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음 세대 기록인
‘처음책방’ 책방지기, 세명대학교 김기태
'후세를 위한 기록에 초점을 맞춘다면 중요한 것은 다양한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세계 유일의 초판본 창간호 전문서점 ‘처음책방’의 책방지기, 세명대학교 김기태 교수입니다.
‘처음책방’의 위치가 참 좋습니다. 가슴이 시원해지는 전망이네요. 어떻게 이곳에 자리 잡게 되셨나요?
우연히 발견한 장소였어요. 세명대학교 바로 앞이다 보니까 오가며 눈에 띄었죠. 임대안내문이 붙어있어 들어왔는데,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아 딱 우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저 혼자 오붓하게 지내려던 공간이었는데 언론에 나가면서부터 전국에서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제 놀이터로 시작한 공간이 이제 일터가 되어버린 셈이죠. 현재는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오픈하고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는 휴무로 운영하고 있어요.

처음책방은 초판본·창간호 전문서점으로 충북 제천에 있다.



추억의 발견이라고 생각해요. 이곳은 추억을 소환하는 공간인 것이죠. 추억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에게 오래된 앨범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보통 이곳에서 책을 둘러보시는 분들은 기억 너머에서 잊혀있던 추억을 소환하고, 그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주고 가세요. 책을 구매해서 가시는 분들도 일반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실 거예요. 부모님과 같이 오시는 분들이나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까지 해서 3대가 함께 오시는 때도 있어요. 오래된 책들을 보고 아버지는 할아버지한테, 아들은 아버지한테 물어보면서 세대 간의 소통이 이루어져요. 세대 간의 단절되었던 부분을 이곳에서 찾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같아요.

책방지기가 엄선한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한자리에 만나볼 수 있다.



또 다른 매력은 ‘처음’이라는 의미를 가진 장서들의 특별함이죠. 특히나 초판본과 창간호에는 당시의 시대상이 잘 담겨있어요. 익히 잘 아시는 당대 최고의 인문학 월간지였던 <뿌리 깊은 나무>의 창간호부터 폐간호를 보면 군부독재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죠. 또한 박완서 작가의 등단작인 <나목>의 경우는 여성동아라는 잡지의 별책부록으로 먼저 세상에 나왔어요. 여성동아 공모전의 당선작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이후에 정식 단행본으로 출판되었고요. 초판본과 창간호에 얽힌 다양한 스토리는 결국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의 역사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에 더욱 특별함을 가지고 있어요.
초판본과 창간호를 수집하셨다는 점이 특이한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이 공간과 수집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우리나라 공인 1호 출판평론가예요. 많은 분이 문학평론가와 헷갈려 하시는데, 문학평론가는 작품의 질적인 수준을 평가한다면 출판평론가는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책의 가치를 다방면에서 평가해요. 외형의 표지 디자인, 제본의 특수성, 행간과 자간을 포함한 가독성, 콘텐츠가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전반적으로 평가하죠. 그래서 지금도 여러 곳에서 신간을 많이 보내주시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출판평론가의 관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들은 수집하고 있어요. 장르로 본다면 거의 문학이나 예술 영역 책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책들은 나름대로 검증이 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고 독자 군단도 탄탄하죠. 종종 의미가 남다른 책이나 전문서적도 수집하지만, 요즘의 전문서적은 거의 대학교재라서 그 분야까지 모두 수집하진 않아요. 그래서 여기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컨셉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발행한 지 20년 이상 지난 책들이 많아요. 아직 개방하지 못한 것들도 책방 앞 컨테이너 안에 가득 쌓여있어요. 얼른 정리해서 풀어 놓아야 하는데 공간도 부족하고 시간도 여의치 않고요.
그렇다면 책을 관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어떻게 관리하고 계신가요?
그럼요, 종이이기 때문에 우선 기본적으로 습도 관리가 중요해요. 그리고 관람객분들이 오셔서 손이 타기도 하고, 먼지도 많이 앉기 때문에 청소도 꼼꼼하게 해야 하죠. 여기가 또 서점이라 판매할 책에는 가격 정보가 들어간 바코드를 새로 붙여야 하거든요. 그런데 귀한 책 위에 바로 붙이고 싶지 않아서 비닐을 한 번 감싼 후에 붙여놨어요. 이러한 작업도 손이 굉장히 많이 가는 일이었죠. 꺼내놓은 책들 말고도 사실 귀한 책들이 많은데, 조정래의 <한강> 10권 모두 초판본을 구했어요. 또 남한에서 처음 나온 <임꺽정> 초판본도 있고요. 이런 책들은 워낙 귀해서 손을 타지 않도록 잘 넣어두었는데, 이후에는 이런 것들도 꺼내서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하려면 전시 시설이 잘 갖춰져야 하거든요. 그 시설까지 구축하려고 하면 정말 아직도 할 일이 많아요.
또 중요한 일은 책 목록을 데이터화 하는 일이에요. 현재는 여기 책방 안에 있는 것들의 3분의 1정도 완료한 상태예요. 누구 손을 빌리지 않고 아내와 둘이 직접 하다 보니 오래 걸려요. 처음엔 학생들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해서 정리하면 빠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래된 책은 제목도 한자로 적혀있어서 요즘 학생들이 그걸 읽어내질 못하더라고요. 또 목록과 더불어 복각본으로 제작할 계획을 가진 김영랑 시인의 <영랑시선> 같은 책들은 스캔 작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점진적으로 메타버스 책 박물관을 만들어 온라인으로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을 세우고 있죠. 수집에서 끝나는 것뿐만 아니라 이것을 많은 분과 공유할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후세를 위한 기록에 초점을 맞춘다면 중요한 것은 다양한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의 자료라는 것들은 사라지면 묻히지만, 기록으로 남으면 역사가 되죠. 그러니 우리는 역사를 남겨줘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이때 좋은 것만을 남겨주려고 하는 태도가 위험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기록하려는 것이 현재 좋은 의미 혹은 나쁜 의미가 있더라도 기록은 반드시 양쪽 다 필요한 것이에요. 그것이 어디에 편향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다양한 시선이 올곧게 남는 것이 중요하죠. 왜냐하면 미래에 그것을 판단하는 주체는 바로 다음세대들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미래를 먼저 판단할 수 없으니까요.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다음세대들의 몫이기에 우리가 굳이 평가한 것을 남겨줄 필요는 없어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자료예요. 기초자료로서의 기록이 충실하게 남겨진다면 그것이 바로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들이 자유롭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끔 기초자료를 충실하게 남기는 것, 그래서 저도 많은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온전히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은 짧은 콘텐츠가 장악하고 있는 시대잖아요. 그러한 콘텐츠는 단순히 보고 소비하는 것이지만, 책은 읽고 사유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 종이책의 가치가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남긴 이 기초자료를 통해 사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종이책은 지금도 미래에도 중요한 매체로 자리할 것이라 믿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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