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예술의 최전방에서 환경과 지역을 이야기하는 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서정두 학예사'

멋진 전시에 가면 예술가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이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가 궁금해지는 순간이 있다. 대청호 미술관 옥상에서 무성 영화를 틀고, 환경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청주시립미술관 본관에서 진행되는 로컬 프로젝트 등이 그렇다. 다양한 학예사들이 지역의 목소리와 색깔을 입히며 충북예술의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그중 멋진 장발을 자랑하는 우리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서정두 학예사를 만났다. 전시준비 기간이라 휴관 상태인 고즈넉한 미술관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또 색다른 경험이었다.
Q. 학예사로서의 인생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충북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했어요. 조각을 전공했었고 개인 작업을 먼저 하고 있었죠. 사실 학예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삼고 미술관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어요. 청주 사직동에 있는 신미술관에서 보조 학예사로 근무했었는데, 처음에는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시작한 것이 5년을 훌쩍 넘기게 되었죠. 처음 2년간 낮에는 학예사, 밤에는 개인 작업을 병행하면서 지냈어요. 그러다가 ‘이 학예사라는 직업이 굉장히 전문적인 직업인데, 지금 내가 이렇게 병행하며 하는 것이 맞나?’ 하는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또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시점이기도 해서, 보다 안정적으로 직업을 가져갈 필요도 있었어요. 그래서 작가보다는 직업으로써 학예사를 선택했고, 당시 청원군립 대청호 미술관에서 학예사 임용 공고가 났을 때 지원해 공립미술관 학예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죠. 그러다 2014년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되면서 대청호 미술관이 군립에서 시립으로 바뀌게 돼요. 청주시는 현재 사직동에 있는 청주시립미술관 본관, 용암동 미술 창작스튜디오, 문의 대청호 미술관, 오창전시관 이렇게 4개의 관을 운영하는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저도 청주시 관내에 있는 미술관을 순환하며 근무하게 되었죠.

청주시립미술관 서정두 학예사 ⓒGIEONGNOK(사진출처)

Q. 청주에서 꽤 오래 활동하셨네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으시고요.
제가 조금 특이한 사례긴 해요. 미술관 학예사는 정규직 보다는 대부분 임기제이기 때문에 5년 계약 후 연장하는 시스템이에요. 다른 국공립 미술관 학예사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긴장하고 사는 삶이죠. 그래서 이직률도 높고 지역 이동이나 다른 문화기관으로 이동도 비일비재해요. 젊은 학예사들일수록 더 좋은 환경의 미술관과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죠, 예를 들어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내 유수의 사립 미술관에 이직하면서 자기 커리어와 역량을 더 쌓는 편이에요. 그런데 저는 청주가 고향이기도 하고 학업과 결혼도 다 이곳에서 했어요. 그리고 사직동 시립미술관 본관의 개관 당시부터 개입했었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죠. 지금도 우리 지역의 미술관이 시민들과 더 자주, 깊게 호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일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때도 있어요.
Q. 학예사가 가진 직업적 특성에 관해 이야기 해주신다면요.
학예사는 큐레이팅이라는 주요한 업무가 있어요. 전시를 기획하고 때로는 연구, 수집, 보존의 영역까지 포함해요. 그렇기에 미술사, 미학 그리고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관점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그 관점이 작가와 작품을 바라볼 때 반영이 되어야 하죠. 단순히 지금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분야의 작가들을 섭외해서 전시를 펼쳐놓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해선 안 돼요. 어떤 한 개인의 역사적인 아카이브를 펼치거나 사회?정치적인 이슈를 심층적으로 기획할 때도 미술사적인 연구가 기본 바탕이 되어야 깊이 있는 전시가 될 수 있어요. 그렇기에 미술관은 굉장히 트렌디한 현대 문화와 예술을 표현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상당히 보수적인 공간이기도 해요. 보수적이면서도 진보적이고,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공간이죠. 그래서 학예사는 이 모든 걸 포용할 수 있을 만큼 넓고 깊은 연구 활동을 해야 하고요.

「 2023 대청호 환경미술제 - 물의 시간, 마흔세 개의 봄. 연계 실내 기획전 물의 공간 」

Q. 그런 측면에서 과거 대청호 미술관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할 정도로 획기적이었고, 지역성을 담고 있어서 공감도 많이 되었고요.
대청호 미술관은 세워질 당시부터 이야기가 많은 곳이에요. 문의문화재단지 안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고 볼 수도 있지만, 관람 동선을 생각하면 미술관이 있기에 낯선 곳이기도 해요. 실내 구조가 복합문화공간이라기보다는 전시장 위주로 설계되어서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하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많았고요. 단순히 지역, 장르 협회의 정기전 정도로만 활용되던 때도 있었어요. 미술관으로서 대청호 미술관만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 지역의 지리적, 역사적, 사회적 특성을 파악하기 시작했어요.
미술관이 있는 문의면은 대청댐이 준공되면서 수몰의 역사가 있는 곳이에요. 많은 사람의 삶터가 물속으로 사라졌고, 댐 주변으로 모여 다시 마을을 구성한 주민들은 관광지로서의 발전을 기대했어요. 하지만 청남대가 들어오면서 1급 보안 시설이 되고,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많은 것이 제한되었죠. 억눌린 주민들에게 피해의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어요. 미술관에서 이러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기록하고 연구하려는 시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고민에서 나온 것이 바로 ‘환경미술제’였어요. 1995년 ‘나인 드래곤 헤즈(Nine Dragon Heads)’의 주도로 처음 시작해 퍼포먼스와 설치 미술가들과 함께 대청호 현장에서 진행했어요. 그때만 해도 이런 축제를 열면 부녀회에서 국수를 삶아 주시기도 하고, 청년회에서 주관해 마을 행사를 같이 이끌어 주셨어요.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서 더욱 재미있고 의미 있는 축제였었죠. 하지만 이후 여러 문제로 주춤하면서 아쉽게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국제적인 문화예술의 마을로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점이에요. 이후 2020년 다시 미술관을 중심으로 환경미술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는 5월 4일 ‘2023 대청호 환경미술제 – 물의 시간, 마흔세 개의 봄’이 시작해요. 문의문화재단지와 대청호 선착장 수변에서 진행되고 동시에 대청호 미술관에서는 ‘물의 공간’이라는 타이틀로 연계 실내 기획전이 열리죠.
Q. 지역민으로서 굉장히 반가운 소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이번 환경미술제 초대의 글에서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작가들이 현장을 리서치 하였고’라는 구절이 인상적인데요.
저는 현재 본관에 근무하고 있어 올해 환경미술제의 담당자는 아니지만, 과거에 진행되었던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입장에서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기에 우리가 미술제라는 이름 앞에 ‘환경’이 붙어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어떻게 보면 미술이라는 것은 쓰레기를 더 많이 만드는 활동이기도 해요. 전시를 한번 하고 나면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나오거든요. 그렇기에 환경미술제는 전시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환경적인 부분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해요. 또한 소재도 생태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부분들은 배제해야 하죠. 그 전 과정이 생태미술, 자연미술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과연 이러한 환경적인 부분들을 일반 시민들이 원하냐’는 하는 이견이 나오기도 해요. 시민들이 미술관에 오면서 기대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면들이 환경미술제에서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이 간극을 좁히는 것이 예술가와 학예사의 역량이지만, 무조건 화려하고 웅장함을 추구하는 전시라면 과감하게 ‘환경’이라는 단어를 빼버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생태?환경적으로도, 환경미술제를 운영하는 측면에서도 지속 가능함을 이야기한다면 ‘환경미술’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차별성을 가지고 움직여야 해요.
또 대청호라는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중요해요. 미술이라는 기반에서 시작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문의 주민들과 호흡하고 그들이 축제로 즐기고 참여해주는 거예요. 그렇기에 주민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환경미술제’인가도 생각해봐야 하죠. 주민들은 오히려 이곳의 경관을 더 개선하고 제한을 풀어 개발하길 원하고 있어요. 병원도 짓고 리조트도 짓고, 기존 건물을 재건축해서 더 넓은 카페를 만들고 싶어 해요. 이러한 다양한 의견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진행해나가야 할 것인가는 ‘환경미술제’에서 정성을 들여 풀어야 할 문제이기도 해요.
Q. 시민과 함께 해야 하는 곳이 미술관이기 때문이겠죠. 관련해서 현재 근무하고 있는 청주시립미술관 본관(사직동)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진입로 개선 공사 중이죠.
본관의 경우 과거 KBS 방송국으로 활용했던 곳이라 보안이 강화되었던 시설이었어요. 그래서 구도심의 언덕 위에 있어 접근성이 좋지 못해요. 제2 주차장을 신설해 엘리베이터로 접근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통행량이 많은 대로에서는 아직도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죠. 그래서 버스정류장에서 바로 올라올 수 있는 진입로 개선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진입로만 개선이 된다면 위치로서는 청주의 중앙에 있고, 문화제조창, 충북 문화관, 운천동을 포함하여 ‘ㅁ’자 모양의 박스가 되기에 청주 근거리 투어의 한 꼭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지역의 다양한 문화자원과 연계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죠.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점도 시립미술관의 측면에서는 양질의 문화예술을 지역민에게 선보일 수 있기에 분명 환영할 만한 요소고요.




Q.. 마지막으로 학예사로서 미술관을 오는 시민들에게 미술관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미술은 시각적이기에 많은 사람이 즐기고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장르예요. 그래서 미술은 예술 분야에서 역사적으로 언제나 최전방에 있었어요. 아주 다양하고 활발하게 미술이 세상에 나오고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좋은 미술을 봐야 되겠죠. 좋은 미술을 보려면 좋은 미술관을 봐야 하고, 또 좋은 작가의 작품을 보면 돼요. 좋은 것을 알아내는 것은 간단해요. 미술관을 자주 가면 돼요. 미술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지속적으로 봐야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불행히도 편의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수동적인 자세로 핸드폰, 유튜브를 통해 누가 무언가 말해주기만을 바라죠. 미술관에서도 비슷해요. 도슨트는 왜 안 하는지, 무슨 그림인지 쉽게 설명해주기를 먼저 원해요. 그래서 저는 작품을 보면서 무슨 그림인지 파악하려고 하거나 의도를 읽으려고 복잡하게 생각하고 공부하지 마시라고 말해요. 그냥 미술관에 자주 가서 작품을 오래 들여다보거나 혹은 그 공간에 여유롭게 머무르는 것만 해도 좋아요. 마냥 머무르다 보면 시공간적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직접 공간 안에 머물면서 경험해야 느낄 수 있어요. 만약 교육적인 부분들을 원하신다면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시기를 추천해 드려요. 유아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매번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어요, 미술관이 해야 하는 역할 중에 교육도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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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 043-219-1006
주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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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문화도시조성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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