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엽편소설] 고향 실개천
'글. 박순철'

하늘이 원망스럽다. 무슨 잘못을 얼마나 많이 했기에 이리도 불볕더위를 퍼붓는단 말인가. 소갈 씨가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선풍기를 켠다. 시원하기는커녕 뜨거운 바람이 달려 나온다.
자신에게 역마살이 붙었다고 생각하는 소갈 씨! 정말 코로나19 아니었으면 섬진강 매화 축제를 비롯해 봉평 메밀꽃 축제 등 볼거리를 찾아 많이 돌아다녔을 것이지만, 소갈 씨의 두 발을 꽁꽁 묶고 있으니 정말 장사는 장사인가 보다.
이번에는 TV를 켠다. 공영방송 3사(社)는 연일 도쿄 올림픽 경기 중계방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소갈 씨가 좋아하는 축구 경기가 8강전에서 멕시코에 어이없이 6:3으로 대패했다. 실망한 나머지 TV를 켜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버렸다.
무얼 한다? 날씨는 덥고 올림픽 경기는 흥미를 잃어가고, 좌불안석 왔다 갔다 하던 소갈 씨가 물안경과 양파 자루를 들고 나선다.
“어디 가려고 그래요?”
“고향 하천에나 다녀오려고요. 당신도 같이 가요?”
“이 더위에 무슨, 혼자나 다녀오세요.”
소갈 씨 부인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진다. 가끔 뜬금없는 행동을 하는 소갈 씨이기에 오늘도 그리 특별할 것은 없지만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는 모습이 수상해도 지켜보고만 있다. ‘저 양반이 더위를 잡쉈나?’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자신을 위해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 버티고 있지만, 더위를 먹고 허덕일 만큼의 저질 체력도 아니고, 그리 힘든 일을 한 적도 없다. 그저 바람이나 쐬고 오고 싶은 마음에 강가에서 한나절 지낼만한 물건을 주섬주섬 자동차에 챙겨 싣는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TV 시청에 몰입한다.



소갈 씨 고향 마을은 속리산 국립공원 자락에 있는 괴산군 칠성면이다. 고향이라고는 하나 떠난 지 50년이 넘었으니 남아있는 일가친척도 없다. 처음에는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지나는 길이 있으면 차를 세워놓고 한참씩 자신이 살던 곳을 바라보곤 했었지만, 이제 살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어릴 적 같이 뛰어놀던 동무들은 무슨 일인지 하늘나라의 부름을 받은 지 이미 여러 해 되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10여 살 많은 M이라는 분뿐이다. 어쩌다 지나는 길이 있으면 들러서 인사를 하고 가지만 농촌이라는 게 날이 좋으면 항상 들에 나가 있게 마련이어서 허탕을 친 일도 있다.
소갈 씨가 물안경과 양파 자루를 들고 어정어정 하천을 향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어서 수량은 적어도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1급수다. 깊은 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다 보니 차갑고 올갱이가 서식하기에는 부적절한지 별로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찬물에서 잘 자라는 한강 모치와 은어, 피라미 종류가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다.
“아저씨! 아저씨! 거기 들어가면 안 돼요.”
뒤를 돌아보니 마흔 가까이 되어 보이는 젊은이가 소갈 씨를 쏘아보고 있다.
“나 불렀소?”
“네, 여기는 사유지라서 들어가면 안 돼요.”
“뭐요. 하천이 어찌 사유지란 말이요?”
“하천이 사유지가 아니라 지금 들어가시는 길이 사유지란 뜻입니다. 나오세요.”
그제사 주변을 둘러보니 ‘개인 사유지’라고 써 붙인 팻말이 보였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려는 듯 길게 줄을 친 것도 보였다. ‘이런, 개인은 뭐고 사유지는 뭐람’그의 입에서 또 투덜거림이 튀어나온다. 굳이 하천에 들어가려면 100m 정도를 돌아서 가야 했다. ‘평상 대여해 드립니다. 하루 5만 원’이란 조그마한 팻말도 보였다. 기가 막혔다. 세월이 둔갑하고 인심도 많이 바뀐 것을 모르고 있는 소갈 씨! 그런 인심이 야박할 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몇 걸음만 가면 될 길을 100여 m나 돌아서 가란 말인가?
초여름에 첫 옥수수를 따면 삶아서 호박넝쿨이 우거진 담 너머로 이웃집에 한 바가지 넘겨주던 어릴 적 그 훈훈하던 인심은 어디 가고 빈 땅도 밟지 못하게 한단 말인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싶었다.
“정히 들어가고 싶으면 평상을 대여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평상? 그 값이 얼만데 그래요?”
“하루 5만 원입니다.”
“그리 오래 있지 않을 거요. 잠깐만 들어갔다 옵시다.”
“이 아저씨가 왜 이리 말이 많아. 어서 나와요.”
자식 또래도 안 된 젊은이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보니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나도 옛날에 이 동네 살던 사람이요. 그런데 고향 마을에 와서 하천에 좀 내려가 보려는데 그렇게 야박하게 해야 하겠소?”
“그렇다면 미리 말씀하셨어야지요. 언제 사셨어요?”
그제야 젊은이의 태도가 누그러진다.
“여기 떠난 지 한 50년 된 것 같소.”
“그럼 제가 태어나기 전이네요. 그러니까 모르죠.”
‘삐리리, 삐리리’



소갈 씨 휴대폰이 계속 울린다. 폴더를 열자 M이라는 이 동네 사는 분이다. 집에 들렀다가 사 온 수박 한 덩이와 명함을 꽂아놓고 왔더니 돌아와 그걸 본 모양이다.
“아! 예, 형님 집에 아무도 계시지 않기에 그냥 보 막은 개천으로 나왔어요.”
“그려 조금만 기다리게.”
젊은이의 눈빛이 초점을 잃고 흔들린다. 오토바이를 타고 M형님이 금방 달려왔다. 80이 넘은 연세임에도 아직 꼿꼿하다. 백수(白壽)를 하시고도 남을 것 같았다.
‘아니, 노인 회장님이?’
“자네가 오늘 당번인가?”
“네. 이 어르신 아는 분인가요?”
“옛날에 여기 사시던 분일세.”
젊은이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인다.
“전화라도 좀 하지 않고서….”
“일하시다 전화 받기 불편할 것 같아 그랬습니다.”
“그래 어쩐 일인가?”
“너무 더워서 고향 개울에 와서 발이나 좀 담그다 가려고 왔어요.”
“저 회장님! 저기 평상으로 가시죠. 제가 가서 마실 것 가져오겠습니다.”
젊은이가 얼른 끼어들었다.
“그럴까?.”
어렵게 소갈 씨가 고향 하천에 발을 담그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옛날 매운탕을 끓여 먹기 위해 친구들과 같이 고기를 잡으러 다니던 일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커다란 망치로 돌을 두들기면 물고기가 허옇게 배를 뒤집어쓰고 돌 밖으로 튕겨 나오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집에서 가져온 양은 솥에 가까운 밭에서 뽑아온 대파 서너 뿌리, 고추 몇 개 따서 뚝뚝 분질러 넣고 잡은 고기 몽땅 넣은 다음 고추장 풀어서 빨갛게 끓인 매운탕에 막걸리를 먹으며 희희낙락 떠들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세기가 흘러갔으니 아쉽기만 하다.
“고향, 많이 변했지?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게. 저 젊은이는 오늘 당번으로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하는 중일세. 관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 처리와 하천 정비 기금으로 쓰기 위해서 외부인에게 평상 대여금을 받는 것이니….”
M형님은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기에 바쁘다. 소갈 씨는 고향에 찾아와서도 자신의 전매특허 소갈머리를 내보인 것 같아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었다.

EDITOR AE류정미
박순철 작가
이메일 : tlatks1026@hanmail.net
1994년 월간『수필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현)
중부매일『에세이뜨락』연재(2008∼2011)
충북일보『에세이뜨락』연재(2012∼2013)
충청매일 콩트 연재 (2015∼2018)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깨우지 마세요』
콩트집 『소갈 씨』
엽편소설집『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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