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마을 [Maeul] 2022년 겨울 vol.01
옥산면 신촌 마을
'미호강을 추억하며 「신촌 마을 주민들이 들려주는 미호강 이야기」'

청주 기록활동가 양성 과정 ‘기초과정’, ‘심화과정’을 거친 청주의 시민기록가들과 기억록이 함께 만든 마을 기록 시리즈의 첫 번째 기록집입니다.

강변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



신촌리 주민 이용석(님)
제 어린 시절에 그 미호천에는 참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어요. 미호천이 신촌리 앞에만 깊이가 2m에서 한 3m 이렇게 소진 데(깊은 곳)가 있었어요. 여기를 물이 깊다 보니까 속도가 천천히 흐르고. 예전에 거기서 멱 감고 고기도 잡고 그래서 많이 뛰어놀고 해수욕장을 방불 할 정도로 많이 모였었어요.
그러다가 70년도 초에 경부고속도로가 한창 건설되고 또 미호천 바로 건너편에는 잠업이 한참 발달했었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하고 미호천에 있는 정자에 올라서 미호천을 바라보다가 육영수 여사가, ‘저 맑은 물이 흐르는 곳 양쪽으로 참 푸른 평야가 있고 여기에 젖소가 뛰어놀면은 얼마나 환상적일까?’ 그때부터 미호천을 두고 양쪽으로 낙농 단지가 형성이 됐어요. 그 후로도 산업이 발달되고 청주에도 공단이 생기고 그래서 어느 날인가부터 1급수였던 미호천 물이 2급수로 변하고 3급수로 변하고 이래서 심지어는 사람이 맨발로는 들어설 수 없는 그런 아주 오염된 강이 되고 말았죠.
80년도에 들어서면서 환경에 신경을 쓰고 할 때쯤 가락리에 폐수처리장을 건설해서 처리했어요. 그때부터는 젖소도 가두어서 키우도록 해서 물을 정화하려고 한거죠. 그래도 한 번 오염된 강물은 쉽게 맑아지지 않고, 많이 정화되기는 했지만 미호천에서 잡은 고기를 더 이상 먹지 않는 오염된 강물이 돼서 안타깝죠.
신촌리 주민 박종덕(님)
미호강의 옛 이름은 조선시대에는 동진강이라고 했다고 그래요. 우리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볼 것 같으면 거기에도 이 강이 동진강이라고 명명이 돼 있어요. 옛날 고서를 보면 또 미곶강이나 북강이라고 적혀 있는 경우도 있고 또 서강이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동진강이라는 이름을 제일 많이 썼다고 해요.
미호천은 우리나라 전체를 비교해보면 11번째 큰 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강이라고 했는데 일본 사람들이 들어오면서부터 우리나라 문화라든가 모든 걸 격하시키기 위해서 강을 천으로 바꾸어 미호천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미호라는 이름은 또 어떻게 해서 붙였는가 하면 이 강이 구불구불 흐르다 보면 작은 호수 같은 것이 많이 생겼는데 평야에 호수가 생기니까 ‘아름다울 미’자에다가 ‘호수 호’자를 써서 그 사이를 흐르는 천이니까 미호천이라고 하자 해서 일본 사람들이 명명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2022년도까지 계속 우리가 미호천으로 불러 왔지요.
다시 미호강이 된 것은 금년도 즉, 2022년도 7월 7일날 행정부에서 변경을 고시했어요. 그래서 미호강으로 하자는 주민 의견 청취를 했는데 86%가 찬성을 해서 미호천을 미호강으로 바꿨어요. 일부 주민들은 ‘바꿀 바에는 일본 잔재를 아예 다 없애버리지, 미호라는 말도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인데 왜 ‘천’만 ‘강’으로 바꾸고 미호라는 말은 안 바꾸냐? 그것도 바꿨으면 좋겠다. 옛날에서부터 내려오던 동진강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하는 여론도 팽배했던 것 같아요. 일단 미호강으로 고시를 했는데 이러한 의견을 참작해서 고려를 할지 모르겠지만 일리는 있는 말인 것 같아요.
지금 여기 「신촌 마을 주민들이 들려주는 마을 소개」
우리 마을의 구성은 가운데에 산을 끼고서 골짜기 골짜기에 소지역을 이루고 있는데 지금 1반이라고 하는 안새말은 동네 제일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고 또 동네 끝에 있다고 해서 끝새말, 또 동네 중에서 제일 큰 동네라고 해서 큰새말, 그 다음에 위쪽으로 가면 옛날에 세조께서 속리산에 내려오실 때 여기에서 쉬었다 가셨다고 하는데, 그래서 임금이 쉬었다 간 동네라고 해서 ‘군주동’ 또는 ‘군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네 개의 동네로 이루어지고, 또 들판에 새 동네가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그 동네 이름을 들판이라고 명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신촌리는 1반부터 5반까지 이루어진 동네입니다.
우리 마을의 산업을 살펴보면 동네 앞에 옥산 평야라고 하는 들이 있는데 옛날에는 주로 벼농사 밭농사를 주로 해왔어요. 들은 넓어도 동네가 부촌 소리는 못 들었어요. 최근 한 15~6년 전부터 하우스를 지어 시설 채소 특히 애호박 농사를 지어서 서울에다 납품을 하면서 경제적인 여유가 많이 생겼습니다. 애호박 말고도 오이, 토마토, 수박 농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애호박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해요. 이렇게 농업 소득이 많이 형성이 돼서 살기가 그전보다 상당히 윤택해졌고 다른 어떤 동네보다도 여유가 있는 동네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신촌리 애호박 농사


원조 애호박 하우스농사 이용석 님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이용석입니다. 저는 83년도에 오송 옥산 오창 주변을 통틀어 최초로 하우스 농사를 시작했죠. 새마을 지도자를 맡아 주민 다섯 명과 함께 지역 최초 하우스 농사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생명 애호박’ ‘생명 토마토’ 생명이라는 이름을 브랜드화해서 주위에서는 소득이 가장 많은 마을로 알려지고 있어요. 하우스 농사 초기에는 토마토하고 오이를 했는데 둘다 봄작물이라 수확하고 유월달 넘어서면 할 게 없어 하우스를 놀렸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가락동 시장에 가보니까 애호박이 나와 있어요. 평택 진위 호박이라고 일정한 크기로 나왔는데 너무 그림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 농사를 우리가 한번 해보자고 얘기를 하니 마을 사람들이 ‘호박이라는 것은 시골에서 지붕 위에 올려서 따먹고 하는 거지, 그걸 누가 사 먹겠느냐’고 안 하더라고요. 그래도 결국 농사를 지었는데, 처음에는 박스를 규격화해서 출하할 줄을 모르고 슈퍼 같은 데서 박스들을 얻어다가 호박을 담아서 출하를 했어요. 근데 가락동 시장에 견학하러 가보니까 다른 데는 규격 박스에 딱 담아서 쌓았는데 우리는 박스가 다 크고 작고 하니까 고물상이지 뭐예요. 그때 당시 마을에 서주우유 공장이 있었어요. 원과장이라고 인근 덕촌리에 사는 분이 있어서 서주우유 박스를 좀 얻었죠. 호박 박스는 아니더라도 거기에다 담아서 출하하니까 뭔가 조금 나아지더라고요. 그 후에 군수님한테 얘기를 해서 박스를 보조받고 호박 박스를 정식으로 만들어서 출하를 했습니다.
신촌리 애호박은 출하율이 전국에서 70%를 차지했고, 품질로는 단연코 일 위를 차지할 정도로 아주 유명해졌어요.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농사를 하니까 배우는 것도 빠르고 우리 보다 농사를 더 잘지어요.
내일을 향하여 「신촌 마을 주민들이 들려주는 마을의 미래」
마을 이장, 박준순 님



박준순 님의 이야기
열심히 노력하는 이장, 박준순 입니다. 처음에 우리 마을 이야기를 기록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우리들의 이야기를 영상과 책으로 만들면 좋기는 할 텐데 과연 우리 마을에 이야기 거리가 있을까?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반신반의하고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주민들과 시민기록활동가들과 함께 첫 미팅을 하던 날 걱정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르신들이 서로 옛날 마을 이야기, 신작로 이야기, 미호강에서 놀던 이야기를 들려주시자 저의 또래들도 어릴적 이야기, 하우스 호박 농사 초창기 에피소드 등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한 자리에서 들으며 옛 추억을 떠올려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떠올려보니 두 달 정도의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기억들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참 뜻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신촌리는 전체 주민의 삼분의 일 정도는 벼농사와 시설하우스에서 애호박 농사를 짓고 있어 반농, 반도시형 마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예전처럼 벼농사를 주로 하시고, 젊은 층은 시설 원예 농업을 합니다. 15명의 젊은이들이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여 애호박 공동선별, 공동계산을 하며 농민들을 이끌어 가고 있어 작물의 품질을 높이고 소득을 증가시키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을의 일도 도맡아 하고 있어서 서서히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마을 [Maeul] vol.01은 문화도시 청주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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