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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행
좌구산에서 시작된 삼기천 물줄기 따라, 시인 김득신의 이야기는 지금도 흐르고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충북 - 증평Ⅰ'

증평군에서 가장 긴 물길, 삼기천. 삼기천이 시작되는 좌구산. 좌구산과 삼기천의 품에서 태어난 조선시대 사람 시인 김득신. 증평은 김득신을 품고 김득신은 증평을 품었다. 그의 시에 담긴 증평의 옛 모습과 아득한 이야기를 찾았다. 좌구산 골짜기 실핏줄처럼 흐르는 물줄기가 모여 삼기천을 이루고 사람 사는 마을을 지난다. 속닥거리던 지난밤 아랫목의 온기가 바람에 흔들려 서걱거리는 억새소리 여울 소리에도 담겼다. 김득신은 증평의 품에 잠들었다.




분젓치에서 삼기저수지를 굽어보다
율리에서 ‘분젓치’로 가는 길 내내 ‘분젓치’를 생각했다. 왜 ‘분젓치’일까? 율리 별천지공원을 지나 남쪽으로 달리는 차는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산으로 올랐다. ‘분젓치’는 증평읍 율리와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종암리를 잇는, 구녀산과 좌구산 사이에 난 고개였다. 도로 때문에 끊어진 두 산을 잇는 생태다리를 고갯마루에 만들었고 그 한쪽에 정자를 지어 사람들을 쉬게 했다.
정자 이름은 좌구정이다. 좌구정에서 김득신의 시 <구정>이 떠올랐다. [저무는 해 모래밭에 지는데/새들은 잠자리 찾아 먼 나무로 날아든다/돌아가는 사람 나귀에 오르려는데/앞산에 뿌리는 비에 걱정이 이네]
눈앞에 풍경이 통쾌하게 펼쳐진다. 좌구산 골짜기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 이룬 삼기저수지를 중심으로 펼쳐진 풍경 끝을 지키고 있는 두타산이 늠름하다. 삼기저수지 아래에서 시작된 마을은 멀리 아파트 단지까지 이어진다. 그 풍경 어딘가에 김득신의 시 <竹里孤煙(죽리고연. 죽리의 외로운 연기)>의 배경이 된 죽리 마을도 있을 것이다.
한참 동안 정자에 머무르며 풍경을 마음에 새겼다. 정자에서 내려와 주변을 걸었다. ‘좌구산 분젓치 산새길’이라는 이름으로 꾸민 길이 별천지공원까지 이어진다. 곳곳에 작은 쉼터도 있고, 잎 떨군 겨울나무 가지 사이로 시야가 트이기도 했다. 나뭇가지에 만들어 놓은 작은 새 모양의 설치물이 눈에 띄었다. ‘새들은 잠자리 찾아 먼 나무로 날아든다’던 김득신의 시 <구정>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예로부터 이 고갯길 숲에는 많은 새들이 둥지를 틀었나보다. 뻐꾸기, 까마귀, 곤줄박이, 박새, 제비, 황조롱이가 둥지를 틀고 산다는 안내판에 ‘새들이 좋아하는 분젓치 산새길’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삼기천 최상류 물줄기
차에 올라 율리 마을로 돌아갈 때서야 ‘왜 ‘분젓치’일까?‘가 다시 생각났다. 의문을 어느 정도 풀어주는 단서는 점심을 먹으러 간 율리 마을 한 식당 앞 마을 유래비에 있었다.
삼거리에 머물러서 막걸리로 목을 추겨 미원 장터 넘나들던 분저잿길 큰길은 흔적만 아스라한데 삼기리 접어드니 마을을 수호하는 관음상의 미륵불만이 외로이 홀로 섯네. –율리 유래비- 내용의 일부.
‘분젓치’는 율리 마을 사람들이 미원 장터(저잣거리)에 가기 위해 넘었던, ‘저잣거리 가는 고갯길’이었다. ‘분저잿길’이 어떻게 ‘분젓치’가 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분젓치’는 율리 마을 사람들의 ‘시장 가는 길’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식당 뒷산 이름이 구석산(귀석산)이다. 좌구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 중 하나다. 구석산과 좌구산 사이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삼기천의 최상류가 나온다.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삼기천 최상류를 확인하고 흐르는 물줄기 따라 돌아나왔다. 좌구산 줄타기 매표소 주차장 부근에서 삼기천은 좌구산자연휴양림 쪽에서 흘러온 물줄기를 받아들여 하나 되어 흐른다.
좌구산자연휴양림 쪽에서 흘러온 물줄기를 보러 휴양림으로 들어갔다. 썰매장 뒤 가파른 오르막 포장길을 올라서면 임도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걷다가 산으로 올라가는 오르막 계단길로 올라 전망대에 도착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율리 마을에 햇살이 가득했다.
다시 임도로 내려와 명상구름다리 쪽으로 걸었다. 호젓한 임도는 걷기 좋았다. 구름다리 중간에 서서 좌구산 계곡을 보고 그곳으로 내려가 물가에서 구름다리를 올려보았다. 공기가 달았다.




김득신 묘를 보고 삼기저수지 둘레길을 걷다
다시 율리 마을로 나왔다. 어느 집 담장 안 감나무 까치밥 하나에 겨울도 따듯했다. 김득신 묘를 가리키는 이정표 따라 걸었다. 길 옆 도랑은 구석산에서 시작 돼서 삼기천으로 흘러드는 이름 없는 물줄기다. 도랑 건너 오르막을 잠깐 오르면 김득신 묘역이 나온다.
정자 옆에 글과 그림으로 김득신의 생애를 알리는 담벼락을 세웠다. 김득신 아버지 김치는 노자가 나오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아둔한 아이가 됐다는 문구 뒤에 ‘학문의 성취가 늦는다고 성공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저 읽고 또 읽으면 반드시 대문장가가 될 것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새겼다.
김득신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랐다. 만 번 이상 읽은 책이 36편에 이르렀다. 훗날 다산 정약용은 ‘글이 생긴 이래 상하 수천 년과 종횡 3만리를 통틀어 독서에 부지런하고 뛰어난 이로는 백곡(김득신)을 제일로 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김득신은 천연두 후유증으로 또래 아이들 보다 뒤처져 10살에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39세에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하고 59세에 증광시(조선 시대에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하던 임시 과거 시험) 문과에 급제했다. 김득신이 처음 시를 쓴 건 20세였다. 그 무렵 지은 시를 보고 그의 외삼촌은 크게 칭찬했다고 한다.
[북두성은 난간에 걸려 있고 달빛은 하늘에 가득한데/석조는 가을색 깊어 차가운 안개에 잠겼어라/예로운 국화는 만발하였고 술항아리도 그대로이니/그 옛날 도연명이 여기에 있는 듯 하네]
그는 이 시를 시작으로 1684년 81세로 숨을 거두기까지 1천500편이 넘는 시를 남겼다. 그리고 그는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손꼽혔다. 또 그가 남긴 180편이 넘은 글은 그를 조선시대 8대 문장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김득신의 묘 위에 아버지 김치의 묘가 있다. 천연두 후유증을 극복하고 과거에 급제하고 당대 최고의 시인이 된 김득신 뒤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김득신의 묘에서 내려와 들른 곳은 좌구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이는 삼기저수지다. 저수지 둘레에 길을 만들었다. 그 길에도 김득신의 이야기는 계속 된다. 김득신의 절창 <두타사>를 그 길에서 만났다.
[일부러 두타의 옛 절을 찾아오니. 경치 구경에 빠져 갈 길 몰라 하노라/층층 바위엔 학 떠난 지 오래고/오직 벽도화만 혼자서 피었어라/지친 눈 비비며 위태로운 곳에 의지하니/바로 이 맑은 가을 송옥의 슬픔 자아낸다./한낮 협곡엔 천둥치고 캄캄하니/신령스런 못엔 아마도 독룡이 왔나보다.] 시를 읽는 중에 마음이 꿈틀댔다.
김득신 시에 나오는 죽리마을, 그곳의 박샘공원 이야기
증평군 자료에 따르면 삼기천의 원래 이름은 증자천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옛날에는 한 물줄기라도 마을 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고 한다. 지금의 삼기저수지 아래부터 죽리초등학교까지를 장천(장내천), 그곳부터 보강천과 만나는 사곡교까지를 증자천이라고 했다. 그 물줄기 이름의 흔적은 증천리, 장내 등 현재에 지명으로 남았다.





장내교를 지난 삼기천 물줄기는 죽리 마을을 지나 증천리 마을로 흘러간다. 그중 죽리 마을은 김득신 시 <竹里孤煙(죽리고연. 죽리의 외로운 연기)>의 배경무대다.
[저물녘 난간에 기댄 늙은이/아득한 들녘 흥취에 끌리네/성긴 수풀에 지는 해 비꼈는데/쓸쓸한 주막엔 외로운 연기 피어오르네] -김득신의 시 <竹里孤煙(죽리고연. 죽리의 외로운 연기)>-
저물녘 난간에 기댄 늙은이는 김득신 자신이었을 것이다. 지는 해, 성긴 수풀로 옮겨간 시인의 시선은 주막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마저 외롭게 보인다. 그 쓸쓸함이 노년의 흥취, 아득함이 아니었을까?
김득신의 시와 벽화가 그려진 죽리 마을 골목 가운데 700살이 다 되가는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죽리의 풍경에 아득한 정취를 느끼고 시를 짓는 노년의 김득신을 지켜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목 옆에는 세종대왕이 다녀간 박샘이 있다.
세종대왕이 초정약수로 가던 중 죽리 마을에 들러 샘물을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샘이 박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박샘 바로 옆 느티나무 고목은 세종대왕이 샘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느티나무 고목 그늘 아래 평상을 놓아 오가는 사람들을 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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