 또 다른 풍경을 이룬다. 번지는 것들은 유구하다. 갈은구곡 마을 사람들, 문광저수지 은행나무 할아버지, 제월대 달천 고산정과 홍명희, 괴산호 산막이 마을 사람들, 물가 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물결에 실려 세상으로 번진다. 스미고 번지는 것들은 느려서 더 소중하다.

산막이옛길 꾀꼬리 전망대에서 본 풍경


자연이 그린 자화상
산을 그리고 숲을 칠했다. 낮은 구름 위로 새들이 떠다니는 하늘 모퉁이에 저녁 어스름을 맞이하는 등불 같은 해도 그려 넣었다. 공중을 건너는 바람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는지 물결을 만들었다. 그날 운교리 달천 수면에 자연은 그렇게 자화상을 남겼다. 너른 강 강기슭에 조각배 하나 있어 적막이 더 고요했다.
백두대간 속리산의 정기를 머금고 시작된 달천 물줄기가 보은을 지나 청주 미원면에서 옥화9경을 만들고 흐르다 청천 사담 마을 천년 느티나무의 이야기를 품고 흘러온 신월천을 만나 세를 불리더니 전설 같은 풍경을 빚어낸 선유구곡과 화양구곡의 물줄기까지 받아들였다. 그 물줄기가 가늠할 수 없는 세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고 흘러 오늘도 운교리를 지난다.
달천은 물가의 기암절벽을 거느리고 흐른다. 신선들이 놀았다는 선유대 바위 절벽의 다른 이름은 신부바위다. 신부바위 부근에 신랑바위도 있다.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던 선국암, 일곱 마리 학이 노닐었다는 칠학동천, 칼로 자른 것 같은 커다란 바위들이 계곡을 이룬 곳에 늙은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을 보았다던 고송유수재, 거북이를 닮은 구암, 비단 병풍 같은 바위 절벽인 금병, 옥구슬 같은 물줄기가 흐르는 옥류벽,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강선대, 사람 사는 세상을 닮은 계곡 갈천정과 옛 사람의 글이 새겨진 바위절벽 풍경의 장암석실, 칠성 사은리 갈은구곡의 아홉 가지 경치를 지나온 계곡의 물줄기는 갈은동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상징하는 ‘갈은동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 절벽 앞을 지나 청천 운교리를 지나온 달천과 하나 된다.

左) 산막이 옛길 약수터 右) 운교리 주변 달천 풍경


갈은동, 마을이야기
갈은 마을에는 갈은구곡만 있는 게 아니었다. 조선시대 당쟁의 광풍을 피해 은둔한 선비들이 살던 곳이었으며, 나라에 공을 세워 토지를 하사 받은 양반들이 살기도 했다. 조선 말기 한동안 마을의 역사는 세월 속에 묻혔다. 마을이야기는 1960년대 화전민들의 정착기로 이어진다.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화전민들 덕에 갈은 마을 황기가 유명했던 적도 있었다. 한창때는 70~80여 가구에 400명 넘게 살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 화전민들은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옛 마을의 중심은 갈은동문 각자 바위 절벽 앞을 지나 계곡 위쪽으로 더 올라간 곳에 있었다. 갈은구곡의 3곡인 강선대에서 4곡인 옥류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소나무밭 뒤가 옛날에 서당이 있던 자리다. 개망초 피어난 들길 오솔길을 지나 숲으로 들어선다. 옛 갈은동 사람들이 일군 밭과 논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갈은구곡 중 7곡인 고송유수재 계곡 절벽에는 일제강점기에 괴산 3.1만세운동을 이끌었으며 장편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의 할아버지 이름도 새겨졌다. 홍명희의 고향이 괴산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갈은 마을에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 구들을 데우던 초가가 있었다. 가마솥에 소죽을 쒀서 외양간 누렁소 끼니를 먼저 챙기고 나서야 밥상을 차리던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괴산 장날이면 마을 사람들은 30~40리 되는 길을 걸어서 가고왔다. 송이버섯 말린 것을 끓여 차로 먹으면 목감기에 좋고, 참능이버섯 삶은 물은 체한 데 좋다는 것쯤은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마을 주변 산이 높고 골이 깊으니 송이며 능이가 많았다.

갈은동문. 사진 왼쪽 위 바위에 갈은동문 글자가 새겨졌다.


쌍천, 달천을 만나다
청천 운교리를 지난 달천이 칠성 사은리에서 호수가 된 건 1957년에 생긴 괴산댐 때문이다. 사은리는 모래 곱던 사내 마을과 칡넝쿨 많던 갈은 마을 이름에서 한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굴바우 마을과 산막이 마을은 괴산댐이 만들어지면서 없어졌다. 지금 남아 있는 산막이 마을에 가면 마을 사람들이 당산나무로 여기고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던 200년 넘은 밤나무를 볼 수 있다. 괴산호와 산줄기가 어울린 풍경을 보며 ‘산막이 옛길’을 걸어서 산막이 마을까지 구경하고 마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돌아왔다.
괴산댐을 지난 달천은 비도리, 도정리, 갈읍리를 지나온 쌍천과 두천교 부근에서 만난다. 비도리 113 주변, 냇물을 건너는 낮은 다리와 정자가 있는 전망 데크 사이에서 보는 쌍천 풍경이 백미다. 도정리 두천유원지 낮은 다리 주변에는 물장구치며 멱 감고 놀던 옛 개울 풍경이 남아있다. 도정리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느티나무 고목 주변에 일곱 개의 고인돌이 놓인 풍경을 볼 수 있다. 가지를 넓게 드리운 고목 아래 1950년대에 문을 연 청인약방이 박물관이 되어 남아있다. 일곱 개의 고인돌 옆에 일곱 그루의 소나무가 있어 마을 이름이 ‘칠성’이 됐다는 이야기의 증거가 지금 남아 있는 고인돌들이다. 1960년대까지 옛 소나무 두 그루가 남아있어 5월 단오와 7월 칠석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기원하며 놀았다고 한다.
도정리를 지난 쌍천은 달천을 만나 하나 되어 흘러 괴강다리 아래를 지난다. 지금은 차가 다니지 않는 옛 괴강다리 옆에 두 개의 다리가 더 생겼다. 옛 괴강다리 아래 매운탕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빈집이다. 30여 년 전 기억에 그 매운탕집 아저씨는 물에 들어가 작살로 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이기도 했다. 물줄기의 공식 이름은 달천이지만 그 마을 사람들은 괴강이라 불렀다.

左) 문광저수지 데크에서 본 저수지와 은행나무길 右) 청인약방


실개천이 강물이 되는 내력, 그리고 목도나루 ‘소금배’
괴강다리를 지난 달천은 북쪽으로 흐르다 괴산 서쪽에서 흘러와 괴산읍내를 지난 동진천과 만난다. 동진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무가 가지를 뻗듯 갈라진 여러 갈래의 실개천에 다다르게 된다. 그중 하나가 소수면 소수저수지에서 흘러내린 동진천 본류다.
소암리 소암저수지 물은 고마천으로 흘러든다. 고마천은 아성리 구기교 앞에서 동진천과 만난다. 사리면 이곡리 이곡저수지를 지난 물길은 성황천이라는 이름으로 흐르며 문광면 송평리 송평교 앞에서 양곡리 문광저수지를 지나 흐르는 양곡천을 흡수한 뒤 괴산읍 동부리 괴산군노인복지관 앞에서 동진천과 하나 되어 흐른다.
양곡천 상류 문광저수지는 저수지 둘레 은행나무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다. 1979년 양곡리에 살던 김환인 할아버지가 은행나무 300 그루를 기증했다고 하니, 나무는 한 세대를 내다보며 심는다는 옛말이 이곳에서도 유효하다. 문광저수지 은행나무 이야기가 양곡천, 성황천, 동진천을 지나 달천에 몸을 섞으며 제월대 이야기에 살을 붙인다. 조선시대 사람 유근이 충청도 관찰사로 있을 때 이곳 풍경이 좋아 만송정과 고산정사를 짓고 광해군 때 머물렀다. 숙종 21년에 고산정사는 불타 없어지고 만송정만 남았는데, 훗날 고산정이라고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제월대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였던 벽초 홍명희의 문학비도 있다. 괴산읍에서 태어난 홍명희도 제월대의 풍경을 보았을 것이다. 고산정에 오르면 굽이쳐 흐르는 달천과 괴산읍 검승리 들녘을 품에 안은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충북 괴산군 괴산읍 제월대 소나무숲. 숲 뒤에 고산정이 보인다.



제월대 아래를 지난 달천은 북쪽으로 흘러 불정면에서 목도강수욕장을 만든다. 목도강수욕장 둔치 한쪽에 목도나루가 있었다. 서울 마포나루에서 소금을 싣고 한강을 거슬러 오르던 나룻배는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남한강으로 뱃머리를 돌려 충주를 지나 목도나루에 도착했다. 목도나루는 이 지역 특산물인 담배와 콩을 소금과 맞바꾸는 장터이기도 했다. 불정면주민센터 마당에서 한 척의 나룻배가 살갑던 한강의 물결을 추억하며 쉬고 있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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