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물거리
'글. 이정연'

사전에 보면 물거리는 ‘부러뜨려서 땔 수 있는 싸리 따위의 잡목 가지로 된 땔나무’ 라고 되어있다. 시골에선 가을걷이가 끝나고 한가해지면 그 때부터 물거리를 해서 낟가리를 만든다. 집집마다 장정들이 지게를 지고 나가 온 산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자잘한 잡목을 베어 놓고 시간 날 때마다 지게로 져 들여 크고 높게 쌓아서 낟가리를 만들어 놓는다. 이 나무 낟가리가 집 주변이 두세 개 쌓여 있는 집은 노동력이 풍부한 집안이고 이 낟가리가 하나도 없는 집은 여자 혼자 사는 집이거나 장정이 있더라도 아프거나 해서 물거리를 해올 형편이 못되는 집이다. 이렇게 쌓아진 물거리낟가리는 겨우내 썩으며 마르며 하다가 온 산천이 푸른 잎으로 물들어 땔나무가 귀해질 여름에 땔감으로 쓰인다. 장작은 오래 타서 쇠죽을 끓이거나 군불을 땔 때 좋고 이 물거리는 화력조절이 쉬워 밥을 하거나 조리를 할 때 요긴한 땔감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물거리를 하느라 겨울방학을 보냈다고 하면 친구들은 설마 하며 놀란다.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한다는 것도 상상이 안 가는데 여자인 초등학생이 지게를 지고 생나무를 했다니 믿을 수 없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겨울이면 물거리낟가리 한두 개쯤 쌓아 놓아야 안심을 하는데 부엉이가 울고 첫눈이 내려도 아버지는 나무하러 가실 생각을 안 하셨다. 상처 입고 굴로 돌아온 짐승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사랑에 누워 어머니 속을 태우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는 게 안타까워서 내가 땔나무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눈이라도 올 것 같이 흐린 날은 먼 산으로 가지 않고 가까운 산 근처로 가서 솔가리를 긁어모아 동을 지어 오거나 상수리 숲으로 가서 상수리 잎을 긁어모아 헌 가마니에 담아왔다. 솔가리나 상수리나무 마른 잎은 불쏘시개로 찬장 아래 넣어드리면 어머니가 좋아하셨다. 어떤 날은 솔방울을 줍거나 삭정이도 날라 오고 날씨가 좋은 날은 나도 작은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가서 물거리를 해 왔다.



처음에는 나무를 베는 대로 칡을 걷어 단으로 묶어 왔지만 미리 나무를 베어두면 하루 이틀 지나면서 말라서 훨씬 가볍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했더니 더 많은 나무를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도저히 낟가리로 만들기는 힘들 것 같았는데 얼마 지나자 내 물거리낟가리도 제법 의젓하게 모양을 잡아갔다. 그것도 신이 났지만 나무하러 산에 가면 빨간 망개나무 열매도 있고 작고 앙증맞은 쐐기나방고치도 있어 심심하지 않았다. 연두색 선명한 유리산누에나방의 고치는 볼 때마다 신기했는데 바람에 달랑거리는 소리에 산짐승인가 놀라기도 하였다. 어쩌다 올무에 걸린 산토끼를 줍는 횡재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나뭇단을 지고 오면 무겁기도 하고 몸에 맞지 않은 지게 목발이 좁은 산길 여기저기에 부딪혀 힘들면 산소 옆에 잠시 지게를 받혀두고 쉰다. 거기선 마을이 고스란히 내려다 보여서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인 초가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쏴아 저쪽 등성이를 타고 솔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소리는 알 수 없는 먼 곳에서부터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불어오는 것 같았다. 약간 무섭기도 하고 슬픈 느낌이 들어 동무 누구라도 옆에 있었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다. 노란버섯처럼 납작 엎드린 우리 집을 내려다보았다. 기다렸다는 듯 방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나시면 와락 반가운 마음에 엄마 소리쳐 불러도 내 작은 목소리는 솔바람소리에 묻혀 버렸다. 어머니 모습에 기운을 얻어 서둘러 지게를 졌다.
집에 돌아와 나뭇단을 부려놓고 온기가 남아있는 부뚜막에 앉아 밥을 먹는다. 땅에 묻었던 언 김치를 꺼내 썰 틈도 없이 쭉쭉 찢어 숟가락 위에 올려 먹는 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다. 눈을 부릅뜨고 그렇게 몇 숟갈 먹고 나면 세상 행복이 다 내게 온 듯하다.
가끔은 어머니가 어린 내가 나무하러 산에 가도 왜 말리지 않으셨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세월이 자연스레 그 답을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온몸으로 전쟁을 겪으신 분이다. 머리엔 온통 그 때 파편에 맞은 흉터로 덮여있고 전쟁은 끝났지만 아버지께 전쟁은 돌아가실 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으신 아버지가 생사를 넘나들던 격전지 산으로 나무하러 가신다는 건 힘든 일이셨을 것이다. 어머니도 그 때의 나처럼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셨고 어린 내가 나무하러 산에 가도 말리지 않으신 건 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시위 같은 것이었다.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내 물거리낟가리도 어엿한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다른 집 낟가리처럼 크고 까마득히 높지는 않았지만 여름 한 철 아쉬운 대로 땔감은 될 것 같았다. 어머니는 볼 때마다 고마워하셨고 나도 자랑스러웠다. 물거리를 하는 일은 내게 힘이 들기도 했지만 힘든 것 이상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길이 미끄러우면 칡을 걷어 꼬아 신발을 묶으면 훌륭한 아이젠이 되는 것도 알았고 산에 가서 길을 잃으면 개울을 따라 계속 내려오면 된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값진 일은 여자라도 못하는 일은 애초부터 없다는 것도 내 물거리낟가리가 보란 듯이 증명해 주었다. 물거리낟가리가 준 성취감, 그 자신감으로 나는 지금껏 살아왔다. 가끔 모든 것이 풍족하고 손끝만 갔다대면 불이 켜져 난방도 조리연료도 다 해결되는 지금이 왜 이렇게 공허한가 생각하면 부족하고 힘들 게 살았던 날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낫에 손가락을 베이고 넘어지고 지게와 함께 산에서 뒹굴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다. 땀 흘리고 난 뒤 허기져 먹던 한 그릇 밥에 대한 고마움과 산허리 바람 속에서 느꼈던 무념무상의 노동 그 순수한 시간 속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까. 온몸으로 자연을 껴안고 살았던 시간 이런 시간에만 나는 아무 부끄럼 없이 ‘삶’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EDITOR AE류정미
이정연 작가
이메일 : manjuyeon1@hanmail.net
2003년 4월 수필문학 등단.
2004년 중부매일신문 세정유감코너 짧은 수필 집필 (1월-4월까지)
2004년 여름호 수필 ‘망월사에서’ 에세이문학 등단
2004년 영남수필 회원 –2019년
2006년~2008년 에세이문학 올해의 수필 20선 추천
에세이문학 수필과 비평 에세이21 수필사랑 대구문협지 다수 기고
2011년 - 현재 대구 달서구 현대힐공인중개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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