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음 세대 기록인
청주대학교 미디어콘텐츠 학부 교수 ‘박상일’
'지역 유산의 수집과 연구 활동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당연한 일'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청주대학교 미디어콘텐츠 학부 교수 박상일입니다.
‘향토사 연구’라는 분야에서 관장님이 언급되는 글을 여러 차례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익숙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낯선 분야가 바로 ‘향토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우리가 ‘향토사(鄕土史)’라는 말을 지금도 어쩔 수 없이 쓰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현재는 ‘지역사(地域史)’라는 말로 바꾸어 사용하는 추세예요. 향토라는 말은 서울이라는 지역에 대응한 지방이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요즘에는 서울도 하나의 지역으로 인식하여 전반적으로 ‘지역사’로 통용되고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향토사’라는 말이 낯선 이유는 요즘 사람들이 지역에 관한 관심이 낮고, 이 분야에 대한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탓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해요.

청주대학교 광고홍보문화콘텐츠교수 '박상일'



이번 호 주제가 ‘지역 유산’이라 인터뷰 전에 제가 지역에 어떤 일들에 관여했는지를 떠올려보았는데요. 우선 가장 먼저 ‘도로명주소’가 생각났어요. 아시겠지만 우리나라가 도로명주소를 도입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잖아요. 지역에 수많은 도로가 있는데, 그곳에 하나하나 고유의 이름을 붙여줘야 하는 큰일이었죠. 그 과정에서 제가 도로명주소 위원으로 참여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올라온 도로명 후보들이 정말 얼토당토않은 것들이 많았어요. 예를 들면 길의 시작과 끝에 있는 아파트의 이름을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짓는 경우였죠. 우리나라는 예부터 언덕이나 고갯길, 들녘 하나에도 다 고유의 이름이 있는 그런 지역 문화를 가진 나라였어요. 그런데 지자체에서 안으로 내놓은 도로명주소에는 우리 지역의 역사적 근거가 하나도 반영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였죠.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불행히도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앞선 경우처럼 그렇게 성의 없이 지어진 도로명주소가 종종 있어요. 그것은 저희와 같이 지역을 오랫동안 연구한 사람들의 역사적, 인문학적 자산이 올바르게 작동되지 않은 결과이죠. 다행히 청주와 충북은 개선의 여지가 있었고, 우리 지역 도로명주소의 근거를 다시 다 찾아서 새롭게 짓는 일에 오랫동안 참여했어요. 그래서 사직대로, 직지대로, 상당로, 흥덕로와 같은 우리 지역을 나타내는 고유의 도로명이 생긴 것이죠.

오랜기간 몸담았던 청주대박물관 전경


학예사로 근무하실 당시에 ‘흥덕사지’ 발굴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흥덕사지는 1984년 한국토지개발공사에서 운천동 일대 택지개발을 시작하면서 발굴된 곳이에요. 지금은 택지개발을 하게 되면 의무적으로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게 되어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도적 장치들이 없어서 덤프트럭이 수 십 대 왔다 갔다 하고 이미 공사를 시작하게 된 정신없는 와중에 발굴된 귀한 지역 유산이죠. ‘직지심체요절’이 어느 곳에서 만들었는지 그 터도 알지 못하던 시기에 그 발굴 현장에서 비를 맞으며 운명처럼 맞닥뜨린 그 순간의 기억은 저에게도 아주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금구는 금고 또는 반자라고도 하는 사찰에서 쓰는 법구인데 지금도 절에서 공양 시간을 알리는데 사용하는 용도도 만든 쇠북이에요, 그 조각에서 ‘흥덕사’라고 쓰인 글자를 발견하고 나서 바로 박물관장님께 이 사실을 알렸고, 최종적으로 흥덕사 절터임이 확인되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금구에서 '흥덕사'라는 글자를 발견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남아있다.


당시 흥덕사지 발굴하시면서 수기로 작성했던 보고서 원본이 다 남아 있을까요?
최종 결과집은 있지만 안타깝게도 기록 원본은 잘 보존되지 않았어요. 지금이야 다 컴퓨터로 작업을 하지만 당시에는 원고지로 정리해서 인쇄소로 보내면 그 원본을 보고 타이핑을 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거든요. 그때 그것을 보존할 생각을 왜 하지 못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네요. 당시에도 기록은 중요했지만, 우리가 미처 이런 부분들은 챙기지 못했던 것이 많이 있었거든요. 해를 거듭할수록 기록을 보관하는 체계를 더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가 되었죠. 그리고 가끔 지자체에서 조사연구를 끝내면 원본을 요청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어요. 그러면 그것들을 확인하고는 그냥 버리는 경우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원본 요청이 있을 때는 자료 확인이 끝나고 따로 보관하지 않을 것이라면 꼭 돌려달라고 말해요. 그래서 이후의 현장기록, 예를 들면 유물카드 같은 것들은 제가 따로 보관하고 있어요.
청주는 지역 유산의 대표 격으로 ‘직지’가 많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직지 페스티벌도 열리고 있고,
운천동 일대가 기록문화 특구로 지정되기도 하였고요.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흥덕사지를 확인하고 나서 발굴 첫 보도 자료를 직접 작업했는데 마지막에 이곳을 사적지로 등록할 것과 고인쇄박물관을 세울 것을 동시에 미래전략으로 내세웠어요. 그리고 그것들이 현재는 다 이루어졌지요. 고인쇄박물관의 경우에는 최근까지도 지역에서 공들여 리모델링을 진행할 정도로 지역에서 관심이 높아요. 저 역시도 2018년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의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우리 지역 유산인 직지가 더욱더 알려질 수 있도록 큰 노력을 기울여왔고요. 다만 아쉬운 점은 모든 행사를 마치고 나서 남는 것이 무엇인가를 한 번쯤 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흔히 행사의 성과로 몇 만 명의 사람들이 방문하였고 공연과 전시, 체험을 얼마나 진행했는지 등등을 이야기하잖아요. 이것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지역에 과연 무엇이 남았는지를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저는 그것이 어떤 물리적인 형태로 남는다면 우리가 생활하면서 지역 유산을 더 친숙하게 인식할 수 있을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 유산을 브랜딩한다는 것은 이런 부분에서 먼저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마지막으로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청주학’을 연구하는 연구소나 모임을 계획하고 있어요. 생활사 측면에서 보면 지금은 수기 기록이 거의 없는 편이지만 과거에는 수기 기록이 상당히 많이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예전 사람 중에서는 글씨는 잘 쓰시는 분들이 정말 많았죠. 저는 그 기록들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을 기반으로 사라지는 것들을 발굴하는 지역학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생각하고요. 지금 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분들의 머릿속에는 무궁무진한 지혜와 경험이 담겨 있는데, 그것이 그분들의 머리 안에만 있다는 것이 문제예요. 돌아가시고 나면 그냥 사라질 지역 유산인 셈이죠. 그것들을 밖으로 쏟아내실 수 있도록 돕고, 이를 사진이나 영상, 문자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해야 해요. 단순히 지역에서 명망 있는 원로들만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성안길에서 오래 장사하셨던 상인이나 한동네에 오래 머무르셨던 토박이들의 기억도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의 한 장면이니 매우 중요하죠. 또한 우리의 지금도 언젠가는 과거가 되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을 담는 과정도 충실하게 진행되어야 해요. 그런 면에서 청주문화도시 조성사업의 동네기록관은 방향과 방법을 조금 조절하면 충분히 이 역할을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지역 유산의 수집과 연구 활동이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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