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시 찾은 보물]
궁예_청주인戶 1천을 철원으로 이주시키다 2부
'다시 찾은 보물 ? 청주의 역사인물'

‘다시찾은보물’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음세대 기록활동]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청주의 문화자원을 6개 테마로 구분하여 글, 그림,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문화유산, 역사인물, 숲길산길, 예술인, 교육유산, 미래유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 편에서는 ‘2권: 역사인물’을 게재합니다.
Cheapter1-2.궁예_청주인戶 1천을 철원으로 이주시키다 2부
[ 유년기를 청주에서 보냈을 가능성 ]
역사학계는 궁예가 ‘청주인호 1천’을 이주시킨 것과 관련해 청주인구 관련설 등 대략 다섯 가지 설을 제기하고 있다.(표 참조)




⑤설은 신호철(전 충북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지론으로, 궁예와 청주의 지리적 연고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그는 논문에서 “궁예는 태어나면서 중앙의 정쟁 때문에 지방에서 숨어살게 되는데, 그곳이 청주였던 것으로 생각된다”며 “청주와의 이 같은 연고성 때문에 청주인호 1천을 철원으로 옮겨 축성을 하고 군사적 기반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 면에서 청주지역을 궁예 세력의 온상과 같은 곳이라고 한 지적은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탁견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조선 영조 20년(1744) 승장 영휴靈休가 상당산성 축성과 관련된 사실을 기록한 『상당산성고금사적기』내용도 거론했다. 후대의 기록이기는 하나 사적기는 ‘궁예가 양길을 섬기고 있으면서 청주를 경략하고 이곳에 상당산성을 축성하고 도읍을 삼으니 따르는 무리가 점차 많아졌다往見梁吉吉分兵東略地因築成于此都居之衆漸多’라고 적었다.

[그림: 강호생]



918년 성격이 포악하고 의심이 많았던 궁예는 왕건 등 부하들에 의해 폐위됐고, 달아나다 죽음을 맞았다. 그해 왕건은 왕으로 추대돼 ‘고려’ 건국을 선포했다. 반궁예파의 도시 청주는 왕건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건은 청주가 몹시 거슬렸는지 능달能達·명길明吉·문식文植등에게 청주지역 여론 탐지를 지시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홍유洪儒와 유금필庾黔弼군대를 청주 북쪽의 진천지역에 주둔시켰다. 919년 왕건은 반왕건 분위기가 잦아들자 몸소 청주 순행에 나섰고 성도 쌓았다고 『고려사절요』는 기록했다.
“가을 8월. 청주에 행차하였다. 당시에 청주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어서 허황된 소문이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직접 가서 위무하고 성을 쌓은 후에 돌아왔다.”(秋八月. 幸靑州. 時, 靑州反側, 訛言屢興, 親往慰撫而城之, 乃還.)
-<『고려사절요』 태조 2년 8월>

‘왕건, 청주를 직접 방문해 위무를 하고 성을 쌓다’. 「고려사절요」 태조 2년 8월.



신호철은 이와 관련 “지명 진천에 ‘진압할 鎭’ 자가 들어간 것은 궁예 진압군이 주둔했었기 때문이고, 그리고 청주가 고려 태조 때 ‘물맑을 淸’자의 지금 지명을 얻은 것은 반란의 혼탁함이 사라졌음이 반영된 것”이라는 주장했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청주를 ‘물고을’로 인식하고 있으나, 무심천이 건천에 가까운 것에서 보듯 청주는 물이 풍부한 고장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철원 궁예 도성지 내의 석등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건판3368)



철원도성을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
현재 비무장지대 안에 방치돼 있는 궁예의 철원도성은 우리나라 금속활자 문화와 관련해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궁예는 국호를 마진으로 바꾼 후 중앙에 광평성廣評省)을 포함한 19개의 관부官府를 설치하였다. 이 가운데 10번째 관부가 금서성禁書省이다.
역사가들은 후대의 기록으로 보아 금서성이 주조, 즉 금속활자로 각종 전적을 발행한 기관으로 보고 있다.
“전교하기를, “우리나라의 경적 인쇄는, 국초에 고려의 옛 제도를 따라서 교서관校書館을 두어 관장하게 하였었는데, 고려에서는 이를 비서성秘書省이라고 하였고, 궁예 때에는 금서성이라고 하였으니, 최초에는 궁중에 설치하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종 3년에 별도로 주자소를 궁중에다 설치하고 고주본古註本시경·서경·좌전을 본으로 구리로 활자를 만들어 전적을 널리 인쇄하였으니, 이것이 또한 처음으로 글자를 주조한 유래이다.”
-<『정조실록』 20년 12월 15일>
‘청주인호 1천’이 철원에 이주한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금서성 금속활자 제작을 직접 담당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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