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가리개
'글. 박종희'

갈색 바탕에 금색 실로 수를 놓고 끝부분을 매듭으로 처리한 것을 보니 욕심이 났다. 병풍처럼 길게 연결되지 않고 두 개씩 짝을 지어 놓아 어느 용도에든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어 실용성도 뛰어나 보였다. 더구나 손수 수를 놓은 아랫부분이 고급스러워 가리개로 쓰기엔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사이동이 있고 나니 회사 구내식당도 새롭게 단장했다. 대부분 본부에서 내려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번에 부임하는 지사장의 안목은 남달랐다. 부임인사를 마친 첫날부터 회사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열악한 환경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각 부서의 사무실은 물론이고 구내식당까지도 개혁의 바람이 일었다. 점심시간 때마다 팀별로 나가서 외식하던 것을 이젠 회사 구내식당을 이용할 것을 제안했다. 가리개로 식당의 칸을 분리해 팀별 외식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였다.
인터넷과 가구점을 다니면서 며칠을 고민했는데, 한 가구점에 눈에 띄는 가리개가 있었다. 포도주 빛깔의 식탁하고도 잘 어울리는 은은한 갈색의 고풍스러운 가리개였다. 구내식당이 지하라 어두침침한 분위기였는데, 가리개를 들여놓으니 식당이 다 환해진 느낌이다. 가리개 하나로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니, 보는 사람마다 식당이 깨끗해졌다고 한마디씩 했다.



마흔을 넘기니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 것 같다. 결혼 20주년이니, 30주년이니 하는 말을 들을 때면 어떻게 그렇게 오래도록 같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결혼 20년 차가 되었다. 20주년이라고 해도 늘 지나온 기념일처럼 꽃바구니나 하나 보내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날도 더우니 밖에 나가 메밀국수나 먹자고 했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조금 일찍 퇴근한 남편이 딸아이를 데리고 나와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하고 나서 “선물 뭐 사줄까, 구두 사줄까?”라고 묻는 남편 말에 “됐어, 신발 많아!”라고 하며 일어서는데, 남편은 다른 일이 생겨 먼저 가겠다고 한다. 나도 일이 있어 딸아이를 데리고 잠시 시내에 들렀다가 집 주차장에 도착하니, 늦어진다던 남편 차가 먼저 와 있었다. 약속 있다더니 일찍 왔나 싶어 현관문을 여니 남편은 깜짝 놀라며 “아니 왜 벌써 와? 볼일 보고 천천히 오라고 했더니.”라고 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은 나를 따돌리고 혼자 집에서 결혼 20주년 이벤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을 열면서 나를 따라 들어온 바람 때문에 온 집안에 풍선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큰 거실 가득 알록달록한 풍선으로 가득하고, 거실 중앙에는 하트 모양의 예쁜 풍선과 결혼 20주년을 축하한다는 플래카드도 붙어 있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얼떨떨해 있는데 텔레비전 화면에 낯익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남편이었다. 남편은 자작 시「고마워요, 미안해요, 이젠 웃어요」를 낭송하고 가수 김종환 님의 「100년의 약속」을 부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엉거주춤하게 서서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는데, 딸아이가 춤을 추며 「샤방샤방」이란 노래를 부른다. 감쪽같이 나만 모르게 남편과 딸아이 둘이서 계획한 20주년 기념 이벤트였던 것이다. 남편한테 무슨 말인가 해야겠는데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야속하게 자꾸 눈물만 흘렀다.
가끔 영화에서나 봤던 멋진 결혼기념일 선물을 받고 나니 입이 얼어붙어 바보가 되었다. 무슨 말이든 고맙다는 표현을 해야겠는데 엉뚱하게 내 입에선 “뭐야,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다 녹겠네!”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 말에 딸아이는 “아, 우리 엄마 정말 애교 없다. 이럴 때 다른 엄마들 같으면 감동해서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말할 텐데.”라고 한다. 딸아이 말을 들은 남편도 기분이 언짢은지 “그러게 말이다. 너희 엄마는 글밖에 없다. 생전 말로는 표현 못 하고 글로만 쓸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하며 언짢은 마음을 서둘러 덮었다.



그랬다. 20년을 사는 동안 무뚝뚝한 성격 탓에 남편한테 애정표현 한 번 못하고 살았다. 남편도 그런 내가 늘 불만스럽다고 했지만, 타고난 성격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결혼기념일 준비를 하면서 남편도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얽혔던 모양이다. 왜 아니겠는가, 말이 20년이지 강산을 두 번 돌아온 시간을 지내면서 얼마나 많은 편린들이 박혔을까.
부부는 서로의 눈빛만 봐도 속을 안다더니 내 눈물바람에 남편의 눈가도 덩달아 발그레해지는 것을 보니 며칠 전 사들인 가리개 생각이 났다. 20년을 살았지만, 남편이 없었더라면 내 존재감은 없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남남이 만나 아등바등 얽혀 사는 동안 딸애도 고등학생이 되었고, 반평생을 산 남편의 머리에는 듬성듬성 흰 눈이 내렸다. 다른 것은 다 잘하는데 애교가 없어 여자로서는 매력 없다고 불평하던 남편도 요즘은 ‘저 여자는 원래 저런 여자지’ 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고맙다. 그런 남편의 그늘을 한없이 따뜻하고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남편은 알기나 하려는지.
말없이 뚝뚝하고 잔정 없는 내 허물을 덮어주고 가려주는 남편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아무것도 아니었으리라. 작은 며느리가 최고라고 늘 부추겨 세우는 어머님이나 시누들, 시댁의 다른 어른들한테 인정을 받는 것도 모두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남편이 옆에서 버팀목처럼 자리하고 있음으로써 내가 빛이 났다는 것을 20년을 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가리개는 물건을 가리거나 칸을 막는 역할을 하지만 혼자서는 절대로 빛나지 않는다. 놓일 자리에 맞게 놓일 때에야 비로소 빛이 난다. 가리개 하나로 회사 구내식당이 고급 레스토랑처럼 우아하게 바뀌었듯이, 내 옆에 있는 보석 같은 가리개인 남편 때문에 나는 늘 빛이 난다. 그런 멋진 가리개가 쓰러지지 않도록 나도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야겠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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