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매운 맛
'글. 이정연'

대구에서도 한참 먼 곳에 공장을 짓고 그 마당 가장자리에 작은 채소밭을 만든 뒤로 언니는 마치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들떴다. 하루는 멀리 고령까지 가서 거름을 얻어 왔다고 숙원사업을 이룬 것처럼 전화하더니, 며칠 지난 장날엔 갖가지 야채 모종을 사다 심었다고 자랑이었다.
“얘 토요일 날 와 볼래? 고추도 심고 배추와 부추 씨도 뿌렸다, 가지도 다섯 포기 심고.”
“가 봐야 아직 싹도 제대로 안 났을 텐데 뭐.” 심드렁한 내 대꾸에 전화를 끊은 지 얼마쯤 지났을까 언니는 또 퇴근해서 막 옷을 갈아입는 내게 전화를 해서
“얘 배추 싹이 났는데 예쁘다, 아침 햇살에 보면 마치 작은 나비들이 날개를 접고 앉아 있는 것 같아. 고추도 막 첫 송이 꽃을 피우고 방실방실 웃는데 언제 와서 사진 찍을래?” 실로폰 소리 같은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언니의 일과는 퇴근하는 나를 기다렸다가 사진보다 더 자세하게 그 작은 뙈기밭의 상황을 알려 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비로소 끝이 났다. 하도 언니가 밭 때문에 그러니까 조카가 “우리 아빠 엄마의 직업은 제조업인지 농업인지 헷갈린다.” 며 웃었다. 그때부터 내게 작은 걱정이 생겼다. ‘저러다 고추가 하나도 안 달리면 어쩌지!’
시골서 자라긴 했지만 우린 채 농사를 알기 전에 고향을 떠났다. 가끔 엄마 심부름으로 밭에 가서 오이 가지도 따고 고추도 땄지만 어떻게 씨 뿌리고 거두는지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도 언니는 장날을 잊지 않고 고향 텃밭에 있던 야채 모종을 다 사다 심어 놓았다. 특히 고추는 태양초 만들어서 김장할 거라고 야무진 결심을 한 터라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온 우리는 똑 같이 향수병이 있었다. 어딜 가더라도 밭이 있으면 마치약속이나 한 듯이 바라보고 거기 고추나 오이 가지 같은 게 있으면 한없이 부러운 눈길로 쳐다본다. 아마 언니도 나처럼 여름이면 찬물샘에 가서 물 한 주전자 길어오고 집 앞 밭에서 오이를 따 냉국을 만들고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던 대청마루의 소박한 밥상을 늘 그리워하는 것이리라.
또 얼마가 지났을까 점심시간에 메시지가 와서 열어보니 언니였다.
“*^^* 오늘 드디어 풋고추 하나 첫 수확해서 형부와 둘이 나눠 먹었다~” 천식 환자가 산소마스크를 쓴 것처럼 파 마음이 밝아졌다. 땀 흘리고 난 뒤의 점심시간, 부부가 냄비에 고슬고슬한 밥을 지어 놓고 마주 앉아 풋고추 하나를 따서 반으로 갈라 된장에 찍어 맛보는 풍경을 생각하니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언제 한 번 가 보아야지 싶은 생각이 절로 났다. 내가 가 보아야지 생각만 하는 동안에도 고추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이제 파릇하게 약 오른 놈들이 하도 많아서 어느 것을 먼저 따야 할지 모르겠다고 언니는 숫제 비명이었다.
그러더니 하루는 “얘, 사람들이 그것도 농사라고 풋고추를 제법 따 간다.” 그랬다.
아침에 출근하면 여기저기 풋고추를 따간 흔적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한적한 도로 가의 밭에서 제철보다 이르게 익어 가는 풋고추 몇 개를 누군들 상에 올리고 싶지 않을까 하면서도, 언니가 하도 정성을 기울이며 애지중지하니까 안타까웠다. 작은 땅에 화초처럼 가꾸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싶어 알 수 없는 그 손이 더 야속했다.



두어 주 지나 공장에 놀러 가서 이제 제법 풋고추를 따 먹겠구나 하고 고추를 심은 마당 가로 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게, 밭에 꽂힌 가느다란 꼬챙이에 거꾸로 엎어놓은 농약병이었다. 지난번 언니의 이야기를 생각하곤 웃으며 “이렇게 해놓으면 더는 고추를 못 따 가겠네?” 했더니 “약 기운 떨어질 때까지만 그렇게 걸어 놓으려고, 모르고 따 먹을 까봐“ 그랬다. 약이 바짝 오른 청량 고추 하나를 베어 물었을 때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지난 번 누가 고추를 자꾸 따 간다고 전시용으로 농약병을 꽂아 둔 줄 알았는데 정작 언니는 농약을 치고 누군지 모를 사람이 모르고 따 먹고 화를 입을까 그것을 염려한 것이다. 언니의 마음은 처음부터 내가 짐작할 수 없는 높이에 있었다.
언니의 첫 고추농사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건조기를 하나 사야하나 싶을 정도로 많이 달려서 말리느라 애를 먹었고 그래도 틈틈이 말린 고추로 언니의 소원대로 김장할 만큼 수확했다. 아마도 넉넉한 농심을 보고 그만큼 더 달려준 게 아닌지. 언니와 수확이 끝난 고추 마른 대궁을 뽑는다. 고춧잎까지 따서 갈무리했다. 수북이 쌓인 앙상한 고추대궁에 절반쯤 익은 고추 하나가 말라붙어 있다. 그때의 부끄럽던 내 기억처럼.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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