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음 세대 기록인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문화유산의 기록은 문화재가 겪은 전 과정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문화재활용실장을 맡고 있는 윤나영입니다.
‘문화재 보존’은 익숙한데, ‘문화재 활용’은 다소 생경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경험하던 문화재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가요?
과거 ‘문화재’는 무조건 보존해야 하는, 그래서 가까이 갈 수 없는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요즘은 ‘국민들이 직접 주체가 되어 함께 지켜나가며 향유하는 대상으로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지요. 이는 2000년대 들어서 문화재 정책의 기조가 소극적 ‘보존’에서 적극적 ‘보존’의 개념인 ‘활용’으로 점차 넓어지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런 맥락에서 저희 연구원도 2016년 ‘문화재 활용실’이라는 부서를 별도로 만들게 되었어요. 이와 함께 선조들이 남긴 유산에 대해 물질 중심의 ‘문화재’란 명칭 대신 유형·무형·자연 유산을 포괄하는 ‘국가유산’으로 범위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데요.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문화재연구원’이라는 저희 기관의 이름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하는 일이 단순히 유형의 문화재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조상들이 남겨주신 유·무형의 자산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으니까요.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실장님께서 처음 문화유산 분야에 진입하시게 된 계기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매년 학과에서 2차례씩 답사를 다녔고, 결정적인 계기는 2학년 1학기 경주 석굴암답사였어요. 당시 답사준비팀이라고 해서 학생들이 직접 답사를 기획?운영했었는데, 저도 팀의 일원으로 활동했어요. 그리고 그 답사에서 너무나 운 좋게 들어가기 힘든 석굴암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죠. 석굴암에 들어가서 본존불 앞에 섰을 때 감동도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저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것은 본존불에 가려져 있어 평소에는 직접 볼 수 없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이었어요. 본존불을 돌아 처음 십일면관음보살 앞에 섰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 처음 ‘문화유산’이란 걸 제대로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힘들지만 가치 있는 일을 해오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최근 우리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현장 조사 활동 중 기억나는 사례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희 팀에서 진행했던 제천 ‘오티별신제’ 조사가 생각나네요. 오티별신제는 충북 제천 수산면 오티리라는 곳에서 정월 대보름에 열리는 마을 동제(洞祭)입니다. 이 동제는 현재 충북에서 유일하게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의례인데요. 오티리 사람들은 마을의 주산인 봉화산에 산신을 모시고, 오티리로 들어오는 다섯 고갯마루에는 각각 서낭을 모시고 있어요. 이들이 마을을 보살피는 신령들로, 정월대보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신령들께 마을의 안녕과 한해 농사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죠. 저희가 기록화를 실시했던 해에 정말 눈이 많이 왔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그 눈을 헤치고 산신과 서낭이 있는 산을 올라 제사를 지내세요. 그러면 저희도 다 같이 그 눈밭을 따라 올라가면서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어요. 당시 조사했던 연구원들이나 촬영했던 분들이 참 고생이 많았죠.

제천오티별신제 기록화 모습



매년 하는 행사인데, 그럼 눈이 덜 오는 해에 다시 기록을 남기면 되지 않겠냐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희는 한 해 한 해 이루어지는 것들이 너무나 소중하거든요. 만약 기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동제를 지켜나가는 마을 어르신 중 한 분이 돌아가신다면 이 문화의 일부가 사라지는 거와 같아요. 그래서 그 맥이 끊겨버리기 전에 이 문화를 기억하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더 생존해 계실 때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조급함과 사명감이 있어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모든 활동은 기록을 기반으로 해요. 기록은 조사연구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일차적인 활동인 것이죠. 특히나 무형문화재의 경우에는 보유자 분들이 생존해 계실 때에만 남길 수 있는 기록이기 때문에 시의성이 중요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통에 대한 지식과 기억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나이가 지긋하신 경우가 많죠. 그래서 저희 연구원에서는 올해 더 집중적으로 충북 지역 무형유산에 대한 조사에 힘을 쏟고 있어요. 최근 몇 년간 의미 있는 성과도 많이 이루었고요.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시민들의 관심을 중요한 지점으로 꼽으셨는데요.
실제 지역의 문화유산을 자신의 생활과 큰 연관을 짓지 않고 사는 시민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왜 관심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가지는 분들도 있으실 것 같고요.

저희들이 하는 일 중에 ‘문화재 지정 연구’라는 것이 있어요. 문화재로 지정하려고 하는 대상이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고 조사하고, 지정 이후 보존 활용 방향까지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일이죠. 이렇게 작성된 자료를 토대로 하여 충청북도과 문화재청에 설치된 ‘문화재위원회’에서 문화재 지정 여부를 심의하고 의결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정연구 과정에서 대상 문화재 주변에 사시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해요.

연구원에서 그동안 제작한 지역유산 교육자료



왜냐하면 문화재 지정에 따라 일정 범위 내 건축 행위 등에 대한 규제가 생기기 때문인데요. 지역 주민들의 삶에 영향이 가는 것이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실 문화재 지정을 그렇게 반가워하시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국가에서도 이런 부분들에 대한 문제를 인지하고 절차 간소화나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문화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존재하죠. 이런 부정적인 시선에는 규제로 인한 불편함도 있겠지만 문화재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잠재력이 주민들에게 충분하게 전달되지 못하거나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예요. 작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팽나무처럼, 그 문화재가 주민들의 삶 속에 중요한 의미로 자리잡고 있다면 문화재에 대한 반감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요? 이렇게 공감대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우선은 주민들께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매체로 문화재의 가치와 잠재력, 지정의 필요성 등이 조금 더 충실하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노력이 시민들로 하여금 지역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게 하는 첫걸음입니다. 시민들의 눈높이 맞춰 풀어내어 공유되지 않는 조사연구 기록은 그 속에 담긴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을 거예요. 겉보기에는 그저 낡고 고리타분한 옛 사람들의 흔적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나면 그 문화재가 다시 보이거든요.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저희가 하고 있는 조사?연구?기록 작업이고, 이를 확산시키는 것이 2차 콘텐츠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고 축적되어야만 문화재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감소하고, 단순히 남겨진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시대 문화의 일부로서 인식되게 될 것이라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실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문화재를 이야기할 때면 으레 언제 처음 만들어진 것인지, 언제부터 시작하였는지 그 시작점에 초점을 맞춰지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그 시작만큼이나 그 문화재가 겪어온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 그 문화재가 탄생했을 때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은 매우 다를 거예요. 세월 속에서 낡고, 쓰러지고, 훼손되고, 혹은 보수되거나 중건되었을 수도 있겠죠. 아예 주변 환경이 싹 바뀌었을 수도 있고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하는 문화유산의 기록은 문화재가 겪은 그 전 과정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 과정도 우리의 역사 중 일부이기 때문이죠. 국립중앙박물관 로비에 있는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의 예를 볼까요? 이 탑비는 원래 월악산 자락 제천 한수면 동창리에 있었던 것이었는데, 일제강점기 일본의 문화재 수탈과정에서 옮겨져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있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일제에 의해 해체되고 옮겨지는 과정을 찍은 유리건판 사진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그 사진들처럼 탑비가 겪었던 이야기가 곧 우리의 역사이고, 이런 역사들이 쌓여 원랑선사탑비의 가치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해요. 일제 수탈의 아픈 상처였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의 찬란한 불교 문화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으로 국립중앙박물관 로비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으니까요.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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