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봉평에서
'글. 이정연'

여행을 떠나기 전 동해안 여러 곳의 메밀이 태풍으로 인해 많이 쓰러져서 사진인들을 안타깝게 한다는 소문을 듣고 좀 망설였는데, 도착해 보니 봉평의 메밀은 하나도 쓰러지지 않았다. 개화 상태도 알맞아서 사진 찍기에도 최고로 좋은 상태였다. 새로 내려 쌓인 눈처럼 뽀얀 메밀밭에 지고 있는 노란 햇살이 가득해서 꿈속처럼 아련했다. 연인들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하고 메밀꽃에 파묻힌 아이들은 꽃 대궁을 흔들고 깔깔거리며 뛰어 다녔다.
메밀꽃보다 더 흐드러지고 있는 건 정작 봉평이었다. 조개구이 군밤 옥수수 국화빵 엿 옷 등 소설과는 상관없는 온갖 것들을 파는 노점상과 관광객과 관광객의 차를 정리하는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로 산촌 전체가 들썩이고 있었다. 우리도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우선 옥수수부터 하나씩 물고 어슬렁거렸다. 맨 먼저 눈에 띈 게 ‘충주집터’라는 돌에 새긴 표석이었다. 그 표석을 보는 순간 여기가 소설 속의 동이와 허생원의 끈끈한 정이 확인되는 첫 무대구나 감동이 일었다.



메밀묵 메밀가루 메밀전 메밀전병 메밀꽃술 거리는 온통 메밀로 덮였는데 어린 나귀 한 마리가 짐을 싣고 달랑거리며 거리를 지나쳤다. 카메라 전원을 넣는 사이 사라져 버린 예쁜 나귀 이래서 우리는 먼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이제 반죽이 없어 메밀 전병을 더 못 만든다고 신이 났고 심부름하는 아가씨는 벌써 몇 번째 빈 술동이를 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주막집조차 이제 음식재료가 떨어졌다고 입구에서 우릴 밀쳐 내었다.
길가 평상에 겨우 한 자리를 빌어 메밀 전병을 안주 삼아 메밀꽃술을 마셨는데 또 술이 다 떨어졌다. 나는 피곤해서 그만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두 친구는 한사코 한 잔 더하자고 졸랐다. 장돌뱅이 허생원처럼 술이 취해야 메밀밭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곧 문을 닫을 거라는 주막집으로 가 한 잔을 더 마시고 송편처럼 예쁜 달이 내려다보는 메밀밭 길을 걸었다. 두 친구는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행복하고 나는 가산이 주는 소설의 영향력을 부러워하며 걸었다. 밤이슬이 내리는지 피부에 닿는 공기가 차가웠다. 꽃향이 은은한 메밀꽃밭 길을 밤새 걷고 싶었으나 메밀꽃술이 그걸 허락하지 않아 숙소로 돌아와 곧 잠에 빠졌다.
얼마나 잤을까. 문득 누군가 밖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발코니로 나왔다. 사방은 고요하고 안개는 산비탈 메밀밭에 자욱하다. 별도 달도 희미하게 숨죽인 골짜기에 개울물 소리가 성서방네 처녀처럼 저 혼자 흐느꼈다. 나는 가산의 작품 중‘메밀꽃 필 무렵’ 보다 ‘낙엽을 태우며'에 먼저 눈을 떴다. 가을이면 고향집에서 늘 낙엽을 태우면서도 나는 결코 갓 볶아낸 커피냄새도 개암 냄새도 맡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냄새에 주의를 기울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메밀꽃 필 무렵'을 읽고 가산의 문학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가산의 문장을 보면 문학은 정교하고 세련된 언어의 조합 기술로만 되는 게 아니라 사물에 대한 예민한 감성과 특별한 느낌이란 생각이 들었다.



발코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아침을 맞았다. 안개가 자욱해서 저 아래의 넓은 메밀밭이 좋을 것 같아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친구들을 깨울까 하다가 하도 곤히 잠들어 혼자 나섰다. 어젠 관광객들 때문에 카메라 들이댈 데가 없더니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었다. 원두막도 멀리 마을도 안개 속에 갇혀 사진 찍기에도 그만이었고 이슬에 젖은 메밀꽃이 팔에 닿는 촉감이 상쾌했다. 셔터를 누르는 내내 이 집 저 집에서 닭이 울었다. 효석 문화제가 열리는 동안은 관광객으로 부산하지만 봉평은 아직 산촌의 정겨움도 잃지 않았다. 여뀌 싸리 궁궁이 마타리가 다투듯 피어있는 호젓한 길을 천천히 걸어 돌아왔다.
가산의 생가가 숙소에서 가까워 다녀와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갔는데 이른 시간이지만 사람들이 많아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겨우 한 자리를 찾아 차를 대고 들어가는데 한 할머니가 아카시아 꿀과 메밀 꿀을 놓고 비교해 맛을 보라고 손을 잡아끌었다. 어릴 때 석청을 먹고 호되게 데인 경험 때문에 괜찮다고 하고 그냥 가는데 할머니가 팩 소리를 지르셨다.
"선본다고 다 내 며느리가 되는 거 아녀!"
그 말 한 마디에 나는 꼼짝없이 붙잡혀서 할머니가 종이티스푼에 찍어 주시는 꿀을 번갈아 맛본 뒤에 사람들을 돌아보며
“역시 아카시아 꿀과는 견줄 바가 아니네요.”하고 어색한 연기를 한 뒤에야 겨우 풀려났다.
어떤 사람들은 '효석 문화제'가 당초 가산이 남긴 아름다운 문학의 뜻을 기리기보다는, 행사기간 열흘 동안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더 여념이 없다고 걱정했지만 그건 그리 생각할 일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문화제를 기획하고 싶어도 '메밀꽃 필 무렵' 같은 작품이 없었다면 그건 애초부터 있을 수 없던 일이었다. 나 역시도 소설 속의 메밀밭에 대한 묘사가 없었다면 굳이 봉평으로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미난 축제는 어디에나 널려 있고 마음만 먹으면 사진이 될 만한 메밀밭은 가까운 곳에도 얼마든지 있으므로.
가산이 태어나 여섯 살 때까지 머물렀다는 생가엔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이제 봉평. 메밀밭. 가산은 도저히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단어가 되었다. 메밀꽃 필 무렵이란 문학작품이 없었다면 그저 골목의 잡초나 뽑으며 소일하셨을 것 같은 할머니가 그토록 카리스마적인 한 마디로 관광객을 불러 세울 수 있는 문학의 힘에 대해 나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가산처럼 이렇게 긴 세월을 건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글 한 편을 남길 수 있다면 나도 기꺼이 요절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생가를 떠났다.

EDITOR AE류정미
이정연 작가
이메일 : manjuyeon1@hanmail.net
2003년 4월 수필문학 등단.
2004년 중부매일신문 세정유감코너 짧은 수필 집필 (1월-4월까지)
2004년 여름호 수필 ‘망월사에서’ 에세이문학 등단
2004년 영남수필 회원 –2019년
2006년~2008년 에세이문학 올해의 수필 20선 추천
에세이문학 수필과 비평 에세이21 수필사랑 대구문협지 다수 기고
2011년 - 현재 대구 달서구 현대힐공인중개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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