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음 세대 기록인
마불갤러리 대표 ‘이종국’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록에 집중하는 마불갤러리 대표 ‘이종국’'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마불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이종국이라고 합니다.
‘마불갤러리’의 ‘마불’이 선생님의 호(號)라고 알고 있습니다. 한지를 만드는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마불’은 저에게 그림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지어주신 호인데, ‘삼베 마’에 ‘부처 불’을 써서 ‘평범한 부처처럼 살아가라’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그리고 본래 자연과 생태에 관심이 많아서 도시보다는 자연을 선택한 삶을 살았죠. 지금 이곳 문의로 오기 전에는 그림을 더 배우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그 기간이 늘어지면서 강원도 정선에서 먼저 살았어요. 절벽 위에 강물의 오리들이 보이는 깊은 산골이었어요. 그다음으로 한지로 유명했던 문의의 벌랏마을에 정착하게 된 것이고요. 종이를 만드는 일의 처음을 떠올리면 늘 생각하는 장면이 있어요. 어느 날 우리 마을에서 마지막까지 종이를 떴던 어르신이 벽장 속에서 본인이 만든 종이를 꺼내 보여주셨던 적이 있었는데요. 예전부터 우리는 죽으면 그 몸을 깨끗하게 닦아 종이에 싸서 땅에 묻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 어르신이 꺼내오신 종이가 바로 본인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남겨두신 마지막 종이였어요. 아직도 처음 그 종이를 봤을 때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만들어진 지 꽤 오래된 종이였는데, 색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깨끗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놀랍고 신기했죠. 그때부터 종이를 만드는 일은 제가 과거에 했던 그 어떤 일보다도 더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마불갤러리 대표 ‘이종국’



기록의 재료로서 종이는 우리 생활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데요, 이것을 만드시는 일을 하면서 어려운 지점들도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종이는 우리 삶에서 아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교육적으로나 문화적 그리고 예술적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이 종이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죠. 하지만 종이가 이 모든 산업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종이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낮아요. 국내에서 종이를 재배하는 농가가 없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죠. 우리가 사용하는 종이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요. 청주가 ‘직지’라는 문화유산을 도시의 문화 정체성으로 삼고 있지만 정작 그 직지가 표현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재료인 ‘종이’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것처럼요. 그래서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 가장 먼저 마을에서 밭을 빌려다가 닥나무를 심었어요. 종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죠. 그런데 이 닥나무를 심는 일은 일반적인 농업에 포함되지 않아 나라의 지원을 받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어요. 같은 밭에 심는 농사이지만 특용작물에도 속하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밭을 빌려주었던 주인이 밭을 다시 내달라고 하는 바람에 공들여 지은 농사를 갈아엎어야 하는 일도 있었어요.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딱 맞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예전보다 작은 밭에 야생 닥나무를 옮겨 심고 연구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우리 마을과 같은 산간 지역은 물론이고 바닷가에도 야생 닥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사는 환경에 따라서 같은 닥나무라 하더라도 특성이 매우 다르고요. 바닷가의 닥나무는 염분 기가 많기 때문에 삶으면 새까만 물이 나오고 냄새도 독특해요. 그런 지표들을 꾸준히 살피면서 연구하고 있어요.

마불갤러리는 문의면의 동네기록관으로 한지와 함께한 지역민들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종이는 우리의 생활에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재료라 그 귀중함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조금 더 생각해보면 종이는 우리 삶의 근간을 담당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옛날에 아이가 태어나면 마당 입구에 금줄을 쳤잖아요. 그때도 태어난 일을 종이에 써서 같이 엮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땅에 묻혀 죽을 때도 또 종이에 쓰여지고 또 싸여서 묻혀요. 종이와 함께 태어나고 또 종이와 함께 삶을 마감하는 것이죠. 또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벽지를 바르고, 실록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무당이 굿을 하고, 장원급제하거나 사주단자를 보낼 때도 우리는 그것들을 다 종이에 기록을 해왔어요. 이처럼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지만 정작 그 종이에 대한 예우는 없었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종이를 예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해요. 종이를 사유하는 공간도 생겨나야 하고요. 단순히 종이를 쑤셔 넣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종이를 예우하는 건축도 생겨나야 하죠. 그리고 그런 공간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공감하는 장소가 될 거예요.

左) 청주시 문의면에 위치한 마불갤러리 右)작품으로 재탄생할 지역의 다양한 재료들


그래서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을 보면 자연과 맞닿아 그 안에서 느끼는 요소들이 많아 보입니다.
맞아요. 아이들에게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학교로 직접 가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지양하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뭣 모르고 학교에 재료 보따리를 지고 가서 해봤었는데, 다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제가 아이들과 나누려는 이야기가 의도대로 전달되지도 못했고 또 학교에서도 이런저런 예산의 문제로 우리 자연의 좋은 재료가 아닌 값싼 재료들만 사용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부딪히는 부분들도 많았고요. 그래서 여기 마불갤러리나 자연의 마당에서 아이들과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제가 집중했던 것은 아이들이 지역에서 나는 나무를 깎고 손질하는 과정이었어요. 그것으로 얼마나 완성도 있게 멋진 작품을 만들었는지 그런 결과적인 측면이 아니고요. 직접 만져보고 깎아보니 느낌이 어땠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죠. 그러면 애들이 선뜻 말을 술술 풀어내지는 못해요. 뭔가 표현하려고 하는데 정확한 표현이 없으니 생각하다가 몸짓과 발짓으로 추임새를 넣기도 하죠. 저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언어가 발달하고 감각 기능이 발달하는 것이라고 봐요. 완성품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과론적인 문화예요. 문화예술프로그램이 결과 중심으로 가면 ‘난 이거 예전에 해봤어, 그러니까 또 안 해도 돼’라는 반응이 나오게 될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이 자연과 함께 스며드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게 해야 하잖아요. 그리고 그게 바로 지역과 농업에 대한 관심과 다르지 않고요.
지금 도시와 관련된 기록들은 여러 형태로 많이 남겨지고 있어요. 그런데 아주 오래전부터 서민들의 삶을 기록하는 문화는 언제나 조금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죠.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라도 좀 더 섬세하게 이런 부분들을 다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또 그런 사람들의 기록은 대부분 생태계와 맞물려 있어요. 지금 우리는 거대한 도시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실상 자연하고 떨어져서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잖아요. 그렇기에 지금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록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아직 미미하게 남아 있는 농경사회 문화는 지금이라는 기록의 때를 놓치면 아마 영영 그 길을 잃어버릴 거예요. 예를 들면 마을마다 소가 사라지면서 소가 끌었던 마차나 코뚜레, 멍에 등 그와 관련된 물건들도 사라지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 물건들을 만들었던 사람들도 없어지고 지금은 그 재료만 남아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그 작은 도구 하나도 모두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에요. 그것들이 다 수백 년 동안 함축된 문화관이죠. 지금 이걸 건드리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이 문화를 잃어버리고 말 테죠. 물론 박물관에서 일부 박물들은 전시, 보존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짜 이야기를 담아내지는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재 우리는 도시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전 생태계를 아우르는 기록을 세심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하는 시점에 와있어요.

EDITOR 편집팀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전화 : 043-219-1006
주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2층
홈페이지 : www.cjculture42.org
청주문화도시조성사업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