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여행

중국 ‘태항산’ 유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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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늦게 도착한 북경은 눅눅하고 습기 가득 찬 움막이 연상되었다. 영화 신(新)용문객잔에 등장한 거대한 사막의 모래폭풍 속 우뚝 솟은 건물들처럼 북경의 모습은 우주의 어느 낯선 도시에 연착륙한 느낌이다. 차량을 통해 본 중국의 수도 북경은 온 세상의 흙비가 내린 듯 차도 건물도 온통 뿌옇게 변해 있었다.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나라의 교통질서치고는 수준 이하였다. 중앙선 침범은 예사고, 심지어는 역주행하는 차량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황당한 것은 도로위반 차량을 접해도 중국인들은 경적 몇 번 울리는 것으로 불법을 서로 용인하고 마는 것이다. 북경을 감싸고 있는 여러 개의 순환도로를 거쳐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온 몸의 먼지를 씻어내는 일이었다.



길고 긴 여정, 태항산

북경에는 북경역, 북경남역, 북경서역, 북경북역이 있다. 각기 다른 지방으로 가는 출발과 도착이 다르다. 태항산으로 가는 기차는 네 개의 역중에서 가장 크고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북경서역에서 오전 9시에 출발했다. 테러주의보 탓인지 역을 통과하는데도 항공기 탑승절차만큼 삼엄했다. 신향까지 가는 기차의 객석은 한국의 고속전철보다 앞뒤 간격이 넓어 장거리 여행하기에는 제격이었다.



기차의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이었다. 조선족 가이드 강철은 “이곳에서 옥수수는 대부분 식용유와 가축의 사료로 쓰인다. 이렇게 많이 재배를 해도 중국 사람의 수요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한다. 낯선 타국에서 여행의 또 다른 기쁨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식당 칸에서 만난 아리따운 중국 여대생 임설(林雪, 22)은 어눌한 영어로 “나는 한국을 좋아한다. 특히 한국의 가수 비를 좋아한다.”라며 “제주도 성산포를 가봤나?”고 물었다. 그러면서 내게 “중국에 살고 싶은 생각이 없나?”고 물어왔다. 아마도 ‘살고 싶은 생각’ 보다는 자신의 나라 중국의 인상이 무척 궁금했던 것 같았다. 열차는 북경에서 신향까지 꼬박 5시간을 달렸다. 전에는 4시간이면 도착했지만, 최근에 발생한 열차대형사고로 속도를 150km 이상은 달릴 수가 없다고 한다. 신향역에 내리자 역겨운 지린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역사 곳곳에 개들이 들어와 방뇨를 해도 이곳에서는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신향에서 다시 임주시까지 40여분을 더 달려 그곳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식사를 했다. 중국의 대도시를 벗어나 지방으로 갈수록 음식은 독특한 향신료 탓에 푸짐한 진수성찬임에도 한 젓가락도 입에 댈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신향에서 구련산으로 버스로 이동 중, 차창을 통해 만난 작은 마을풍경은 우리나라 60~70년대의 시골풍경과 흡사했다. 중국의 명절 중추절이 가까워온 탓인지 마을은 음식과 사람, 홍기(紅旗)가 곳곳에 넘쳤다. 엄청난 먼지 속에서도 방금 잡은 것 같은 핏물 뚝뚝 떨어지는 붉은 고기가 회벽에 아무렇게나 걸려있었다.




비경, 절경 그리고 거대함에 눌리다

구련산 입구에 들어서자 일행은 장엄한 산맥의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고 하더니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절애와 높이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이드는 “구련산의 매력은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이 없는 산”이라고 했다. 그만큼 첩첩산중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황사와 안개가 뒤섞여 산의 실체를 제대로 만끽할 수 없었다. 버스를 타고 협곡을 오르면 근교의 풍경만 눈에 들어올 뿐, 광활한 산의 정경은 볼 수 없었다. 산은 안개 속에 전신을 담근 채 음울한 기운만 누운 짐승처럼 뿜어냈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바위절벽은 뿌연 하늘로 솟아 있고, 바위 옆면은 여러 띠의 결기가 켜켜이 층을 이루어 마치 남성의 우람한 근육을 보는 듯 했다. 가이드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절벽에는 절묘하게 붙어있는 사원들과 집들이 위태로웠다. 더 이상 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일행은 걸어서 정상으로 향해야 했다. 약 30여분 걷자 등에 땀이 조금 차오를 무렵,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에 신비한 비취색 호수가 일행을 반겼다. 천잉담(天孕潭)이다. 머리 쪽에 ‘후드득’ 물이 떨어져 위로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거대한 천호폭포가 하늘에서 물벼락을 쏟아버린다. 높이가 무려 120m다. 그 폭포 높이만큼이나 아득한 절벽을 타고 오르는 엘리베이터는 아찔하고, 놀라웠다. 발끝아래가 바로 천 길 낭떠러지니 오금이 왜 아니 저리겠는가.
절벽 위에 도달하니 웅장한 협곡인 석애구를 병풍처럼 두르고 사는 20여 가구의 마을 사람들이 돌담에 앉아 낯선 이방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하지만 태항산의 지존이라는 왕망령을 이곳까지 와서 만나보지 못해 아쉬웠다. 짙은 황사와 안개는 끝내 남석림과 천주쌍봉, 촛대바위의 비경을 허락하지 않았다.




신선의 산, 만선산(萬仙山)

다음날, 일행은 신선이 산다는 만선산(萬仙山)으로 이동했다. 이곳의 산 높이는 약 1900m에 이른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한라산과 맞먹는 높이다. 만선산과 임려산으로 이어지는 협곡에 난 길은 무한한 인간의 힘을 느끼게 한다. 절벽 안쪽을 몇 대에 걸쳐 사람이 깎아 길을 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곳 태항산에 얽힌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일화가 문득 생각나게 하는 노력의 절창이다. 한겨울에도 복숭아꽃이 핀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는 도화곡이 절벽을 머리에 화관처럼 두르고 성스런 기운을 뽐낸다. 도화곡 입구에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오르자 투명하다 못해 시퍼런 흑룡담이 눈 시리게 일행을 반긴다. 흑룡담 주변 절벽을 절묘하게 깎아 만든 바위 길은 트레킹 코스로 그만이었다. 일행은 세외도원으로 가는 절벽 장랑을 경유하여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곽량촌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유명한 화가뿐만 아니라, 중국의 젊은 미술학도들이 몰려들어 웅장한 태항산의 신비를 화선지에 옮겨 담고 있었다. 하산 길에 만난 일월성석(日月星石)은 과연 자연이 만들어 낸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평평한 바위에 해와 달, 별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다시 석판암 임려산으로 버스로 이동하면서 황룡담, 함주, 이룡희주, 구련폭포를 스치듯 관람하고 왕상암을 끝으로 약 4시간에 걸친 여정을 모두 마쳤다. 왕상암의 절경이라는 목마파, 잔도, 관경대, 높이 88m의 통제, 사자동, 옥황각, 운제, 하복동, 왕상촌 등은 1박2일의 여정으로는 불가능했다. ‘적어도 신향에서 2박은 해야 제대로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이드의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요즈음 중국여행의 꽃이라는 장가계가 아기자기한 여성의 산이라면, 태항산은 크고 우람한 남성의 산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태항산은 아직 개발이 덜 된, 미지(未知)의 여행지였다. 그래서 인위적인 변형보다 자연 그대로의 가치가 더 빛나는지도 모를 일이다. 훗날,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풍경보다 지금의 조용하고 신비한 모습의 태항산이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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