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비어있는 공간을 예술로 가득 채우다
'시각예술가 박해빈'

박해빈 작가를 만나기 위해 전달받은 주소로 향했다. 매일 차를 타고 지나다니던 길목이지만 안쪽 깊숙이 들어가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주소가 가까워지자 가장 먼저 어느 중학교가 보였다. 마침 학생들의 하교 시간이었는지 생활복을 입은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학생들로 가득 찬 골목에는 작은 분식집과 과일가게 오래된 미용실 등 투박한 일상이 엿보이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었다. 분명 처음 온 동네지만 익숙한 이곳에서 유난히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을 마주쳤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그림 작품 하나가 걸려있고 바로 옆 유리문에는 전시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사실 작품이 걸린 유리창을 보자마자 이곳이 박해빈 작가의 ‘빈공간’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시각예술가 박해빈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예술사, 전문사 과정을 졸업하고 2014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를 계기로 청주에 오게 되었어요. 평면회화 작업을 주로 하며 청주 <빈공간 윈도우 프로젝트>와 제주 <아트스페이스 빈공간>에서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시각예술가 박해빈 ⓒGIEONGNOK(사진출처)



Q. 2014년부터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를 계기로 청주에 오셨다고 하셨는데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청주에서 활동을 이어오고 계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2014년 처음 청주에 왔을 당시는 청주시 내에서 현대 미술과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보여주는 공간이 많지 않았어요. 이에 불특정 일반 다수에게 작품을 소개하거나 문화를 교류하고자 2017년에 이곳 가경동에 개인 작업 공간을 마련했어요. 작업 공간 외부 벽이 유리 벽면인 특성상 외부에서 내부를 볼 수 있는 구조의 공간이었어요. 이 점을 활용하여 윈도우에 전시 공간을 만들었고 <빈공간 윈도우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운영했어요. 윈도우 공간을 만들면 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잖아요. 청주시민들이 일상에서 예술을 접하는 게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죠. 이 프로젝트에서는 청주 기반의 활동 작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작가들 작품을 폭넓게 전시했어요. 그렇게 진행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보다 확장될 수 있는 기획을 고민하게 되었고, 2022년 제주 원도심 ‘무근성 마을’ 안에 복합문화공간 <아트스페이스 빈공간>을 만들게 된 거예요. ‘빈공간’은 ‘비어있는 공간에 새로운 용도를 부여하고, 문화 예술 기획을 채워 넣겠다’는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지만 제 이름인 박해빈의 마지막 글자 ‘빈’을 따온 것도 있어요.
左) 2022 빈공간 윈도우 프로젝트 전시 김태헌 '한판붙자' 右) 2023 빈공간 윈도우 프로젝트 전시 김윤섭 '사악한 계절' (사진. 박해빈)



Q. 앞서 말씀해주신 두 공간의 방향성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신다면요?
빈공간 윈도우프로젝트와 아트스페이스 빈공간을 운영하는 이유는 문화예술에 대한 정체되어있는 무관심의 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어요. 소비하는 생활이 중심이 되어버린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다양하게 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시민들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소비의 문화를 벗어나는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구도심이 되어버린 원도심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어요. 그리고 그곳들은 여러 인위적인 이해와 논리에 의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또는 비정상적 개발로 무분별하게 상업화되기도 하고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네 안에 복합문화공간의 가치를 심어서 그 의미를 꽃피우고자 하고 있어요.




Q. 제주와 청주를 오가며 활동을 이어오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특히 제주를 선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자연을 좋아하다 보니 제주에 자주 여행하러 다녔어요. 전시를 보려고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제주의 원도심에 관심이 생겼어요. 사람들이 떠나고 상권이 죽어가는 곳에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이 돌아오게 된다면 어떨까 싶었고요. 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던 장소, 혹은 건물 심지어는 한 동네가 단 몇 일만에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꽤 많은 분이 겪어보셨을 거예요. 저는 그토록 무언가 빨리 사라져버리고 새로운 게 생겨나는 게 싫었어요.
제주의 경우 특히 제주만의 특별한 자연과 환경, 역사가 있어요. 그리고 이에 대한 이슈와 콘텐츠를 꾸준하게 다루는 작가들이 많이 있고요. 그런데 그러한 작가들이 제주 출신의 작가가 아닌 경우가 상당히 많았어요. 청주도 대청호 미술관에서 지속적으로 지역의 역사와 환경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매해 진행하는데 다양한 작가들이 많이 참여해요. 이러한 작품과 작가를 서로 다른, 그러니까 제주와 청주 외 지역에도 소개할 수 있기를 기대했어요. 또 현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만들어내는 다양한 시각 예술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과 교류하고 소통하길 기대하기도 하고요. 청주시와 제주시를 거점으로 지역과 성별, 나이 등의 구분 없이 다양한 작가들과 교류를 나누고 있어요.

제주 아트스페이스 빈공간


Q. 청주라는 지역에서 살고 있는 작가이기에 지역 작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 키워드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해요.
지역 작가 박해빈, 저를 아직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특정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해서 지역 작가라고 이야기하는 게 넌센스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단순히 특정 지역에 거주하거나 위치하고 있다는 구분으로 지역 작가의 의미를 규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지역이 가진 있는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바탕이 되어 예술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는 작가 혹은 지역이 가진 문화현상을 배경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작가를 지역의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요? 관련해서 예를 들면 제주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이슈가 있어요. 자연과 환경 또 제주 4.3이라는 역사와 제주 해녀를 주제로 구체적인 작업을 이어나가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 지역 문화를 소재로 예술을 통해 풀어내는 작가들은 제주 지역 작가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분명 의미 있게 주목해야 할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있으나 그것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작업하는 지역 작가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거든요. 현대 사회는 지리적 위치로 예술 활동의 수준을 구분할 수 없을뿐더러 한정된 지역 안에서만 활동하는 작가도 없기 때문에 거주 지역으로 작가를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Q. 청주에서 활동을 이어오시면서 힘들었던 점도 있으셨을 거라 예상됩니다. 또한 유의미한 성과도 얻으셨을 거 같고요. 각 관련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을까요?
불특정 다수의 무성의한 관심은 피곤함과 허탈함을 느끼게 해요. 예를 들어 <빈공간 윈도우 프로젝트> 전시 공간이 보이는 창을 가리고 무단 주차를 한다든지, 벌써 7년 차인 윈도우 프로젝트를 지나다니면서도 몰랐다는 무관심, 전시 중인 작가에 대한 정보를 스스로 찾아보려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저에게는 힘듦으로 다가와요. 그런데도 꾸준하게 <빈공간 윈도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지역의 시민들과 관계자들에게 늘 변화하고 새로운 작업을 소개하는 문화공간으로 인지되어가고 있다는 지점은 유의미한 성과라고 여겨져요. 작가 개인의 사적인 공간을 활용하여 공적인 문화프로젝트로 확산하는 그 과정이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아트스페이스 빈공간’에서 진행한 첫 기획 전시가 <빈공간에서 빈공간으로>라는 제목으로 이전에 <빈공간 윈도우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신 작가 네 분의 작품을 기획하여 만든 전시였는데, 또 다른 지역과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전시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의미가 남달랐어요.
Q. 전시회를 기획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작가님의 입장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예술을 향유하는 좋은 방식을 제안해주실 수 있을까요?
음악회나 무용 공연의 경우, 무대 과정이 모두 직접적으로 들리고 보이기에 즉각적인 수용과 비판이 가능하죠. 하지만 전시장에서 만나는 시각 예술의 아우라는 남달라요. 고요한 전시장에서 예술 작품 앞에 서면 보는 것만으로 주눅이 드는 경향이 종종 있어요. 아마 작가가 의도한 방향과 이야기하는 내용을 어떻게 해서든 파악하려고 애쓰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시각 예술의 장벽이 높게 느껴지니 계속 도슨트를 찾고 작품을 감상하기도 전부터 의무적으로 캡션을 모두 읽으려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행동 자체가 장벽을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러한 방식보다는 개인적이고 주체적인 방식을 추천해요. 꼭 이렇게 정형화되고 전문적인 방식만이 답은 아니에요. 좋아하는 색깔이나 선호하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거예요. 되도록 여유 있게 시간을 가지고 감상하다 보면 일차원적인 생각과 감정을 넘어선 감상이 이루어지기도 할 거예요. 그럼 좀 더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이 들면서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Q. 앞으로의 활동 방향성은 어떻게 계획중이신가요?
지난 시간동안에는 외부 후원 및 지원 없이 주로 자체 인프라와 개인 사비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어요. 가치를 담아 기획한 전시라지만 참여하는 작가들에게 페이를 지원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늘 죄송했죠. 작가들에게 후원이 있으면 더 풍성한 기획과 전시가 가능하니 기획하는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고요. 그래서 향후 계획은 지역 문화재단 및 기업 등의 지원과 후원을 통해 보다 규모가 큰 전시를 기획하고 더불어 합당한 작가 페이를 지불하는 지속 가능한 복합예술문화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에요. 제가 작가이기 때문에 공간을 운영할 때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작가들이 전시를 통해 얻어가는 유의미한 성과에요. 마냥 소모되는 전시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EDITOR 편집팀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전화 : 043-219-1006
주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2층
홈페이지 : www.cjculture42.org
청주문화도시조성사업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