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다랑논
'글. 이정연'

가을 햇살이 따뜻하게 등을 데우는 날 다랑논의 벼를 베면 참 좋다. 이따금 메뚜기가 따끔따끔 이마에 와 부딪히고 막 베어낸 벼 포기에선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논두렁엔 벼 포기 사이에서 지지부진 자라느라 연약해질 대로 약해진 고마리가 그제야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모습도 보인다. 잘 가는 사진 사이트에 갔더니 누가 꼬불꼬불한 논두렁이 정겨운 다랑논 사진을 올려놓았다. 곱게 단풍이 든 전경 뒤로 오후의 햇살에 노란 다랑논이 어찌나 아름답든지 일하다가 머리가 무거워 질 때마다 들여다보았다.



지금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상인동 월곡역사박물관 뒤편엔 정겨운 다랑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앞산 단풍은 마치 도미노게임을 하듯 산 아래로 번져 내려오는데 퇴근길에 쉽게 가 볼 수 있는 곳에 산골에서나 볼 수 있는 다랑논이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시골 살림을 정리해 대구로 오긴 했지만 몸만 오셨을 뿐 마음은 늘 고향에 가 계시는 어머니가 출근하는 내 등에 대고 또 시골의 묵혀 둔 논 이야기를 하셔서 짜증을 낸 일이 종일 우울해서 퇴근길에 혼자 그곳으로 가 보았다.
둑엔 갈꽃이 무리 지어 피었고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엔 선홍빛 석양이 잠겨있는 저수지 곁 다랑논에서 노부부가 벼를 베고 있었다. 이내로 신비로운 가을의 들녘 모든 물체는 정지된 듯 고요한데 벼를 베는 노부부만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 마치 꿈속의 풍경 같아 나도 몰래 걸음을 멈추었다.
고향집 다랑논이 생각났다. 우리 집에 논이 생긴 것은 오빠 덕분이었다. 그 계약을 하던 날 나는 오빠의 손에 이끌려 오리나 떨어진 그 논으로 구경하러 가보았다. 오솔길에 서서 논을 내려다보며 “저것이 우리 논이다.”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오빠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어찌 그 일 뿐일까. 얼굴에 진흙을 묻힌 채 모를 찌던 언니 얼굴도, 온 식구가 풀을 베어 무논에 밟아 넣던 그 해 오월도 잊지 못한다. 진흙으로 곱게 싸 바른 논두렁이 꾸덕꾸덕 마를 때쯤 부러진 낫 날로 칼집을 내어 콩을 심던 어머니의 환한 미소와 가문 여름 웅덩이에 물이 고이면 자루가 달린 바가지로 퍼 올리고 다랑논 옆 너럭바위에서 조금 눈을 붙이시다가 개울 웅덩이에 물이 차면 다시 일어나 퍼 올리곤 하시던 아버지도 모습도 잊지 못한다.
오빠가 죽고 난 후 고스란히 논 두마지기 농사가 어머니 혼자 몫이 된 지도 오래, 일터에서 오전 근무를 하고 토요일 시골로 가는데 건너편 산비탈 오솔길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볏짐만 천천히 움직였다. 어쩐지 끌리는 느낌이 있어 유심히 쳐다보니 바로 어머니였다. 얼른 산길을 내려가 작은 개울을 건너 어머니의 지게 앞에 섰다. 구슬처럼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눈에 들어갔는지 어머니는 자꾸만 눈을 깜빡이면서 눈물을 짜내다가 작은 둔덕이 있는 곳에 지게를 받치셨다. 어머니 어깨가 온통 땀에 젖었다. 받쳐 둔 그대로 지게를 앞뒤로 밀어 보았다. 결코 보던 것과는 달리 만만치 않은 무게였다. 한사코 만류하는 어머니께 핸드백을 맡기고 지게를 져보았다. 어머니의 땀이 밴 축축한 등태의 감촉이 차가웠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고 밀삐는 사정없이 어깨를 파고들었다. 힘든 농사 무거운 짐을 평생 벗어날 길 없는 어머니의 운명이 너무 가여워 땀보다 많은 눈물이 가슴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머니 혼자 그 해 가을걷이를 끝내야 하는 것이다. 개울 곁 나지막한 논두렁길을 지나다 그만 개울로 지게와 함께 처박히고 말았다. 물에 반쯤 잠긴 볏단을 꺼내어 논두렁에 기대놓고 물을 빠지기를 기다리는 시간 어머니와 논두렁에 나란히 앉았다. 비낀 햇살에 더욱 두드러져 보이던 어머니 이마의 주름 너머로 추수를 마친 깨끗한 다랑논이 온화하게 우릴 감싸 안고 있었다.



“뭔 볼일 있소?” 아픈 기억을 자르는 아저씨의 물음에 퍼뜩 정신이 들어 “저도 벼를 한 번 베어보고 싶어서요.” 했더니 아저씨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낫을 넘겨주시며 논두렁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무셨다. 땀과 온기가 스민 낫자루가 시골에서 내가 쓰던 그것처럼 손에 쏘옥 들어왔다. 갈 때를 알고 한껏 고개를 숙인 채 한 치의 반항도 없이 순하게 베어져 오는 벼 포기 소리가 그 어느 기도보다 경건하게 느껴졌다.
"논농사 좀 져 봤는가베?" 내 뒤로 가지런히 베어져 눕혀있는 벼를 기특한 듯 바라보며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한결 길어진 그림자 끝에 베어낸 벼가 고향집 아랫목에 깔린 이부자리처럼 얌전하게 펼쳐져 있었다. 마치 햇솜을 타서 갓 꿰매 놓은 이불처럼 포근하여 드러눕고 싶어졌다. 알맞게 마른논의 푹신한 감촉을 발바닥으로 느끼는 것도 평화롭고 바빠진 풀벌레의 울음소리도 정겨웠다. 어머니도 처마 밑에 차곡차곡 쌓아 둔 나락 몇 가마에 미련이 남아 그러시는 게 아닌 줄 온몸으로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오빠의 피땀이 배어 있던 그 논을 묵혀 두는 일이 어머니께는 병마보다 참기 힘든 고통이셨을 것이다.
어떤 계절에 만나든지 다랑논을 보면 마음이 통하는 오랜 친구처럼 느껴진다. 사람도 고통을 나누며 함께 한 시간이 없으면 별 애정이 생기지 않는 것처럼 멀뚱히 서서 지켜 본 사물에는 결코 깊은 애정이 생길 리가 없는 것이다. 그 다랑논이 마치 시골 우리 다랑논과 꼭 닮아서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가 보았다. 벼는 다 거둬가고 벼 베어낸 그루터기마다 긴 그림자를 드리운 논에 남루한 옷차림의 허수아비가 혼자 남아 겨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함박눈이 내린 한 겨울 날 다시 그 논에 가 보았다. 봉긋봉긋 베어낸 벼 포기마다 눈을 이고 봄을 기다리는 논으로 아이들이 눈을 뭉쳐 던지며 놀고 있었다. 이른 봄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포슬포슬 흙이 피어나는 다랑논이 긴 겨울잠을 깨는 것 같아 나도 덩달아 희망으로 설레곤 하였다.

EDITOR AE안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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