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참기름
'글. 최명임'

어머니가 지팡이를 내려놓고 참깨 씨를 넣는다. 오월 볕에 나를 위해 깨를 심는다고 한다. “나 죽기 전에 깨 농사 넉넉히 해놔야 애미가 편하지.”한다. 아흔여덟 어머니 굽은 등에 우리를 업고 있다.
어머니는 두 명절과 많은 기제사에 돈 든다고 한 푼이라도 아끼라고 내 짐을 덜어 주려고 애를 쓴다.
참깨를 채마밭 반절은 넘게 심어야 한다고 고집하시더니 잘 여문 참깨가 꼬투리를 열고 튀어나온다. 어머니 노고에 화답하듯 참깨 알이 풍년풀덩이 같다.
추석 밑에 대목장이 서면 시골 어머니들이 깨 자루를 이고 줄줄이 방앗간으로 들어선다. 방앗간이 온통 참기름 냄새 범벅이다. 자식들 가슴에 배어있는 어머니 냄새 같다. 병뚜껑을 열고 냄새를 훅 들이켰다. 어머니 코앞에도 갖다 댔더니 가슴 부듯하신가 보다.
참기름은 기름 중에 으뜸이다. 영양가는 두말할 것 없지만, 세자몰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어 자신도 지키고 다른 물질에 들어가 부패를 막아준다. 쉽게 상하는 들기름에 참기름을 섞어두면 다 먹도록 썩지 않는다고 한다. 들기름은 심지가 곧지 못한 것이 한 가지 흠이라 공기와 만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저를 놓아버리는데 곁에 있던 참기름이 방책이었다니 참 놀랍다.
참기름을 진유眞油라고 한다. 진유의 묘는 항상 변함없음에 있다. 나아가 다른 것의 일상에 들어가 생기를 불어넣고 향상을 도모한다. 나물이나 미역국은 아무리 간을 잘 맞추어도 맛이 허전한데 참기름을 서너 방울이면 한층 맛이 깊어진다.



참깨밭에 굽은 등을 보였던 어머니가 진유였다.
징용의 후유증은 건강한 가장의 심신을 무너뜨렸다. 아버님은 마흔을 넘어서며 반귀미 고개 넘어 주막에서 살다시피 하셨다. 어머니는 일 구덩이에 파묻혀 살면서도 때때로 아버님의 노름빚과 술값을 갚기도 했다. 아버님은 말년에 아예 곡기를 끊고 막걸리로 명을 유지했는데 어머니가 안 보이면 어린아이처럼 불안해했다.
내가 시집왔을 때 어머니 연세 쉰 중반이었다. 신혼 초 주사로 한바탕 난리를 치를 때마다 며느리 보기 부끄럽다고 했다. 불길이 벌겋게 되 나오는 아궁이 앞에 앉아 부지깽이 투둑거리며 ‘나 이러고 살았다!’하고 넋두리를 시작했을 때 들어만 드려도 위로인 줄 몰랐다. 어린 마음에 친정아버지도 그랬다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어머니와 나는 조금씩 속을 내보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내가 옆에 앉으면 ‘왜놈들이,’ 하고 맺힌 것을 풀기 시작하셨다. 나는 일말의 의무감을 느꼈는데 두 분의 각다분한 세월을 백번이라도 처음인 양 들어드려야 할 것 같았다.
아버님도 밤을 뒤척인 날이 얼마나 많았으랴, 세상에 없는 호인이신데 술만 들어가면 딴사람이 되었다. 시대적 배경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각인 되어 버린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비행기만 날면 숨을 곳을 찾아 아비규환이었다고, 아내가 날 부르더라고 시작하던 이야기도 아버님이 떠나며 끝을 맺었다.



참기름은 참깨라는 아집을 버리고 곡진한 시간을 들인 끝에 거듭난 진유이다. 진유가 아무리 남다르고 곧은 심지를 가졌더라도 세자몰이라는 버팀목은 필요했다.
장남은 어머니의 전부였다. 그 아들이 사라졌을 때 어머니가 무너졌다. 아들을 찾다 헛걸음을 수십 번, 두문불출하고 누웠다. 참깨밭에는 잡초가 드세게 일어나고 아버님이 아궁이에 지피는 불이 벌겋게 역류했다. 아들의 반항 속에 아버지가 있을까 봐, 어미의 눈물이 있을까 봐 그리도 다독였는데.
열여섯 아들은 서울만 가면 출세하는 줄 알았다. 오갈 데가 없자 시장에서 자전거배달로 일을 시작했다. 시장에 앉은 엄마들의 부르튼 손등에 어머니가 보였다. 해가 어스름히 시장바닥에 깔리고 등불이 하나둘 일어나면 옆에 가 쪼그리고 앉았다. 고향 바람이 그립고 그 바람에 삐걱거리던 나무대문짝 소리도 생각나고 어머니 냄새가 못 견디게 그리웠다.
아들을 데리고 오는 날 어머니가 탄 버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하늘은 구름없이 온통 파랗고 귓속에서 거칠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도 그쳤다.
어머니가 무명 머릿수건을 고쳐 쓰고 일어났다. 밭고랑이 훤해지고 아궁이에 지피는 불이 발갛게 타올랐다. 항상 허기진다는 놈 밥 찾을라, 아랫목에 밥사발도 묻어두었다. 그 밥을 오롯이 당신을 위해 지어본 적이 있었을까.
나는 이순을 넘어 ‘어머니’를 제대로 보았다. 어미로 태어날 때 부여받은 모성애는 하늘 대신이라고 말이야 쉬웠지. 무수한 가슴에 바닥짐으로 놓였다가 아픈 날, 그리운 날 꺼내 보는 어머니가 아니었나. 어미는 애가 타서 꿈길로도 찾아오지 않던가.
참깨 자루가 푹 꺾였다. 우리는 어머니 가슴을 이렇게 파먹고 살았다. 저승꽃은 짙어지고 지팡이 짚은 손이 자꾸 떨리는데 어머니가 참깨 종자를 챙긴다. 내년 봄 아흔아홉 엄니에게 오월이 볕을 내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온다면 구름으로 태어나고 싶다. 생겼다가 소멸할 때 비로 환생하는 구름은 저를 위해 한 번은 울어볼 테니.
진유는 정녕 울어는 보았는지.

EDITOR AE류정미
최명임 작가
이메일 : cmi3057@naver.com
2014년 문학저널 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 회원, 내육문학회원 / 충청타임즈 ‘생의 한가운데’ 필진(전)
청주교차로 신문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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