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터널”-집으로 가는 길, 터널이 무너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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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저녁 우리는 도로를 달리고 터널을 지나며 출퇴근을 한다. 안전을 의심하지 않았던 그곳이 무너져 내린다면? 무너진 터널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구조를 기다리는 것뿐이라면, 당신은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영화 <터널>은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한 남자와 그의 구조를 둘러싸고 변해가는 터널 밖의 이야기를 그린 리얼 재난 영화다. 주인공 ‘정수’는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의 직장인이자 아내와 딸이 있는 평범한 가장이다. 평소와 다를 바 하나 없던 어느 날, 매일 지나던 터널이 무너져 내리고 일순간 그의 일상도 함께 무너져 내린다. <터널>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인물이 예기치 못한 재난에 처하게 되는 모습을 통해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공감을 주며 관객들을 하나로 만들어버린다. 터널 안에 갇힌 ‘정수’는 우리의 친구이자 오빠이고 남편이며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꽉 막혀버린 저 거대한 돌덩이를 치우고 들어오기 전까지 ‘정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살아남는 것, 하나뿐이다.



터널 안 ‘정수’가 구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버티고 있는 동안, ‘정수’의 구조를 둘러싼 터널 밖의 상황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마치 우리의 현실을 투영하는 듯하다. 특종, 단독 보도에 혈안이 된 언론들과 부실 공사로 물의를 일으킨 시공 업체, 그리고 실질적인 구조는 뒷전인 채 윗선에 보고하기 급급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까지, 현실 세태를 리얼하게 풍자한 스크린 속 모습은 씁쓸한 웃음과 답답함을 자아낸다. 또한 제대로 된 대처 매뉴얼 없이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터널 밖 사람들의 모습은 터널 안에서 1년 같은 1분을 견디며 생사를 다투고 있는 ‘정수’와 극명하게 대조되며 보는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별다른 성과 없이 지지부진한 날들이 이어질수록 터널 안에 갇힌 ‘정수’에게 점점 무관심 해지는 국민들의 반응 역시 낯설지 않다.



기존의 재난 영화 장르들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대규모 참사를 그렸다면 <터널>은 시작부터 궤를 달리한다. 붕괴된 터널에 갇혀 생존한 사람은 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 들고 퇴근하던 평범한 가장인 ‘정수’ 단 한 명뿐이다. 연출을 맡은 김성훈 감독은 “인간의 생명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인데, 희생자의 수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한 사람이 거대한 재난을 홀로 마주했을 때 외로움이나 두려움은 더 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희생자의 수로 재난의 규모를 재단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생명이 가진 가치를 영화 속에 온전히 담아내고자 했다.



또한 재난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어떠한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는 히어로형 캐릭터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터널> 속 ‘정수’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정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구조대장이 알려준 생존수칙을 지키며 버티는 것이다. 꽉 막혀버린 터널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살아남는 것, 절망하지 않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것이 ‘정수’가 해야 하는 가장 큰 미션이다. 한 가족의 가장인 그가 가족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극도로 고립된 공간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안쓰러운 연민과 공감, 동시에 짠한 웃음까지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으로, 보통의 재난 영화는 참사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춰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 중점을 둔다. 하지만 <터널>은 조금 다른 상황을 보여준다. 영화는 터널 안과 밖으로 대비되는 두 가지 상황을 보여주며 시간이 흐를수록 달라지는 ‘정수’와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제대로 꼬집어낸다. 진척이 없는 구조상황, 그로 인해 멈춰서 버린 모든 것들 앞에서 사람들은 점차 이기적으로 변해간다. 터널에 갇힌 ‘정수’는 구조대가 오기만을 간절하게 기다리지만, 터널 밖 사람들은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 짙은 피로감을 느끼고 점점 지쳐간다. ‘정수’의 구조를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인물들 간의 갈등은 점점 깊어지고 이 안타까운 상황에 관객들은 우리 사회를 보는 듯한 기시감에 울분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재난 영화의 공식을 벗어나 색다른 장르적 비틀기를 시도한 <터널>, 그 어떤 재난 영화보다 생명의 소중함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현실을 명확하게 보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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