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무 솎는 날
'글. 이정연'

혹시 싹이 잘나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씨를 좀 많이 넣었더니 가을무가 마치 만세라도 부르는 듯 온 밭에 푸르다.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그 함성이 들리는 것 같아 선뜻 손을 못 대고 차일피일하다 이러다 정말 농사 망치겠다 싶어 모질게 마음먹었다. 하나 같이 예쁘게 자란 무를 어느 것은 뽑아내고 어느 것을 남겨야 할 지 모르겠다. 처음에 좀 실하게 자란 녀석을 남겼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간격이 들쭉날쭉해서 안 되겠다. 할 수없이 좀 자라도 잎이 서로 부딪히지 않은 정도로 간격을 두고 다 솎아내는데 무가 자꾸 쌓인다.
이 아까운 걸 버려야 하나 생각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밭 근처엔 수목원에 운동 갔다가 지나치는 사람이 늘 있다. 옳지 그 사람들에게 주면 되겠구나 싶어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불러 세우고 사정하듯이 말했다. 무를 솎아 내는데 너무 많아서 그런다고 한 마디 덧붙였다. 한 아주머니는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받아갔고 또 한 아저씨는 그냥 가져가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미안해하면서 받아갔다. 아주머니 표정이 너무 좋아서 집에 가면 쓰레기가 되니 떡잎은 다듬어 여기 두엄더미에 버리고 가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씨를 뿌리고 싹이 나는 농작물을 보는 것도 자식 키우는 것 못지않은 보람이지만 내가 키운 나물을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주는 기쁨 또한 그에 비길 게 아니었다. 천연염색한 한복을 곱게 입은 부부가 지나가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무 솎아내는데 너무 많아서 그러니 좀 가져가실래요?' 했더니 부부가 한참 소곤소곤 이야기 끝에 대답도 없이 그냥 가 버렸다. 나는 혹시 가질지 모르는 부담까지 배려해서 솎아 내는 날이란 것과 너무 많아서란 말에 악센트를 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말없이 가버려서 상처를 받았다. 그렇게 떠난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짐작이라도 할까. 하긴 원하는지 원하지 않은 지도 모르고 주려고한 내 잘못이지 그 사람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래도 한 마디쯤 다른 야채가 많다고 하든지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좋지 않은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다.
주는 것도 이제 요령이 생겼다. 젊은 연인 같은 부부한테는 주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가을무 겉절이나 데쳐서 참기름과 깨소금에 무친 나물보다 랍스타에 열광하고 피자에 더 친숙할 것 같아서였다. 주는 거여서 마지못해 받기는 하겠지만 십중팔구 이걸로 뭘 해먹지 고민하다가 쓰레기통으로 가기 십상일 것 같아서였다. 다 솎아내려다가 좀 남겨 두었다. 근처에 언니 친구가 사는데 그 언니는 무나물을 좋아한다. 전화해서 솎아 가라고 하면 될 터였다.





같은 나물이지만 어린 무는 겉절이나 데쳐서 무쳐 먹는 게 좋고 자라서 잎이 억세어 지면 말려서 푹 삶고 시래기로 먹어야 한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도 다 때가 있어 근처에서 농사짓는 분들에게 좀 드리고 싶은데 나와 밭에 나오는 시간이 다르니 만날 수가 없다.
어쩌다 만나서 마음대로 뽑아가라고 해도 주인이 밭에 없으면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 제발 좀 뽑아가세요 사정해도 소용없다. 그 사람들에게도 농작물이 자식처럼 여겨지는 까닭일 터였다.
옆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다 몇 년씩 주말농장을 해서 그림처럼 예쁘게 농사를 짓는데 내 밭은 그렇지 못하다. 약도 할 줄 모르고 벌레 먹은 것도 있고 고라니가 와서 잎을 다 뜯어 먹고 속잎만 남아 있는 것도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셨으면 아마 노발대발하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산비탈 늘어선 밭 중에 우리 밭에 곡식이 말라서 노랗거나 밭에 풀이 있거나 붉어진 고추를 따지 않았거나 하면 야단을 치셨다. "그 밭을 보면 주인의 성품을 아느니......" 하시면서 놀아도 밭에 가서 놀라고 우리들을 밭으로 쫓아 보내셨다. 그래도 나는 태평이다. 고라니가 먹으면 고라니가 남겨 논 것만 먹고 굼벵이가 먹으면 굼벵이가 남겨 놓은 것만 먹었다. 그래도 올 가을엔 끼니때마다 풋콩밥을 해 먹었고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상추가 떨어지지 않았고 어떤 야채도 사먹지 않았다. 농약 걱정이 없어 여름 내내 식탁이 행복이었고 마음 내킬 때 친구를 불러다 파며 상추며 부추를 안겨 주었다.
야채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들을 겨울까지 두고 먹을 수는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음식에 관한한 내 것이란 우리 가족이 먹을 수 있는 분량까지만 내 것이다. 잎이 억세어져서 따 버리기 전에 누구라도 제발 좀 따갔으면 싶어 '상추 좀 따 가세요.' 하고 하나 팻말을 세우고 싶어도 지나치는 사람이 많으니 혹시 우리 먹을 거 까지 다 따 가버릴까 걱정이 되어 그렇게는 할 용기가 없다. 있는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원하는 만큼 잘 나누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고스란히 느낀 하루다.

EDITOR 편집팀
이정연 작가
이메일 : manjuyeon1@hanmail.net
2003년 4월 수필문학 등단.
2004년 중부매일신문 세정유감코너 짧은 수필 집필 (1월-4월까지)
2004년 여름호 수필 ‘망월사에서’ 에세이문학 등단
2004년 영남수필 회원 –2019년
2006년~2008년 에세이문학 올해의 수필 20선 추천
에세이문학 수필과 비평 에세이21 수필사랑 대구문협지 다수 기고
2011년 - 현재 대구 달서구 현대힐공인중개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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