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엽편소설] 봄나물
'글. 박순철'

햇살이 따뜻한 게 완연한 봄을 느끼겠다. 담장 너머로 늘어진 가지마다 새하얀 목련꽃이 소담하고 청순해 보인다. 이에 뒤질세라 분홍색 옷으로 치장한 진달래도 살포시 미소 지으며 눈인사를 한다.
그전 같으면 농부들의 일손이 바쁜 시기이지만, 지금은 기계가 모든 일을 대신 해줘서 그런지, 아니면 농촌에 일할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아직 들녘은 조용 하기만 하다.
잔뜩 그은 얼굴에 등산 모자를 눌러 쓴 마을 사람이 누렁이를 앞세우고 느릿느릿 용산골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뒤에서 승용차가 조용히 다가와 그 옆에 와서 멈춘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시골에서는 좀체 보기 드문, 햇빛에 반짝반짝 윤이 나는 고급 승용차다. 핸들을 잡은 여인은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고급 메이커인 Y등산복에 짙은 선글라스를 쓴 모양새가 시골 사람들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다.
“….”
“할아버지 나물 뜯으러 왔는데 어디 가면 많아요?”
“나물이요?”
“네.”



“요즘 나물 조심해서 뜯어야 해요. 밭둑에 있는 나물에는 지난해 소독한 농약 성분이 남아 있을 수 있어요.”
“소독 안 한 곳은 없나요?”
“저 저수지 제방에 가면 쑥이 많다고 합디다. 그리 가보시오. 그리고 남의 밭에서 함부로 뜯으면 큰일 나요.”
“네. 고맙습니다.”
“야! 나물이야 뜯지 못하면 사가지고 가면 되잖아.”
“그래, 그까짓 거 몇 푼이나 하겠어.”
그들은 마을 사람이 가르쳐 준 제방에 차를 세우고 과도와 비닐봉지를 들고 무엇이 있나 살펴본다. 제법 쑥이 파릇하게 새잎을 내밀고 있다. 한 여인이 쪼그리고 앉아서 쑥을 칼로 도려서 들고 자랑스레 흔들어 보인다.
“야, 이 정도면 먹을 만해. 이 냄새 좀 맡아봐!”
“뭐야? 아직 너무 어리잖아.”
“이 좀생이들아 그런 조무래기 뜯어서 언제 나물 봉지 채우냐? 우리 저 위쪽으로 더 올라가 보자”
“그래, 여기는 약빠른 사람이 먼저 뜯어갔어.”
그 말에 네 여자가 약속이나 한 듯 일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조금 올라가자 묵정밭이 나타났다. 몇 년째 농사를 짓지 않았는지 지난해 자란 망초 대궁이 어른 키만 하다. 그 밭은 서울에서 귀농한 아랫마을 김 씨 네 밭이다. 밭고랑에는 다른 곳보다 많은 새 생명이 파릇파릇 새순을 내밀고 발돋움하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몸에 좋다고 하는 민들레가 제법 돋보였다. 노란 꽃을 피워 더 보기 좋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르리라. 한 알의 과일을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를, 논밭에 심어 가꾸는 곡식을 자식같이 사랑하는 농부의 마음을, 그저 씨앗만 뿌려 놓으면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는 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아니다.
“와! 민들레다.”
“어쩜 이리 실할까.”
“오늘 대박이다.”
여인들은 신이 나서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고 민들레 뿌리를 캐기 시작한다.
“야, 민들레가 어디에 좋은지 알아?”
“응, 당뇨, 혈당조절, 이뇨작용….”
“그보다 훨씬 더 많아. 내가 구체적으로 일러줄게. 자, 내 말 잘 들어봐”



“첫째, 민들레는 간 기능회복에 매우 탁월한 효능을 보입니다.”
“둘째, 간세포를 활성화하고 독소를 제거하며 노폐물 배출을 도와줍니다.”
“셋째, 숙취 해소에도 정말 좋습니다.”
“넷째, 염증을 가라앉혀주는 효능이 있어 장염, 위염, 식도염 등에도 좋습니다. 복용법으로는 즙으로 먹는 것이 가장 편하고 섭취하기 좋으며 하루 2~3번 공복 상태에서 드시면 더 좋습니다.”
“와! 공부 많이 했다. 한의원 차려도 되겠어.”
“야, 그런 것 인터넷 들어가면 다 나와.”
“호호호 맞아 나도 인터넷에서 본 내용이야.”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간드러지게 골짜기에 울려 퍼진다. ‘쌔 앵’하며 드론이 골짜기를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이자 여인들은 손을 들어 환호하는 여유도 보인다. 농촌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이 나물 뜯으러 오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잘 자라고 있는 어린 과수 묘목이나 작물을 밟아 못쓰게 하는 예도 있고, 또 애써 가꾸고 있는 머위나 취나물 종류도 자연산으로 알고 채취해 가는 일부 지각없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인들의 비닐봉지가 제법 불룩하다. 묵정밭 둘레에는 머위가 자라고 있다. 이것도 여인들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직 한 뼘 크기도 자라지 못했는데 여인들은 칼로 오려서 비닐봉지에 담는다.
조금 전 누렁이를 앞세우고 올라온 마을 사람은 300여 평 밭에 3년 전 아로니아를 심었다. 첫해는 1kg에 3만 원 가까이 받아서 대박 났는데 지금은 인건비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가격이 내려가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 나무를 캐내고 다른 것을 심을까 하고 살펴보고 내려오는 길이다.
“나물 많이 뜯었어요?”
“네, 민들레가 무척 실해요. 이 만큼 캤어요.”
여인들이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잘했구려. 혹시 저 위쪽 묵정밭에서 캐지 않았어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여인들의 눈이 등잔만 하게 화들짝 놀란다.
“내 예감이 틀림없군요. 남의 밭에 들어가서 나물을 캐거나 밭 가장자리에서 자란 나물은 채취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는데 시골 사람 말은 귓등으로 흘려들었네.”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는 묵정밭에 민들레가 쭉 깔렸기에 그냥 캤어요.”
“그 밭 주인은 친환경으로 민들레를 키운다고 했어요. 그리고 밭둑에 머위도 키우는 것이었고요.”
“네?”
“큰일 났다. 우리 농작물 절도죄로 고발당할 수도 있겠다. 이 나물 버리고 가자.”
한 여인이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나물을 길 가장자리에 쏟으려고 한다.
“소용없어요. 하늘에서 뭘로 찍었을 건데….”
“아! 그래서 드론이 날았구나.”
여인들은 서로 눈치 살피기에 급급해한다. 승용차 있는 곳에는 드론을 들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벌써부터 그 여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DITOR AE류정미
박순철 작가
이메일 : tlatks1026@hanmail.net
1994년 월간『수필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현)
중부매일『에세이뜨락』연재(2008∼2011)
충북일보『에세이뜨락』연재(2012∼2013)
충청매일 콩트 연재 (2015∼2018)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깨우지 마세요』
콩트집 『소갈 씨』
엽편소설집『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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