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이매 탈
'글. 박종희'

할미 마당이 펼쳐지는 공연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할미탈의 저고리가 살짝 들렸다. 웃음이 나왔다. 쪽박을 차고 신세타령을 하던 할미탈은 어이없게도 남자였다. 엉덩이를 요리조리 요염하게 흔들던 할미탈이 남자라니. 키가 작고 왜소해서 그런지 천생 여자 같았다. 모두 감쪽같이 속았지만, 저고리 아래로 보이는 근육질에 구경꾼들은 폭소를 자아냈다.
양반과 선비 마당에서는 춤판이 벌어졌다. 양반과 선비가 화해하고 부네와 초랭이까지 나와 춤을 추며 탈춤판이 고조되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바보가 등장했다. 이매였다.
선비의 하인이라는 이매 탈의 우스꽝스러운 행색에 웃음이 빵 터졌다. 모자라는 듯 순박한 얼굴에 저고리 끈을 풀어 헤쳐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났다. 이매 탈은 웃기만 하는 관객을 향해 두리번거렸다. 마치 구경꾼을 비웃는 것 같았다. 바보인 자기도 이렇게 탈놀이를 잘 이끌어 가는데 관객의 호응이 약하다고 빈정거렸다.
턱이 없어 말이 어눌한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구경꾼들만 나무랐다. 어눌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척하며 귀를 세우는 관객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땅을 쳤다. 이매 탈의 능청스러운 행동에 박수가 쏟아지며 구경꾼들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양반을 풍자하는 익살스러움에 호응하는 관객들의 추임새가 춤사위로 이어졌다.



하회탈춤은 이매 탈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여운이 남는다. 이매 탈이 관객들과 어울리며 신명 나는 놀이로 만들었으니 탈춤의 클라이맥스는 이매 탈이 아닌가 싶다. 하회 탈춤에서 이매 탈 캐릭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감동이 전해졌을까?
우리가 자랄 때는 동네마다 모자라는 사람이 한두 명씩 있었다. 친정 동네에는 개똥이로 불리던 오빠가 있었고 외가에는 바보 이모가 있었다. 웃음이 나면서도 안쓰러워 보이는 이매 탈 위에 셋째 이모의 얼굴이 겹쳐졌다. 일그러진 이매 탈을 닮아 아주 낯익은 얼굴이었다.
외가에는 딸만 여섯인데 친정어머니가 장녀였다. 한 배에서 나와도 모두 제각각이라더니 육 남매 중 셋째 이모의 몸이 성치 않았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심하게 앓은 이모는 입이 돌아가 얼굴이 일그러지고 다리도 많이 절룩거렸다.
아들 선호 사상이 남달랐던 외할머니는 셋째 이모를 아예 병신 취급했다. 아들을 낳지 못한 것만도 죄악인데 병신 자식까지 두었다고 자책하던 할머니한테 셋째 이모는 화풀이 대상이었다. 할머니가 이유 없이 때리고 야단칠 때는 이모가 불쌍해 어린 나도 같이 울었다.
화병을 다스리지 못해 이모만 눈에 띄면 구박하던 할머니도 베갯잇을 적실 때가 많았다. 당신 속으로 낳은 자식인데 왜 안 그렇겠는가. 할머니는 이모가 당신보다 하루라도 먼저 눈을 감아야 한다며 자나 깨나 걱정하셨다.
자매들한테도 업신여김당하던 이모는 언니와 동생들이 결혼해 집을 떠난 뒤에도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다녀가는 다른 이모들은 올 때마다 셋째 이모의 속을 뒤집었다. 우르르 몰려와 집 안 청소를 하는 날은 밤새 아픈 할머니 곁을 지키던 이모의 공은 간데없고 날벼락을 맞는 날이었다.
이모는 어쩌다 와서 생색내는 자매들을 비웃듯이 이매 탈처럼 입바른 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룻밤도 안 자고 가면서 할머니를 위하는 척하는 자매들의 모습이 가식으로 비쳤기 때문이리라.
비록 천덕꾸러기로 태어났지만, 바보 이모 덕분에 할머니의 삶은 그리 외롭지 않았다. 아픈 손가락 같은 딸이 먼저 죽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하시던 외할머니는 당신이 바보 딸의 시중을 받을 줄 꿈엔들 아셨을까.



사람이든 사물이듯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은 다 필연적인 존재 이유가 있다. 턱이 없어 미완성된 이매 탈이 순박하고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으로서 완성을 이루었듯 병신이라고 구박받던 이모도 육 남매 중 가장 효녀였다. 이매 탈의 어수룩함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며 탈춤의 완성도를 높인 것처럼 애간장을 녹이긴 했지만, 할머니 옆에는 늘 바보 이모가 있었다.
하회마을에서 공연을 보는 동안 신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쪽박을 찬 할미탈이나 천한 사람을 상징하는 백정 탈이 그랬고 서로 잘났다고 우기는 양반과 선비의 허세에서도 신분의 차이가 느껴졌다.
허 도령의 슬픈 전설로 만들어진 이매 탈이나 바보 취급당하던 이모를 생각하면 예나 지금이나 신분을 구분 짓는 잣대는 외모가 아닐는지. 어쩌면 신분은 어느 한 시대를 소환하는 추억의 교집합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매 탈이 우리에게 큰 웃음을 준 것처럼 이모는 편찮으신 할머니한테 아스피린 같은 사람이었다. 마흔 살이 된 딸이 하는 짓마다 어린아이 같으니 할머니는 자주 웃으셨다. 만약 이모마저 없었다면 할머니의 삶은 어땠을까. 아마 다분히 고독하고 적적했을 것이다.
꽹과리 소리가 사라지니 공연장 주위가 휑하다. 어깨춤을 추며 환호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모든 잔치의 뒤안길이 초라하듯이 신명 나게 춤사위가 벌어졌던 공연장에도 허허로움이 밀려들었다.
집안에 탈을 걸어두면 액을 막을 수 있다는 말에 눈가에 웃음이 가득한 하회탈을 사 들고 나오는데 하회마을 솔숲 사이로 귤빛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쇠잔해지는 해를 감싸 안고 노곤해진 하회마을이 저물고 있었다.

EDITOR AE류정미
박종희 작가
이메일 : essay0228@hanmail.net
2000년 『월간문학세계』수필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전국시흥문학상, 매월당 문학상, 김포문학상
2015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제1회 119 문화상 소설 최우수상 수상 외 다수
2008년 ~ 2019년까지 중부매일, 충북일보, 충청매일에 수필 연재
저서: 수필집 『가리개』『출가』
한국작가회의, 한국산문작가협회, 충북작가회의 회원
청주시, 세종시 수필창작 강사. 충북작가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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