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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행
남한강이 품은 이야기, 남한강을 품은 사람들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충북 - 단양Ⅲ'

전망 좋은 곳에서 본 단양의 남한강 풍경을 모았다. 풍경 속으로 들어가 남한강과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냇물을 가까이서 보았다. 솔티천, 노동천, 남조천, 죽령천, 단양천 그리고 작은 물줄기들... 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남한강으로 모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옛 역사의 흔적은 단양을 보는 새로운 눈을 선물했다. 지면에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가 자꾸 입에서 맴돈다.

고수대교에서 본 남한강


솔티천과 고수동굴
단양 읍내 단양구경시장 앞 남한강에 놓인 고수대교 동쪽 끝 아래에 솔티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이 있다. 솔티천의 시원은 소백산이다. 천동리 천동탐방안내소 앞을 지난 솔티천이 처음 만든 폭포가 다리안 폭포다.
천동리 마을 이름은 이 지역 옛 이름인 샘골에서 유래했다. 계곡 물도 맑으니 샘물이 맑은 건 당연한 일, 그래서 마을도 샘골이었다. 다리안 폭포는 3단 폭포다. 계곡물이 흐르다 세 번 떨어지고 세 번 고인다. 폭포 이름인 ‘다리안’은 산 이름인 ‘다리안’에서 따왔다. 다리안산을 교내산이라고도 했다. 다리안 폭포 안내문에 한자로 橋內瀑布(교내폭포)라고 적혔다. 다리안 폭포에 이르기 전 골짜기에 구름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 다리를 건너야 폭포를 만날 수 있어서 다리안 폭포가 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세 번 떨어지는 폭포와 세 개의 소가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아서 ‘용담폭’이라고도 불렀다.

솔티천 상류 다리안 폭포



솔티천은 천동리 아래 금곡리를 지난다. 금곡리 북쪽은 가곡면 대대리다. 두 마을을 잇는 고개 이름이 매남이재다. 옛날에 매화나무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금곡리 솔티천 북쪽 매남이재를 넘던 옛 사람들은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난 매화꽃 향기를 맡으며 꽃길을 걸었겠다. 그렇게 고개 넘어 가곡면 대대리 하일천에 다다랐을 것이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고갯길이 매화꽃길이었다니, 그 길에 흐드러졌을 낭만을 생각하니 가슴이 울렁거린다. 매남이재 고갯마루를 사이에 두고 금곡리와 대대리 두 곳 모두 매남기골이라는 이름이 전해진다.
금곡리 금곡교를 지난 솔티천은 수촌계곡을 흘러온 물과 하나 되어 흐르다 고수대교 아래서 남한강이 된다. 솔티천이 남한강이 되기 전에 고수동굴 앞을 지난다. 약 1.8㎞ 정도 동굴을 걷는다. 평탄한 길, 계단길, 나선형 좁은 계단을 지나기도 하는데, 그 수고를 위로해줄 풍경들이 동굴에 가득하다. 특히 ‘천년의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종유석과 석순이 만든 풍경 앞에서는 저절로 걸음이 멈춰진다. 동굴 천장에서 아래로 자라는 종유석과 동굴 바닥에서 위로 자라는 석순의 끝이 닿을 것 같이 마주하고 있다. 그 두 끝의 사이가 약 15cm이고, 둘이 만나 하나가 되려면 적어도 1000년은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 종유석과 석순을 두고 ‘천년의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다.
시루섬을 지난 남한강이 죽령에서 흘러온 죽령천을 만나다
남한강이 시루섬을 지난다. 지금 남아 있는 섬은 원래 시루섬의 일부다. 시루섬에는 수해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남아있다. 1972년 단양 대홍수 때 불어나는 강물을 피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던 높이 7m, 지름 4m의 물탱크에 오른 마을 주민 250여 명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14시간을 견뎌 살아남은 이야기가 깃든 곳이다. 물탱크에 올라 팔짱을 끼고 서로 부둥켜안고 아이들은 어른들 어깨 위에 올라서서 버티던 14시간, 안타깝게도 한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긴 채 숨을 거뒀다. 대열이 흐트러지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을 알았기에 엄마는 죽은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죽을힘을 다해 견뎌야 했다. 거룩한 생명, 지금 남아있는 작은 시루섬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단양역 앞 남한강가에서 본 풍경. 사진 가운데 시루섬이 있다.



시루섬을 지난 남한강은 소백산 죽령에서 흘러내린 죽령천을 받아들인다. 죽령 고갯마루는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가 만나는 곳이다. 죽령은 158년 신라 아달라왕 때 신라사람 죽죽이 길을 냈다고 전해진다. 20세기 초까지 죽령옛길을 이용했다는 안내문의 설명으로 보아 2000년 가까운 세월 사람들이 넘나들고 있는 고개다.
소백산 죽령 고갯마루 서쪽 비탈에서 시작된 죽령천 최상류 지역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가보지 못하고, 용부원2리 경로당 주변에서 죽령천과 처음 만났다. 수수한 산골마을 어디나 있을 것 같은 마을 냇물이 흘러 죽령폭포를 만들었다. 폭포를 지난 죽령천은 낮은 계곡으로 흐르고 그 위 산등성이에는 ‘단양 죽령 산신당’이 있다. 산신당은 죽령산신령인 ‘다자구 할머니’를 모시는 곳이다. ‘다자구 할머니’가 죽령산신령이 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에 죽령 주변 산에 산적이 많았다. 산세가 험해서 나라에서도 산적을 소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 할머니가 꾀를 내어 관군과 짜고 산적을 토벌했다. 할머니가 큰아들 이름을 다자구, 작은아들 이름을 들자구라고 정하고 산적에게 붙들려간 아들을 찾는다는 핑계를 만들어 산적 소굴로 들어가겠다고 한 것이다. 산적들이 다 자고 있으면 ‘다자구야’를 외치고 한 명이라도 깨어있으면 ‘들자구야’를 외치기로 했다. 산적 소굴을 찾아간 할머니는 두목의 생일잔치를 마친 산적들이 술에 취해 다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다자구야’를 외쳤고, 그때 관군이 산적을 소탕했다는 이야기다. ‘다자구 할머니’가 죽어서 죽령산신령이 됐다고 한다.
단양천과 남한강, 하진 나루 옛 이야기
소선암자연휴양림의 아침은 상쾌했다. 개울가 작은 오두막에서의 하룻밤, 창문을 열면 물소리가 들린다. 자명종이나 알람 같은 기계음은 아침의 고요를 깨뜨려 깨우지만 개울물 소리는 아침의 고요에 스며 깨운다. 요즘 같은 계절 물가의 아침 산책은 산허리까지 내려온 안개 구름과 함께 한다. 소선암자연휴양림 앞을 흐르는 물길은 20㎞가 넘는 선암계곡으로 더 잘 알려진 단양천이다.
단양천의 아침 풍경을 우화교에서 보았다. 멀리 남한강과 단양천이 만나는 곳, 하늘에서 안개구름이 내려와 산허리를 감쌌다. 물에 비친 낮은 구름이 강물에 비쳤다. 멀리 보이는 적성대교까지 차를 달렸다. 적성대교 아래에서 남한강과 단양천이 만난다. 적성대교 서쪽 500~600m 정도 떨어진 곳은 적성면 상리에서 흘러온 상리천이 남한강과 만나는 곳이다.

하진리 골목과 남한강



하진리 마을은 단양천, 남한강, 상리천이 만나 흐르는 남한강가 마을이다. 하진리 옛 마을은 충주댐이 생기면서 물에 잠겼고, 지금의 자리에 새 마을이 만들어졌다.
옛 하진리에는 하진나루가 있었다. 서울에서 소금이나 새우젓 등을 실은 배가 하진나루에 짐을 풀면 단양 각지에서 소나 달구지에 싣고 온 콩, 팥, 담배, 수수, 보리 등도 나루에 모였다. 날이 저문다고 파장이 아니었다. 물건이 다 팔려야 장이 끝났다. 닷새 넘게 장이 서는 날도 허다했다고 한다. 장이 흥하면 주변에 주막도 성행하는 법. 거친 뱃사람들과 상인들의 걸쭉한 입담도 척척 받아치는 주모들의 수완도 보통 아니었다고 한다. 들병이들은 거룻배에 술병과 산나물 안주를 싣고 술을 팔기도 했다고 한다.
옛 마을과 나루터는 다 물에 잠겼지만 하진리 마을 골목에 하진리의 옛 이야기가 글과 사진, 그림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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