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곰보빵
'글. 박종희'

회식이 있다는 남편의 전화에 스르르 긴장이 풀린다. 일단 오늘 저녁밥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종이처럼 의자에 깊숙이 접혀 있던 몸을 펴고 나오니 부슬부슬 늦은 가을비가 내린다. 작정했던 것도 아닌데 마치 내 마음속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핸들이 빵집으로 기운다.
집에 오니 마침 딸애도 빵이 먹고 싶었는데 잘됐다며 봉지에서 빵을 수북하게 쏟아놓는다. 그런데 웬걸, 다양하게 고른다고 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곰보빵이 제일 많다. 옷을 벗기도 전에 곰보빵을 한 개 들고 앉았다. 나는 곰보빵을 먹어도 겉에 있는 울퉁불퉁하고 바삭한 곰보를 좋아한다. 비록 혀에 닿는 느낌은 거칠고 까칠하지만 씹히는 촉감이 좋다. 뭐랄까, 꼭 쿠키를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조용하고 은밀하게 씹히는 빵의 질감과는 사뭇 다르다. 그 맛 때문에 곰보만 다 떼어먹고 빵은 버리면 딸애는 왜, 예쁘게 생긴 빵 놔두고 하필이면 못생긴 곰보빵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딸애의 말처럼 사람들은 왜 못난이 곰보빵을 좋아할까. 시골 아낙네처럼 순하고 수더분해 보여서일까. 순식간에 곰보빵 한 개를 먹어 치우고 두 개째 집어 드는데 울룩불룩한 곰보빵 위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명희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명희는 아직도 곰보빵을 싫어할까. 비 오는 날 저녁으로 먹는 곰보빵이 슬쩍 명희와의 추억의 장소로 데려다준다.



명희는 이웃에 살던 중학교 동창이다. 중학교 체육대회 날 급식으로 곰보빵이 나왔다. 단짝 친구였던 명희와 같이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곰보빵을 한입 베어 무는데 갑자기 그녀의 팔이 번쩍 들렸다. 입에 대지도 않은 빵을 학교 뒤 담 너머로 던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리둥절해 하는데 명희는 눈물이 글썽한 체 운동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명희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명희는 얼굴이 얽었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고 나서 남은 자국이었다. 왼쪽 볼에 유난히 많은 곰보 자국 때문에 명희는 늘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흉터를 가리고 다녔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 명희처럼 얼굴이 얽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친하게 지내서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명희한테는 마맛자국이 꽤 큰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가끔 명희한테 곰보라고 놀리는 남학생들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명희는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동생들은 안 그런데 명희만 곰보라 집에서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 시절엔 자식도 많고 당장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 그녀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도 그녀의 마맛자국에 관심을 둘 만큼 여유가 없으니 그저 생긴 대로 살고 타고 난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희는 공부도 썩 잘했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는 가지 못했다. 그때부터 과수원과 제지공장으로 일하러 다녔다. 사과 전지하는 아줌마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일하는 그녀는 손끝이 야무져 아줌마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내가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시간이면 명희도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과수원 언덕배기를 넘어가곤 했다.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고 중학교 때까지도 친하게 지내던 터라 반가워하면 그녀는 총알 같은 걸음으로 내 달음 질쳤다.



수년이 넘게 다닌 공장에서도 인정받고 돈도 제법 많이 모았다는 그녀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꼭 촌스러운 곰보빵이 세련된 모카 빵으로 변하는 것처럼 화장이 짙어지고 머리 스타일도 달라졌다. 간혹 스카프를 멋스럽게 두르고 원피스를 입은 그녀를 몰라볼 때도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가 같은 공장에서 사무 보는 남자와 사귄다고 했다. 남자는 고등학교를 나오고 키도 크고 인물도 훤하다고 했다. 딸의 얼굴에 핀 곰보 자국까지 예뻐한다는 그 남자 자랑에 명희 어머니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집에 과일도 사 오고 쇠고기도 사 왔다고 사윗감 자랑을 입에 물고 다닐 때쯤 그녀의 결혼 소식이 들렸다. 좋은 남자 만나 시집 잘 가는 명희가 얼굴은 곰보라도 복을 타고났다며 동네 어른들이 다들 한마디씩 했다. 보기엔 거칠고 투박해도 먹어보면 그 맛에 중독되는 곰보빵처럼 생활력 강하고 착한 명희의 심성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곰보빵의 구수하고 달콤한 맛처럼 그 시절이 명희의 인생에서 가장 달곰한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시집가서 이듬해에 바로 아들을 낳았다는 소린 들었는데 그 후 그녀의 소식이 끊겼다. 그동안에 나도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사느라 정신없어 그녀의 얼굴도 까마득하게 잊었다. 몇 년 전 친정에 다니러 가니 명희가 이혼당하고 혼자 아들 데리고 산다고 했다.
명희 이야기를 하시던 친정어머니는 명희가 불쌍해 죽겠다며 혀를 끌끌 찼다. 시집가서도 직장을 내놓지 않고 일해 집도 사고 어려운 집안을 보란 듯이 일으켰는데 남편한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자신은 돌아볼 여유 없이 일만 하는 아내의 억척스러움이 남편의 눈에는 신물 나고 지겨웠던 모양이다. 한때는 곰보 자국이 매력적이라며 좋아했던 남자가 딱 10년 살고 나더니 갑자기 울퉁불퉁한 마맛자국이 창피해 같이 못 살겠다며 떠났다.
이혼의 아픔으로 한동안 갈팡질팡하던 명희가 다시 삶에 끈을 부여잡았다.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했던 공부를 시작해 방송통신대학교도 졸업했다. 마음고생이 심하면서도 당차게 공부해 늦깎이로 공무원이 되었다. 동창 모임에도 잘 나오고 얼굴도 밝아졌다. 늘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던 그녀가 이젠 자신을 사랑하며 잘 사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내가 곰보빵을 맛본 지 40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빵을 대하는 마음이 편안한 것처럼 명희를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것은 바로 노릇노릇하고 구수한 곰보빵처럼 명희한테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수더분함 때문이리라.
가끔 여리고 보잘것없는 것들에게서 겸손함을 배울 때가 있다. 어린 마음에 곰보 자국이 얼마나 가슴에 맺혔으면 빵을 집어 던졌을까. 그런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내가 아주 부끄럽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삶의 능선을 오르내리고 있을 명희가 몹시도 그립다.

EDITOR AE류정미
박종희 작가
이메일 : essay0228@hanmail.net
2000년 『월간문학세계』수필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전국시흥문학상, 매월당 문학상, 김포문학상
2015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제1회 119 문화상 소설 최우수상 수상 외 다수
2008년 ~ 2019년까지 중부매일, 충북일보, 충청매일에 수필 연재
저서: 수필집 『가리개』『출가』
한국작가회의, 한국산문작가협회, 충북작가회의 회원
청주시, 세종시 수필창작 강사. 충북작가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