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엽편소설] 홍류동 유람객
'글. 박순철'

코 사태(코로나)가 계속되니 없던 병도 생겨나나 보다. 배탈 한번 안 앓던 소갈 씨가 속이 더부룩한 게 꼭 체한 것 같은 증상이 가끔 나타나곤 했다. 그리 큰 병은 아니다. 꼭 경치 좋은 곳이 아니어도 바람을 쐬고 한 바퀴 휘 돌아오면 언제 아팠냐 싶게 씻은 듯이 낳는 병이다. 그런 소갈 씨 병을 잘 아는 그의 아내가 코로나가 언제 물러갈지 모르니 준비 단단히 하고 한번 다녀오라고 선심을 썼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저 부부밖에 없다고 생각한 소갈 씨도 그에 질세라 아내에게 인심을 쓰기로 했다.
“당신도 같이 갑시다.”
“당신은 혼자 다니는 게 더 좋지 않아요. 그 옛날처럼 고독인가 뭔가 하는 것을 꼭꼭 씹으면서요?”
“같이 가기 싫으면 싫다고나 할 것이지 무슨 그런 말을…….”
속으로는 반가우면서도 괜한 말을 해보는 소갈 씨!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하다. 들었다 봤다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런 일은 오래 끌면 안 된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하지 않았든가? 착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아내지만 언제 마음이 변해 ‘이 코 정국에 어디를 가느냐?’라며 명을 거둘지도 모른다.
아내의 엄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짐을 꾸렸다. 짐이라고 해봐야 운동화, 등산화, 배낭, 땀 흘리면 갈아입을 옷 몇 가지면 충분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지끈거리던 머리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 싶게 맑게 개었다. 애마를 구르는 발에 힘이 더해진다. 소갈 씨 저렇게 들떠있다가 과속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어디로 갈까?’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오래전부터 가고 싶어 하던 곳은 모두 머리 한쪽 구석에 입력해 놓는 치밀함을 가진 소갈 씨! 기억의 창고를 뒤졌다. 울산의 대왕암, 선운사 꽃무릇, 봉평 메밀 축제, 몇 곳을 찾아내었지만, 계절에 잘 맞지 않았다. 선운사 꽃무릇 축제와 봉평 메밀꽃 축제는 아직 한 달여는 더 있어야 하고,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가? 아니다. 지금 철없는 젊은이들이 바닷가 해변으로 모여들자 각 지자체에서는 해수욕장을 전부 폐쇄했다고 하니 바닷물에 발도 담그지 못하고 돌아설지도 모른다.



아! 그곳이다. 소갈 씨의 머리에 각인된 그 길! 그곳은 ‘가야산 홍류동 소리길’이었다. 언젠가 인터넷에 올라온 홍류동 소리길은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아름다운 미녀들이 참하게 서 있는 듯한 환상 그 자체였다. 아! 그런데 아직 붉은 갑옷을 입기에는 이른 시기이지만 그래도 그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가야산 홍류동을 향해 그의 애마를 마구 채찍질했다.
마구간에서 잠만 자던 애마도 넓은 길에 나오자 신바람이 나는가 보다. 소갈 씨가 휘두르는 채찍질에 따라 잘도 달린다. 하루 1천 리가 아니라 2천 리도 문제없을 정도로 날쌔다. 홍류동 소리길 입구인 황산마을까지 400여 리 길을 새참도 되기 전에 들이댄다. 참으로 고맙고, 빠르고 편리한 세상이다.
애마는 황산 마구간에 매어두고 혼자 길을 나섰다. 괴나리봇짐이 아닌 조그마한 배낭을 짊어지고 손에는 등산지팡이를 들고 제법 그 옛날 전국을 유람하던 선비 행세를 내보려 하지만 어째 영 어설프기만 하다.
단체로 와서 해인사는 몇 번 들러 봤지만 이렇게 호젓하게 혼자 오기는 처음이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소리길 옆으로 하얗게 부서지며 흘러가는 계곡물을 바라보다 뜬금없이 노자의 수유칠덕(水有七德)을 떠올렸다.

흐르고 흘러가는 대의(大義)
바위도 뚫을 수 있는 끈기와 인내(忍耐)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바꾸는 융통성(融通性)
구정물도 받아주는 포용력(包容力)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지혜(智慧)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겸손(謙遜)
장엄한 폭포처럼 투신하는 용기(勇氣)

가로막고 서 있는 커다란 바위에 자신의 몸을 부딪쳐 굉음을 내며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은, 장엄한 폭포처럼 투신하는 용기(勇氣) 같았고, 무엇이 되었든 가로막는 꼴은 못 보고 앞으로 내달리려고만 하는 것은, 바위도 뚫을 수 있는 끈기와 인내(忍耐)처럼 보였다. 저렇게 여럿이 뭉치니까 힘이 나는 것이지 소수일 때는 그저 낮은 데로만 흘러가는 겸손(謙遜)한 모양새였었는데 어제 내린 비가 그토록 엄청난 힘과 용기를 주었지 싶다.
소갈 씨 자신은 왜 저런 용기와 인내와 겸손이 없었을까 생각하니 회한이 밀려왔지만, 이제 돌이킬 수도, 돌아간다고 해서 없던 용기와 인내와 겸손이 생겨나지도 않을 것이란 생각에 다시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쯤 올라가자 소나무 밑동에 송진을 낸 상처가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에 의약품이나 화학약품을 만들기 위해 수탈된 상처로 알고 있어서 더욱 마음을 아릿하게 했다.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는 저 아픔, 저 만행, 이제는 사죄할 때도 되었건만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일본이 얄밉기만 하다.
대가람 해인사 들어가는 관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문지기가 창을 든 남자가 아니라 생글생글 웃는 어여쁜 여인이다.



“입장료 내셔야 하는데요”
“입장료? 하하하” 소갈 씨의 입이 함박 만큼 벌어지며 귀에 가 걸린다.
“아니, 왜 웃으세요?”
“기분이 좋아서 웃는 거요. 하하하.”
“얼른 입장료나 내고 들어가세요. 뒤에 가마들 밀려요.”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어쩌랴. 언제 다가왔는지 영남의 제일가는 대부호가 탄 가마인지 고관대작의 가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소리 없이 다가와 소갈 씨를 째려본다. 그 서슬이 너무 푸르다.
“여기 있소.” 장난기가 발동한 소갈 씨가 등산 모자를 벗고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민머리를 들이민다. 저런! 저러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진작 말씀을 하시지.”
착하기만 한 여인이 소갈 씨를 통과시킨다.
관문을 통과해 얼마쯤 올라가자 식당과 상점들이 즐비한, 가야면 해인 치안센터와 가야농협 해인 지점이 보인다. 슬슬 시장기가 느끼지는 소갈 씨! 호두과자 한 봉을 사가지고 오면서 한 개씩 꺼내 먹은 게 전부이니 시장할 만도 하다.
식당과 선물 가게 등은 무척 많은 데 손님은 보이지 않는다. 코 사태 때문에 자유롭게 몰려다닐 수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지 싶기도 하다. 커다란 식당들도 텅텅 비어있다. 문 앞에 의자를 내놓고 자신의 식당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워 얼른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곳 역시 커다란 홀을 가냘픈 여인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주모! 여기 국밥 한 그릇 말아주시오.”
“국밥이 아니라 산채정식입니다. 손님.”
“아무려면 어떻소.”
고삐 풀린 듯 행복해하는 소갈 씨! 모처럼 손님을 맞은 주인 얼굴에도 미소가 감돈다.

EDITOR AE류정미
박순철 작가
이메일 : tlatks1026@hanmail.net
1994년 월간『수필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현)
중부매일『에세이뜨락』연재(2008∼2011)
충북일보『에세이뜨락』연재(2012∼2013)
충청매일 콩트 연재 (2015∼2018)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깨우지 마세요』
콩트집 『소갈 씨』
엽편소설집『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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