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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행
저 작은 꽃송이들이 들녘을 물들이고, 저 작은 새잎이 모여 이 강산은 푸르러
'충북의 숲과 나무?괴산Ⅰ'

새봄은 ‘화르락’ 피어나는 ‘꽃사태’로 무르익고, 푸르른 성벽 산등성이 신록으로 완성된다. 해마다 봄이 되면 푸른 생명 새로 틔우는 자연의 이치 앞에서 새봄에도 푸른 잎 피우지 못하는 인간의 생이 작아진다. 괴산읍 제월대 절벽 위 소나무숲을 거닐었다. 칠성면에서는 미선나무 하얀 꽃을 오래 보았다. 절 마당 보리자나무 고목에서 피어난 초록잎 앞에서 미소가 번졌다. 연풍초등학교 느티나무 고목 앞 키 작은 꽃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도 모르게 그랬다. 봄은 숭고하다.
괴강과 들녘이 보이는 제월대 절벽 위 소나무숲
원래 이름은 달천이지만 괴산읍을 흐르는 동안은 괴강이라고 부른다. 그게 입에 붙는다. 굽이쳐 흐르는 괴강 물줄기를 굽어볼 수 있는 제월대 절벽 위 고산정으로 가는 길은 새봄에 더 매력적이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 소나무숲이다. 성긴 소나무숲 키 큰 소나무들은 제 멋대로 줄기를 비틀며 자란다. 비정형이 만드는 추상화가 숲에 가득하다. 눈길 두는 곳마다 새로운 그림이다.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만드는 그 그림 속을 걷는다.
충북 괴산군 괴산읍 제월대. 소나무 한 그루가 절벽 밖으로 자랐다.

소나무숲 뒤 멀리 고산정이 보인다. 조선시대 선조 임금 때 충청도 관찰사 유근이 제월대 절벽 위에 만송정과 고산정사를 짓고 광해군 임금 때 이곳에서 지냈다. 고산정사는 불타 소실됐고 만송정만 남았는데, 이름을 고산정이라 고쳐 불렀다. 정자 앞에 서서 괴강을 굽어본다. 푸른 들녘을 휘감고 흐른다. 수직 절벽 틈새에 뿌리 내린 소나무 한 그루가 무슨 깃발처럼 공중에서 푸르다. 여울 물비늘에 햇볕이 부서진다. 멀리 나룻배 하나 강기슭에 묶여 오가지 못하는데 태연하다.
일제강점기에 대하 장편 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도 이 풍경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강으로 내려가 강기슭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웠겠지. 이곳은 홍명희의 고향이다. 홍명희는 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옛 괴산 장터에서 수백 수천의 사람들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괴산읍 서부리 동진천 수진교 남단에 괴산의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만세운동유적비를 세웠다. 유적비에 홍명희의 이름도 새겨졌다. 유적비 옆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미선나무 꽃을 보고 각연사 보리자나무와 황금회화나무 앞에 서다
칠성의 봄은 미선나무가 피워낸 꽃에서 시작된다. 어린 미선나무 꽃잎 색은 겨울을 보내는 동안 온도차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하얀색 꽃이 많은데, 분홍색, 연한 노란색으로도 핀다.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식물로 자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예쁘고 향기로운 꽃만 봤을 때 미선나무의 한자 이름이 아름다울 미, 착할 선자인 줄 알았는데, 꼬리 미(尾), 부채 선(扇)자를 쓴다. 잘 보면 가지가 동물의 꼬리를 닮았고 열매가 부채를 닮았다.
左) 충북 괴산군 칠성면 각연사 비로전과 보리자나무 고목 右)충북 괴산군 칠성면 미선나무. 지난 해 달렸던 열매가 하나 남았다. 부채를 닮았다.

분재로 키우는 미선나무 꽃을 보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칠성면 율지리 미선나무 자생지로 가는 길에 만난 아저씨의 말이 마음을 울린다. 미선나무가 돌 많고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이유는 다른 나무들과 다투고 경쟁하여 이기고 생명을 퍼뜨리려는 성질이 없어 다른 나무들이 잘 살지 못하는 척박하고 황폐한 곳에 모여 산다는 것이다. 새봄에 피어난 미선나무 꽃이 남을 짓밟아서라도 자신만 잘 살면 된다는 악다구니 같은 세상에 던지는 한 편의 시가 아닐까 생각했다.
각연사로 가는 길, 깊은 숲 계곡이 먼저 마중한다. 신라시대 법흥왕 때 한 스님이 지금의 칠성면 어디쯤에 절을 짓고 있었는데 까마귀떼가 대패밥을 물고 날아가 어떤 연못에 떨어뜨렸고, 그것을 본 스님이 그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어 정진했다. 연못에서 깨달음을 얻어 절 이름을 각연사(覺淵寺)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각연사에서 만난 스님이 절 이야기를 해주신다. 비로전 옆 나무는 350년 넘은 보리자나무이고, 삼성각 앞 황금빛 나무는 황금회화나무란다. 1648년에 비로전을 고쳐지었다고 하니, 비로전 옆 보리자나무는 그 당시 비로전 중수를 기념하기 위해 심은 건 아닐까?
연풍의 세 그루 느티나무 고목 그리고 갈매실
칠성면을 뒤로하고 연풍면으로 향했다. 오수에서 연풍으로 가는 옛 신작로를 걸었다. 신작로에 줄지어 있던 곧추선 미루나무는 다 없어지고 그 자리를 은행나무가 대신하고 있었다. 산모퉁이 돌아 머리를 내미는 완행버스는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며 신작로 흙먼지를 몰고 다녔다. 사통팔달 도로가 뚫린 뒤로 옛 신작로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오가는 농로이자 운동기구를 설치한 공원이 됐다.
左) 충북 괴산군 연풍면 조선시대 이근립 처 호소사의 열녀각 옆에 있는 200년 넘은 느티나무
右)충북 괴산군 연풍면 연풍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느티나무 고목 앞에 피어난 키 작은 꽃들

연풍면소재지로 가는 길목에 갈매실 다리가 있다. 원풍천이라는 공식 이름이 있지만 사람들은 갈매실이라는 옛 이름을 불렀다. 갈매실은 아이들의 사철 놀이터였다. 갈매실 다리를 건너 푸르게 빛나는 커다란 나무 앞을 지난다. 연풍면소재지로 들어가는 초입에 홍살문이 보인다. 홍살문 한쪽에 호소사 열녀각과 2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병자호란 때 남편을 찾아 강화도 전장으로 떠난 호소사는 결국 시체가 된 남편을 보아야 했다. 남편의 시신을 연풍까지 옮긴 뒤 유상리 요동 뒷산에 묻고, 자신은 남편의 무덤 앞에서 자결했다. 이 소식을 들은 관에서 부부를 합장하고 열녀각을 세웠다. 느티나무 고목이 가지를 드리워 열녀각을 감싸고 있다.
열녀각에서 500m가 채 안 되는 거리에 100년도 넘은 연풍초등학교가 있다. 그곳에 300년 넘은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다. 한 그루는 교문 옆에 있고 다른 한 그루는 교사 앞에 있다. 느티나무 고목 굵은 줄기 앞에 키 작은 꽃들이 가득 피었다. 수백 년 세월이 옹이처럼 박힌 느티나무 고목 앞, 땅에서 한 뼘도 안 되게 자라 하얗고 노란 꽃을 피운 밥풀 같은 작은 꽃들, ‘꽃사태’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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