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마을 [Maeul] 2022년 겨울 vol.01
오창읍 농소, 신평, 중신
'오창읍 농소, 신평, 중신을 기록하다'

청주 기록활동가 양성 과정 ‘기초과정’, ‘심화과정’을 거친 청주의 시민기록가들과 기억록이 함께 만든 마을 기록 시리즈의 첫 번째 기록집입니다.
어린 시절 보고 느꼈던 마을의 풍경과 정감어린 추억의 이야기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면서 이제야 마을의 이곳저곳을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때문에 기록의 중요성을 느껴 오창의 농소리, 신평리, 중신리를 기록하게 되었다.
오창은 물길을 건너 있는 자연지형 탓에 청주가 개발될 때 개발의 흐름에서 비껴간 곳이다. 언제까지나 그대로일 것 같던 오창도 오창과학단지 개발을 기점으로 그 모습이 급격히 변화되었다.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고 2021년 ‘오창네오테크벨리’ 라는 신규 산업단지가 고시되면서 더 큰 변화의 문턱을 넘게 되었다. 때문에 기록의 가치에 눈을 뜬 우리 기록활동가들은 보물 같은 이야기를 담고 사라져가는 ‘마을의 것’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마을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는 안타까움은 있지만 2022년 농소리, 신평1리, 신평2리, 중신리의 4개 마을의 모습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도 전할 수 있도록 마을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남기고자 한다.
마을 하나, 농소리
마을의 지형이 술을 거르는 용소를 닮아 용소, 농소매기, 농소리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산과 계곡을 끼고 자리 잡은 농소리는 유교 관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농소리, 회화나무



“어렸을 때 굽은 회화나무 가지에 올라가 미끄럼도 타고 그네도 뛰고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 이십 년 전에 통행이 불편하여 가지를 자르게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회화나무에 대한 추억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저씨가 회화나무 가지를 베었어요. 그땐 아무것도 몰랐지요. 다리가 아프지도 않았었는데 이 가지를 베고 나서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어요.” 아내는 오래된 나무를 함부로 베서 부정이 타 그런 것 같다며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또한 농소리에 자리한 마천목 장군 영당은 충북묵화제로 등록되어 있으며 1982년 노후화된 시설을 보수하고 2015년 증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장흥 마 씨 오창읍 종친회 11대 종손인 마충환님과 당숙 마상혜님이 사당을 관리하며 운영하고 있다.
마을 둘, 신평 1리
미호강 물이 크게 범람하면 물줄기에 따라 땅이 없어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한다고 하여 ‘새로 생긴 땅’이라는 의미에서 신평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섶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평1리는 원신평, 우등재, 솔백이, 오시동의 네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현재는 원신평, 우등재가 그 중심을 이룬다. 우등재 지명은 마을 뒷산이 소가 누워 있는 모습에서 유래되었다. 우등재에서 까치내까지 드넓게 펼쳐진 뜰에 벼농사를 주업으로 한다.
까치내 나루터는 미호강 작천보에서 상류 쪽 100여 미터에 있었다. 1960년대 초반까지 마을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던 중요한 길목이었다. 옛날, 한 선비가 과거 시험을 보러 가다가 까치가 뱀에 물려 있는 것을 보고 그 까치를 구해주었다고 한다. 한참 지나다 보니 내가 있어서 건너가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까치들이 나타나 다리를 놓아주어 선비가 무사히 내를 건너가서 그 때부터 까치내라는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넓은 잔디밭이었던 까치내는 50여 년 전 마을 사람들과 청주권의 학생들에게 소풍과 행군에 대한 추억의 장소였다. 1980년 이전에는 물놀이도 하고 보트를 띄워 뱃놀이를 하기도 하였지만, 무심천과 까치내가 오염 되면서 물놀이와 천렵은 사라졌다. 현재는 수질개선 사업과 사람들의 큰 노력으로 인하여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
“보도연맹 사건”
보도연맹 사건에 의해 우등재 마을에 피해가 집중되었다. 보도연맹에 이름을 올렸던 35여명은 대부분이 죽었고, 목숨을 부지한 6명이 탈출하여 양민학살의 전모가 알려지게 되었다. 보도연맹 학살사건으로 우등재 50여 가구 중 절반 정도가 음력 5월 25일 같은 날 제사를 지내고 있다. 희생자 피해 보상은 일부 받았고, 그 외 사람들은 현재 피해 보상 건을 진행하고 있다. 1950년 7월 10일~11일쯤 청주시 및 진천군 지역의 주민 315명 이상이 보도연맹원 등으로 예비 검속돼 오창읍 장대리 소재 양곡창고에 불법으로 구금된 후 퇴각하던 군경의 총격과 미군의 전투기 폭격으로 고귀한 생명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마을 셋, 신평 2리
지게바위 유래비에 의하면 마을 남동쪽 높이 20m의 병풍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가 끝나는 지점에 산의 모습과 거의 흡사한 거인이 지게를 지고 있는 모양의 바위가 있어 그 바위에서 이름을 따 마을의 이름을 지게바위라 하였다고 한다. 지게바위는 일제 강점기에 미호천 제방 축적에 쓰였다고 한다. 천주교 순교자 후손 박 씨는 이 마을에 정착한 김 씨의 집에 자주 들러, 교리와 한문을 가르쳤다. 김 씨와 구 씨가 첫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마을에 천주교 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지게바위 공소



지게바위의 공소는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이다. 평일에는 놀이터가 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이웃 간 화합이 이루어지던 장소였다.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졌다는 공소는 마을 사람들의 협조로 지어진 건물이란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밤샘하며 자재를 지켰다는 김창한님은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진 건물이라고 기억한다. 공소는 다수의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하며 마을과 늘 함께였다.
신평 2리의 유기농 하우스단지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퇴비, 유기비료를 사용하여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곳이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수확량은 다소 적지만 토양이 오염되지 않아 병충해가 적고 연작 장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신지식 농업인 1호인 김창한님도 일찍부터 유기농 시설채소 농사를 지으며 이곳에서 살고 있다. “같은 농법 같은 방향으로 농업을 하자는 취지로 농가에서 개별적으로 방제를 하지 않고 광역방제기를 이용해서 공동방제를 합니다. 6, 7, 8월 세 번에 걸쳐 각종 병충해나 예방 위주로 적기에 방제해서 효과를 많이 보고 있어요. 인력 부족이 심각한 농촌에서 농가의 수고를 덜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죠.” 신평2리 이장님의 말이다.
마을 넷, 중신리
동쪽으로부터 새터말, 큰말, 골말, 하양지, 월촌으로 이루어진 중신리는 주변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옛날에는 한산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왔으나 지금은 전주 최씨, 파평 윤씨, 정선 전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에는 단합을 유도하는 윷놀이와 풍물 등 즐거운 놀이가 많았다. 풍물놀이를 하며 지신밟기를 할 때에는 각 마을을 돌면서 장독대를 밟아주고, 액운을 쫓아주는 풍습을 오랜 기간 이어왔다. 그러나 10년 전까지 유지되던 풍물패는 9개의 반마다 있던 것이 5개로 줄었다가 풍물패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게 되면서 지금은 사라져 아쉬움을 주고 있다.

종신교회



종신교회는 중신리 골말 뒤 언덕 위에 있다.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들에게 중신교회는 놀이터, 공부방이기도 하였고 청춘들에게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교회 옆 넓은 공간은 노래자랑이나 서커스 공연을 하던 곳이었다. 개구쟁이 아이들은 몰래 공연장 천막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다 혼이 나기도 하였고 청춘들은 이성을 찾기 위해 눈빛을 교환하기도 하였다고 과거를 회상 하는 어르신들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마을 [Maeul] vol.01은 문화도시 청주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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