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벚꽃 증후군
'글. 박종희'

다시 봄이다. 코로나에 갇혔다가 나와 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순백의 화사하고 고운 벚꽃이 눈부셔 현기증이 날 것 같다. 코로나가 봄마저 들어먹나 싶었는데 제아무리 기가 센 바이러스라고 해도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는 못하나 보다.
벚꽃이 뒤덮인 무심천 둑에 섰다. 바람이 살랑일 때마다 하얀 꽃잎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코로나에 지쳐 핼쑥해진 사람들이 만개한 벚꽃만큼이나 많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와 부모님을 모시고 온 사람들이 습관처럼 거리를 두고 걷는다. 마스크를 썼지만, 정겹게 어깨를 감싸고 걷는 연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코로나가 바꾼 풍경은 꽃놀이 장소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되어서 일까. 마스크를 쓴 채로 사진 찍는 것이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고 추억을 편집하는 그들의 환한 얼굴이 셀카봉 안으로 들어온다.
아무래도 벚꽃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마력을 지닌 것 같다. 장미처럼 강렬하지 않고 라일락처럼 고혹적인 향을 지닌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벚꽃에 열광한다. 벚꽃은 화려하지 않아도 예쁘다. 순수하다. 뭐랄까, 정제해 놓은 증류수 같은 느낌이랄까.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고 청초해 절세미인처럼 아름답다는 벚꽃의 꽃말이 딱 맞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같은 무심천이지만 꽃이 피고 지는 속도가 다르다. 한창 만개해 흐드러진 벚나무들 사이에 지면서 눈처럼 꽃잎이 흩날리는 나무도 있다. 벚꽃은 꽃잎이 여려 비바람에도 견디지 못하지만 떨어지는 모습도 환상이다. 너울거리며 날리는 꽃비를 맞고 걷는데 떨어진 꽃잎 위에 친정어머니 얼굴이 아른거린다. 영산홍이 피었을 때 입원하신 어머니는 해가 바뀌어 매화꽃이 필 때까지 병원에서 나오지 못했다.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 때문에 친정집은 꽃집 같았다. 추운 겨울을 잘 나라고 볏짚을 묶어주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예쁜 조화 꽃을 걸어놓고 흐뭇해하시던 어머니는 소녀 같은 할머니였다.
어머니가 떠나신 지 벌써 6년이 되었다. 어머니가 안 계셔도 봄은 오고 꽃은 핀다. 모든 것이 그대로다. 무심하게도 어머니의 부재 말고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안주인을 떠나보낸 친정집 앞마당에는 올해도 꽃이 흐드러졌다.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매화꽃이 지더니 복사꽃과 앵두꽃이 피어 빈집을 지키고 있다. 작약, 달리아, 천일홍 등, 눈만 뜨면 당신 자식처럼 애착을 갖던 꽃들이 아까워 어찌 떠나셨을까. 어머니 계신 하늘나라에는 어떤 꽃이 피고 질까.
수수하면서도 화사해 천생 여자였던 어머니는 벚꽃을 좋아하셨다. 벚꽃이 필 때면 청풍호 벚꽃 길을 몇 번씩 다녀오시곤 했다.
꽃길을 따라 발을 떼는데 꽃이 진자리에 이미 초록의 잎사귀가 들어앉은 나무도 있다. 내가 어머니와 이별했듯 나무도 꽃과 이별해야 하는 시간인가 보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내 안에 새겨진 봄은 늘 상실의 시간이었다. 꽁꽁 얼어붙었던 땅이 꿈틀거리고 꼬물꼬물 새싹이 움트는 봄을 상실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이 모순이지만, 타고난 체질 탓인지 병치레가 잦았다. 옷깃을 여미고 겨울을 보내면서 잘 견디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하는 병치레는 벚꽃이 피었다가 지는 4월이 지나야 추스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봄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게 봄은 오히려 체력과 청춘을 탕진하는 계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언젠가부터 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몸이 좋아지고 난 후 봄이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이었나 하며 감탄하던 때가 있었다. 사방에서 피어나는 꽃들이 눈에 들어오고 벼르던 벚꽃 구경도 몇 번 다녀왔다.
그런 나를 시샘이라도 하듯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다시 봄 앓이가 시작됐다. 시간이 갈수록 그리움의 농도가 짙어지는 어머니와의 이별을 떠올리게 하는 봄이라 몸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아팠다.
제아무리 예쁜 꽃도 열흘은 못 간다는 말이 있듯이 벚꽃은 고작 일주일간 피었다가 진다. 이별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것처럼 벚꽃이 피는 시기를 놓치면 그해에는 다시 벚꽃을 볼 수 없다. 얼마나 아쉬우면 ‘벚꽃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벚꽃 증후군’은 벚꽃 나무 아래서 함께 추억을 새기던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이 이별의 아픔을 앓는 일종의 신경증이다. 특히 벚꽃이 많은 일본에는 벚꽃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어머니 없는 봄에 피어난 벚꽃을 보니 가슴이 아릿하다. 꽃이 눈부셔서 눈이 따갑고 어머니 생각에 눈이 아파 마스크를 한껏 올려본다.
한순간 화려하고 아름답게 만개했다가 떨어지는 벚꽃처럼 우리네 사는 일도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꽃과 이별하고 연두색 잎새를 매단 나무를 보며 생각한다. 살아계실 때 어머니 모시고 꽃구경 자주 다닐 것을. 그때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인생이던가. 벚꽃을 좋아하는 어머니한테 마음 놓고 꽃구경 한 번 시켜드리지 못한 것이 이렇게 가슴에 박힐 줄이야.
누구나 벚꽃이 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상심하는 사람들처럼 벚꽃 피는 계절에는 나도 어머니 생각에 불면의 밤이 길어진다. 부모는 자식들의 추억이 되기 위해 산다고 하는 말이 벚꽃으로 하여 더욱 실감 나는 봄이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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