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마수걸이와 덤
'글. 최명임'

오일장은 물론 무싯날에도 서는 난장을 즐겨 찾는다. 진부한 듯 보이지만, 뭇 사람의 애정이 깃들고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장터가 좋다. 남편은 전국의 장날을 다 꿰다시피 한다.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된장국처럼 소박한 인심과 새록새록 고향 냄새가 나는 물건들을 보면서 고향의 풍경을 그린다. 사야 할 물건도 없는데 갑자기 살 것이 많아지고 어느새 손에는 추억의 물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온다.
내가 살던 고향에 가면 예전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한 집 두 집 비어가는 쓸쓸한 풍경을 마주한다. 옛날로 돌아가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해진다. 돌아와 고향을 생각하면 빛바랜 무채색 같고 감정 이입된 피사체에 불과하다. 기억 속에나 생생하게 살아있는 고향, 그런 내게 장터는 향수를 파는 곳이다.





촌스러워서 정겹고 재미있는 풍경이 무진하다. 난전 골목, 소도록하게 담긴 남새의 풋풋한 민낯은 시골 처녀 분이를 닮았다. 그래서인가, 때 빼고 광내어 곱게 포장한 남새는 왠지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을까 하고 의심을 하고 본다. 더구나 대형마트에 가면 강한 불빛을 쏘아 구매욕을 일으키는데 상술이 빚어낸 속임수가 보여 오히려 구매욕이 떨어져 버린다. 분이가 분첩으로 마무리하고 벤지 바른 미스 김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촌로의 유일한 매물은 푸성귀 한 자루, 떡장수, 두부 장수, 바퀴벌레 약장수, 닭집에서 홰치는 소리, 뻥이요-. 왁자한 난장에 쿵쾅거리는 맥박 소리가 허벌나게 들린다. 이 역동적 삶의 현장에 들어서면 거부할 수 없는 에너지로 살맛이 난다. 사는 재미가 없을 때 시장엘 가보라던 누군가도 마수걸이와 덤으로 희망을 얻어 간 경험이 있을 거다.





장터에 가면 원칙은 아니어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장사꾼에게 마수걸이는 불문율 같은 것이다. 새벽 장에 갔다가 된통 싫은 소리를 들었다. 물건을 두고 흥정 하다 돌아서는데 뒤통수에 강하게 한방 날아온다.
“사지도 않을 걸 값은 왜 물어보냐고. 재수 없게 마수도 못 했는데?.”
아, 미처 배려 못 한 나의 잘못이다. 그렇더라도, 물건을 파는 사람이니 사는 사람의 마음을 사두면 필경 쓰임새가 있을 텐데. 그는 기대해도 좋을 다음까지 놓쳐버렸다. 말 한마디에 정 나는 것을,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걷다가 곰곰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은 내 입장이다. 그에게 마수걸이는 절절한 생활의 희망일터, 시작이 좋았으면 종일 흥감스레 장사를 할 터인데 나로 인해 하루를 망치지는 않을까 싶어 미안했다. 불쾌감을 내려놓고 이내 마음을 돌렸는데 이 또한 흐벅진 시장이 자아내는 고향 분위기 탓이리라.





마수걸이 위력은 대단하다. 경기장에서도 선제골로 마수걸이를 하면 연이어 점수를 따내고 그날의 승리를 장담하기도 한다. 세상에 나가서 드높은 기상을 날리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추신수가 마수걸이에서 만루까지 홈런을 날려 오면 우리는 여기서 덤으로 무한한 즐거움을 얻는다. 동네 앞 옷가게와 미용실은 유동인구가 적어 늘 한산한 편인데 아침에 마수걸이를 하는 날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런 날은 마수걸이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환하게 웃는데 샐리의 법칙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신념으로 대박 나기도 할 것이다.
시작의 힘은 어떤 이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출발이 여의치 못하면 더러는 머피의 법칙처럼 나날이 도산해가는 절망스러운 삶이 이어진다. 누군가에게 그 이유를 떠넘기고 금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의 준비된 출발을 못내 부러워하지만, 장터에도 변수가 있듯 인생도 수학 공식처럼 명쾌한 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덤은 내 입장이다, 한 줌 덥석 집어 건네주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이와, 받는 이가 모두 즐거운 것이 덤이다. 덤이라는 소소한 물건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삭막해진 세상 한줌 내어주는 정에 즐거워지는 것이다. 덤을 달라고 하면 칼같이 자르는 이가 있다. 직선적인 그녀는 물건과 가격의 균형을 맞춰놓고 소신껏 장사할 테고 그녀의 삶도 그러려니 한다. 조금 덜 놓고 덤으로 인심을 쓰는 이도 있다. 약은 수가 애교로 보이는 것은 상대를 즐겁게 하는 유머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더러는 손해인 줄 알면서 듬뿍 건네는 이도 있다. 베풀지 않으면 몸살이 나는 사람일 거다. 혹 그 자리에 앉으면 나는 어떤 유형이 될까. 더도 말고 장터에서도, 인생에서도 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마수걸이는 느낌 좋은 시작이요, 덤은 횡재 같은 즐거움이다. 그가 어제부터 기대했을 오늘, 내일을 위한 간절한 시작에 내가 초를 쳤으니, 내일은 푸짐한 마수걸이를 해 주어야겠다. 덤을 달라고도 해볼까?
돌아보니 내 인생도 마수걸이와 덤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신은 내 시작을 알몸뚱이로 던져놓고 때맞추어 마수걸이로 내게 희망을 주었다. 나를 위해 있는 것은 모두가 덤, 생각을 바꾸면 우리를 즐겁게 하는 덤이 무진장하다.
활개 돋친 듯 세계로 뻗어 나가는 우리의 경제시장도 작은 장마당 마수걸이와 덤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러고 보면 내 고향 장터도 불같이 일어났던 시장경제에 한몫 단단히 하였음은 물론 세계 경제를 활성화하는데도 이바지한 셈이다.
고향을 잊지 못하는 남편과 나는 애써 오일장 풍경을 찾아 나선다. 한보따리 사들고 돌아서는 어머니 모습도 설핏 보이고 거나하게 취한 동네 할배도, 이웃 아재 아지매들도 보인다. 푸짐하고 정겨운 사투리와 웃음소리 범벅인 장터에는 삶을 일구는 소리가 쟁쟁하다.
향수를 파는 장터에 가면 희망을 주는 마수걸이도 있고 즐거운 덤도 있다.

EDITOR 편집팀
최명임 작가
이메일 : cmi3057@naver.com
2014년 문학저널 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 회원, 내육문학회원 / 충청타임즈 ‘생의 한가운데’ 필진(전)
청주교차로 신문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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