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음 세대 기록인
고서수집가 ‘남요섭’
'잊혀져 가는 사람들의 흔적을 더욱 소중히 하는 기록문화가 널리 퍼졌으면 해요'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고서수집가 남요섭입니다.
언제부터 고서수집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첫 사례가 기억나시는지 궁금합니다.
1980년 제가 청원군에 근무할 당시 담당 부락의 이장이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집을 수리하는데, 그 집에서 나온 고서를 한번 보러오라고 하더라고요. 선조 때부터 쓰던 것들인데 필요하면 가져가도 된다고 흔쾌히 문을 열어줬어요. 만약 제가 가져가지 않으면 아마 그냥 다 버릴 요량이었을 거예요. 얼결에 자전거를 타고 전부 싣고 와 보니 정말 귀중한 자료들이 많았어요. 제 손바닥만 한 종이 쪼가리 하나에도 우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더라고요. 그 충격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부터 모으기 시작한 자료들이 지금 꽤 많아졌죠. 고서부터 고문서, 신문, 책, 사진, 포스터 같은 지류들도 있었지만 음반, 담뱃갑, 메달, 트로피 등 박물도 가리지 않고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고서수집가 '남요섭'



어떤 분야의 고서들을 주로 수집하시나요?
시기상으로는 조선 중기부터 만들어진 옛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어요. 당대의 생활사를 알려주는 문서들이 많죠. 그래서 고문서를 수집하면 우리 근현대 역사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요. 한 예로 제가 일제 강점기 측량학교가 들어오고, 측량기사들이 배출될 당시의 측량도를 수집했었어요. 지금의 기술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정말 정교하고 정확한 측량도였죠. 아마 현재의 측량기사들이 손으로 그린다 해도 이 정도 퀄리티는 나오지 않을 것 같을 정도로요. 오히려 손으로 하는 일은 과거의 기술자들이 더 우수한 부분이 많지 않았었을까 생각해요.

上) 그의 수집품은 충북 청주시 우암동 창고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다. 下) 지역과 민중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고문서와 사진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수집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자기만족이 제일 크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본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취미생활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저는 이 귀한 기록들을 발견하고 수집하는 것이 너무 만족스러운 활동이에요. 무엇인가를 좋아해도 수집을 하는 사람과 그냥 보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이것을 발견하고 소유하는 것에 매력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남들은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내가 발견한다는 희열도 있고요. 그리고 수집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워요. 제가 알지 못했던 진짜 역사의 현장을 알아가는 배움의 기쁨이 크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매우 건강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역사의 조각들을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나름대로 수집품을 고르는 안목도 생긴 것 같고요. 근현대 역사에서 가치 있는 물품들을 많이 수집하다 보니 자부심도 많이 생겼어요.
지역에서 수집가로 활동하시면서 힘들거나 아쉬운 일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가끔은 방송국이나 언론사 혹은 문화기관에서 필요로 의해 저를 찾는 경우가 있어요. 한글날이면 한글에 대한 자료, 삼일절이면 독립운동에 대한 자료 등. 본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자료들이 혹시 저에게 있을까 싶어 요청하는 거죠. 그럴 때면 3~4일 전에 미리 나와 그 관련 자료들을 다 찾아서 꺼내두어야 해요. 그렇게 다 세팅을 해두면 촬영팀은 당일에 와서 촬영만 하고 돌아가거든요. 물론 지역의 다양한 역사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과 그것이 널리 쓰이는 것만으로도 수집가로서 보람차지만 가끔은 너무 당연한 듯이 내놓으라는 요구에 허탈감이 들 때도 있어요.





제가 시간과 돈이 남아돌아 수집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저 역시도 나름의 철학과 신념으로 일생을 바쳐서 해낸 일인데 가끔 그렇게 휩쓸고 지나가면 힘이 빠질 때가 종종 있어요. 그래도 거절할 수는 없어요. 수집한 물건 하나하나 그 소중함이 있고, 이것은 많은 사람에게 공유되어야 그 가치가 발휘되는 것이니까요. 어떨 때는 이 일이 저와 같은 개인이 아닌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스스로 누가 부여하지도 않았는데 제가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계속하고 있고요. 또 힘들었던 부분은 공간이었어요. 책을 비롯한 여러 박물을 보관하다 보니 물리적인 공간도 많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현재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곳 우암동 말고도 외곽지역에 컨테이너가 증평과 음성에 2개 정도 더 있어요. 이것을 한곳에 모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싶은 바람이 늘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바람은 너무 늦기 전에 ‘작은 박물관’을 만드는 일이에요. 저 혼자서는 무리일 것 같고 관심을 가지고 협업할 수 있는 기관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수집한 지역의 다양한 수집품을 시민들이 언제나 와서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죠.
실제 선생님의 수집품이 지역의 많은 곳에 기증되어 볼 수 있는 곳이 몇몇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수집한 물품들이 시민들과 만나 또 다른 기록으로 쓰일 수 있으면 상황이 허락하는 한 기증하는 편이에요. 작년 청주시에 시민기록관이 세워질 때도 사백 점 정도 기증을 했고, 충북 경찰청이나 도서관에도 꾸준히 기증을 해왔어요. 수집도 사실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작업이라 필요하다고 다 줄 수는 없지만, 지역에서 의미 있는 자료로 쓰인다고 하면 그래도 마음으로 내어주게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수집품들을 매입보다 거의 기증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기는 해요.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요즘에는 점차 매입하거나 대여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해요. 그러나 결국 수집품도 시민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빛을 발하는 자리라면 찾아가게 해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기증하면서도 뿌듯했고요.
선생님의 개인 기록도 많이 남겨두시는 편이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평생 일기를 써왔는데 이사를 하면서 많이 잃어버렸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쓴 일기가 딱 한 권 남아있어서 그것은 잘 보관하려고 책을 만들었죠. 저는 일기를 거창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한 줄이라도 남기려고 노력하거든요. 일기 쓰기가 부담되었다면 매일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한 줄이 제 인생 기록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것이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쌓이면 또 하나의 자료가 되기도 하고요. 그렇게 꾸준히 일기를 쓰다가 딱 한 번 일기를 쓰지 못했던 시기가 바로 군대에 있을 때였어요. 편지를 보낼 때 날짜도 쓰지 못하게 하더라고요. 검열을 정말 꼼꼼하게 하던 시기였어요. 그런 상황이라 군대 내에서 일기를 쓸 수 없어서 제대하고 3년 치의 일기를 몰아서 썼어요. 그 시기의 일기를 ‘진중일기’라고 정리해두었어요. 그리고 ‘작은 역사’라는 제목으로 제가 근무하는 동안 사용했던 명찰과 행사용 리본을 정리해서 만든 책이 있어요. 그 책의 서문에 ‘대다수 직원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작은 소품이지만 내 인생의 꿈과 희망과 젊음을 불태워 헌신 봉사한 지방공무원의 작은 역사로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앞으로 지방행정을 연구하는 분들께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해봅니다.’라고 적었어요. 바로 이것이 제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마음가짐이에요.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은 무엇인가요?
기록이라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매일 쓰는 일기에도, 어릴 때 가지고 놀던 팽이나 자치기에도 추억이 깃들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다 기록으로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쓰지 않지만, 옛날 어머니가 쓰시던 다듬잇돌이나 다듬이만 보아도 당시 생활문화가 담겨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너무 쉽게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워요. 그래서 앞서 제가 만들었던 ‘작은 역사’처럼 잊혀 가는 사람들의 흔적을 더욱 소중히 하는 기록문화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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