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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주간지 K-공감
CSI 보고 꿈 키워 죽음 뒤의 진실 과학으로 밝혀낼 것
'국내 최초 국제감식협회(IAI) 분석관 이지연 경위·최병하 경사'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과 이지연(37) 경위와 최병하(47) 경사가 국내 최초로 국제감식협회(IAI) ‘현장감식 분석관’ 자격을 취득했다. 1915년 설립된 IAI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범죄 감식 분야 단체다. IAI 자격시험은 현장감식, 혈흔 형태 분석, 잠재지문 현출 등 8개 분야의 전문 자격을 인증하며 등급에 따라 ‘조사관’, ‘분석관’, ‘선임분석관’으로 나뉜다.

이지연 경위와 최병하 경사는 국내 최초로 국제감식협회(IAI) 분석관 자격을 취득했다. (사진. C영상미디어)



우리나라 경찰관의 경우 현재까지 서울청 과학수사과 소속 14명이 1차 시험에 통과해 ‘조사관’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2차 시험을 통과해 ‘분석관’ 자격을 인증받은 경찰관은 이 경위와 최 경사 둘 뿐이다. 최종 관문인 ‘선임분석관’은 5년 이상의 실무 경력과 대중 강연 경험, 법정 증언 경험 등 추가 자격 요건이 뒷받침돼야 한다.
분석관 시험을 치르기 위해선 1000페이지에 달하는 영어 원서 두 권을 공부해야 한다. 쉬는 시간 없이 총 4시간 동안 객관식 문제 300개를 풀어야 해 체력적인 부담도 적지 않다. 그만큼 힘든 시험이지만 두 사람은 ‘도전’에 의미를 두고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두 사람 모두 과학수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 과학수사관이 되기로 결심한 것부터가 도전이었다.
사기업에서 근무했던 이 경위는 2015년 뒤늦게 경찰이 됐다. 당시 미국 인기 드라마 ‘CSI’를 보며 과학수사관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고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 석사 학위를 취득해 과학수사대로 자리를 옮겼다. 경영학을 전공한 최 경사는 10여 년 전 지구대에서 근무하면서 형사과 경찰들의 권유로 과학수사 업무를 경험한 뒤 지금까지 현장을 누비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별관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과학수사대는 조용하면서도 분주해보였다. 몇 명의 과학수사관이 커다란 스크린에 변사자 사진을 띄우고 토론하고 있었다. 한 수사관은 화재 발생 연락을 받고 현장감식을 위해 뛰어나갔다.

이 경위와 최 경사가 실제로 현장에 출동할 때 갖추는 장비들 (사진. C영상미디어)


IAI 분석관 자격증을 가진 최초 한국 경찰이 됐다. ‘최초’라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
(최병하 경사, 이하 최) 최초에 의미를 두진 않았다. 이왕이면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분야에 도전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마음이었다.
(이지연 경위, 이하 이) 최초를 목표로 응시한 건 아니었다. 2단계 자격시험까지 합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만족감을 위한 도전이었다.
국내 과학수사계엔 굉장히 반가운 소식 아닌가?
(이) 우리나라 법과학도 상당 수준에 이르렀지만 앞서 발전한 국가를 꼽는다면 미국과 영국이다. 그런 미국에서도 공신력 있는 IAI에서 분석관 자격을 인증받은 것이다.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공부를 했고 관련 지식을 습득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학습한 이론들을 실무에 더 적용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있다. 공부를 하면서 느꼈지만 국제 기준의 과학수사가 이미 우리나라 현장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 많다.
분석관 자격 취득 후 현장감식을 나갔을 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나?
(이) 우리나라와 미국의 법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책에서 배운 그대로 현장에 적용할 순 없다. 공부한 내용을 우리나라식대로 활용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해외 공조가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 때, 가령 변사자가 한국인으로 추정되나 신원 확인이 어려운 경우 파견을 나가기도 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과학수사 방법을 배운 덕분에 현장 적응이 조금 더 빠르지 않을까 한다.
업무와 시험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 부담이 됐겠다.
(최) 영어로 익혀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원서와 번역본을 비교해 가면서 읽고 외우기를 반복했다. 시험 전 마지막 2주는 독서실에 다니면서 공부했다.
(이) 학습량이 너무 많다보니 영어를 할 줄 아는데도 어려웠다. 공부한 지식이 내 머릿속에 잘 들어가고 있는 건지 불안해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시험은 네 시간 내내 치러진다고 들었다.
(최) 별도 쉬는 시간은 없지만 화장실은 세 번 다녀올 수 있다. 오가는 시간을 기록하고 감독관이 화장실 문 앞까지 동행한다. 1분에 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꼴이다. 두 시간 정도 지나니까 진이 빠져서 집중이 안 되더라. 그나마 다행인 건 말하기 평가, 듣기 평가는 없다는 거다.(웃음)
선임분석관 자격 인증 시험도 준비 중인가?
(이) 2단계까지와는 다르게 강의 시간, 법정 증언 시간 등이 필요하다. 현장 감정 및 감식 결과를 법정에서 직접 설명하는 경험들을 쌓아야 한다.
두 사람과 대면한 공간에선 소독약 같은 냄새가 풍겼다. 냄새의 출처를 묻자 두 사람은 “냄새가 나느냐”고 되물었다. 당직 때마다 사체를 본다는 두 사람에게는 익숙한 냄새인 듯했다. 최 경사는 “변사가 없는 날은 없다”고 했다. 변사자를 보는 것이 괴로워 과학수사 업무를 이어가지 못하는 동료들도 있다고 한다. 이 경위는 “억울하게 떠난 변사자의 마지막을 들여다보고 추후 수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사명감을 느낀다”고 했다.
과학수사관은 어떤 사건 현장에 출동하나?
(최) 신고가 접수되면 지구대나 파출소 경찰관이 현장에 나간다. 감식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과학수사대에 출동 요청이 들어온다. 하루에도 별별 사건을 겪는다. 행여 사건이 없는 날이 있다고 해도 “좀 조용하다”는 얘기는 누구도 꺼내지 않는다.
첫 감식 현장을 기억하나?
(이) 부산경찰청 과학수사대에서 1년 근무하고 2019년 서울경찰청으로 발령받은 첫날이었다.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조장님이 “같이 가볼래?”라고 해서 따라간 곳이 낙동강 변사 현장이었다. 그때 본 변사자와 주변 풍경, 조장님과 나눈 대화, 물에 흠뻑 젖은 신발이 지금도 생생하다.
(최) 2010년 재물손괴 현장이다. 실은 기억이 잘 안 나서(웃음) 그때 작성한 보고서를 찾아봤다. ‘어디가 어떻게 깨져 있다’고 다섯 줄 정도 적혀 있었다. 지금처럼 보고서 작성이 정형화되기 전일 때다. 지금은 과학수사 인력이 광역화됐지만 그때만 해도 경찰서별로 인원이 흩어져 한두 명이 현장감식을 도맡는 경우가 많았다.
사상자가 없는 재물손괴 현장도 감식이 필요한가?
(최) 누가 사건을 벌였는지 특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범인이 잡히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증거가 범인을 100% 특정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진 못한다. 예를 들어 범행 현장에 깨진 유리창이 남았다고 해서 무조건 범인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현장감식에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이) 강력 사건의 경우 증거 채취만 해도 8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다. 기후, 환경, 온도에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감식 복장을 입기 때문에 겨울엔 엄청 춥고 여름엔 엄청 덥다. 한여름에는 극심한 부패 냄새 때문에 더 힘들다.
정신적으로 힘든 때도 많겠다.
(이) 사망자의 생전 사연을 듣다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너무 많다. 30대 장애 아들과 노모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식당에 일하러 가 있는 동안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때 특히 힘들었다. 그때 그 어머니의 절규와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최) 한두 살 된 아이들 변사 사건을 겪을 때 제일 힘들다.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 화상을 입고 사망한 경우, 침대에서 떨어져 사망한 경우 등 죽은 아이들을 보는 게 괴롭다.
현장감식은 심증만 있던 용의자의 범죄 사실을 입증하고 명확한 판결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중요 증거가 된다. 우리나라는 1948년 내무부 치안국 내 감식과를 시초로 1963년 서울시 경찰국 수사과 감식계, 1999년 서울청 31개 경찰서 감식전담반이 신설됐다. 이후 2000년대 초반 도약기를 거치며 과학수사 분야의 국제 교류를 강화하고 2014년 광역과학수사 체제를 도입하는 등 꾸준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현장감식 중 증거가 오염되면 어떻게 하나?
(최) 우선 오염이 생기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침 한 방울도 튀어선 안 된다. 만약 증거가 오염된 것으로 추정된다면 형사, 소방대원 등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의 유전자(DNA)를 채취해 동일한 DNA는 배제시킨다. 기본적으로 과학수사관의 DNA 정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제공되기 때문에 오염 여부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과학수사대는 모든 진실을 밝혀낸다. 벽지 뒷면에 가려진 혈흔을 찾아낸다거나 사망자의 신체에서 ‘다잉 메시지’를 발견한다.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
(이) 매스컴에 묘사되는 과학수사대는 ‘초인’이다(웃음). 하나만 봐도 열을 알고 손길이 잠깐 스쳤다고 해서 DNA가 검출되는 장면도 나오는데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땀이 잘 나지 않은 겨울에 범인의 DNA를 발견하기는 더 어렵다. 초인처럼 비치는 데 대한 부담감이 크다.
(최) 피해자들이 현장에서 우릴 보면 ‘범인은 100% 잡힐 것’이라고 기대한다. 100%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100%가 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억울하게 죽은 자는 눈을 감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다. 사체를 보면 어느 정도 사인이 읽히나?
(최) 간혹 당뇨 합병증, 노환, 급성심장사가 예상되는 경우는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이) 신이 아닌 이상 사체만 보고 사인을 알 순 없다. 우리의 역할은 현장을 전반적으로 보는 것이다. 최초 발견자나 신고자의 진술과 현장 상황이 맞지 않을 때 현장을 더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직업병은 없나?
(최) 뭐든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집들이를 가도 침입구가 될 만한 곳은 없는지, 콘센트 위에 먼지가 있어 화재 위험성은 없는지를 살피게 된다. 변사체 특유의 냄새 때문인지 후각도 예민해졌다.
특유의 냄새는 대체 어떤 건가?
(이) 음식물쓰레기 썩는 냄새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희한한 냄새다. 차를 타고 변사 현장에서 내리면 골목 전체에 그 냄새가 퍼져 있다. 냄새로 부패 여부를 알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은 감지하기 어려운 냄새다.
(최) 부패 현장에 다녀오면 냄새가 밸 수도 있어 집에 가기 전에 샤워부터 한다. 샤워하는 도중에 또 변사 사건이 발생해 출동하는 경우도 있다.
업무 스트레스가 많은 일인 것 같다.
(이) 없다.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
(최) 큰 사건이 발생하면 여전히 부담감을 느낀다. 나로 인해 현장에서 놓치는 부분이 생기진 않을까 한다.
경찰로서 목표는?
(최) 배울 점이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
(이)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는 경찰이 되고 싶다. 쌓여가는 경력이 부끄럽지 않도록 계속 공부하고 노력하는 경찰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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