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간 맞추기
'글. 박종희'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딸애가 수저를 든다. 몸살 기운이 있어 오징어 뭇국이 생각났다는 남편도 국그릇을 끌어당긴다. 두 사람의 표정을 지켜보고 있는 순간의 기분이 참, 묘하다. 국물 한 숟가락에 사활을 건 듯 긴장돼 마치 면접관 앞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국 한 숟가락을 떠 가볍게 목 넘기를 하던 딸애가 아무 말이 없다. 다른 때 같으면 맛있다고 칭찬 세례를 퍼부었을 딸애가 바로 국에서 시선을 거두어 계란말이로 옮긴다. 무심한 딸애의 반응에 나도 한 숟가락 떠먹어보다가 나도 모르게 수저를 내려 놓았다. 내 표정을 눈치챘는지 눈치 빠른 남편은 음식이 어느정도 간간해야 맛있다며 훈수를 한다.
왜, 이러지, 국이 싱거워 늘 식탁에 소금을 따로 준비해 놓는데. 나이 들면 간이 세진다고 하더니 나도 나이 먹나. 그새 국물이 졸았나. 아니, 이번에 새로 산 죽염이 더 짠 것은 아닌지. 수저질을 하면서도 신경은 온통 짠 국에 가 있다.





30년이 넘도록 같이 산 사람들이 먹을 밥상을 차리면서도 도무지 모르겠다. 맑았다가도 금방 흐려지는 날씨처럼 수시로 변하는 내 혀의 기분을. 어떤 날은 입에 착 붙을 만큼 기막히게 간이 잘 맞는데 오늘 같은 날은 못 볼 것이 놓여있는 것처럼 국그릇을 밀어놓아야 하니 말이다.
인생 반세기를 훌쩍 넘기고 나니 내 혀도 예전 같지가 않다. 감각 기능이 떨어지며 무디어지고 섬세하게 맛을 감별하던 미각도 상실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몸 구석구석이 달라졌는데 혀라고 예외일까. 하나, 무디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과 친해지고 포용력이 생긴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옆에 있는 사람이 불편해할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해야 직성이 풀렸는데 요즘은 웬만한 일은 눈을 감게 된다. 입맛도 예외는 아니다. 몸과 마음이 느긋해지면서 덩달아 혀도 게을러졌는지 맛을 느끼는데 둔감해진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음식이 짜거나 매우면 수저를 내려놓았는데 요즘은 입에 맞으면 맞는 대로 안 맞아도 대충 한 끼를 때운다.
혀가 단단해지면서 시어머니와 함께했던 시간이 스치듯 떠올랐다. 신혼 때 시댁에 가면 음식이 짜서 입에 대지 못했다. 매운맛은 또 어땠던가. 음식마다 소태처럼 짜고 입이 얼얼하도록 매워 밥상머리마다 어머니 눈치가 보였다.
결혼한 지 8년 만에 아버님이 먼저 떠나시고 나서 어머님이 우리 집으로 오셨다. 한쪽 날개가 떨어져 나간 듯 안 그래도 가슴이 허한 어머니는 식탁에 앉아 애꿎은 수저만 달그락거렸다. 내 딴에는 당신 입맛에 맞도록 이것저것 신경 써서 밥상을 차렸는데 어머니 입에는 간이 안 맞는 모양이었다.
간이 안돼 아무 맛도 없다고 타박하실 때는 야속했는데 이제야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릴 것 같다. 워낙 칼칼한 음식을 좋아하시기도 했지만, 남편과 큰아들을 차례로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가슴이 싱겁고 밍밍한 음식을 받아들일 리 만무였다. 울렁거림으로 밤새 뒤척였던 위장을 가라앉혀야 하는 어머니한테 우리 집 음식은 오히려 가슴을 흔들 구실 거리를 만들기에 딱 좋았으리라.
그때는 몰랐다. 음식마다 간이 안 맞는다고 역정 내시는 어머니가 그저 며느리 시집살이를 시키려고 고약하게 구시는 줄만 알았지. 한 번도 어머니의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절인 배추같이 풀 죽어있던 어머님도 처음부터 짜게 드시지는 않았을 성싶다. 유독 까탈스러운 남편과 자식들 비위 맞추느라 소금을 더 넣으며 숨을 죽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태같이 짠맛에 길들여졌으리라.
살아온 환경을 뛰어넘지 못한다더니 친정어머니 손 맛에 길들여진 나는 짜고 매운 음식은 손이 가지 않았다. 때로는 입에 맞지 않아도 수저를 보탤 줄 알아야 하는데 음식에도 낯가림이 심해 늘 익숙한 것만 고집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밥상은 싱겁고 자극 없는 음식으로 정형화되어 갔다. 어찌 된 일인지 30여 년을 어머니 입맛에 길들여있던 남편도 내가 차린 밥상에 반기를 들지 않은 것도 내 혀가 기세 등등해지는 데 한몫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랬던 내가 나이 드니 별수 없어졌다. 나도 모르게 자꾸 간이 세진다. 전에 안 하던 간도 연신 보게 되고 바깥 음식에 홀린 식구들 식성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혀가 단단해지는 것 같다. 나이 들면서 더 담백하고 심심해져야 하는데 반대로 가고 있으니 걱정이 앞선다. 멀겋게 끓인 국에 소금을 한 숟가락씩 넣어 드시던 어머니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피식 웃음이 난다.
간을 맞춘 다는 것은 무엇일까. 모두의 입에 맞게 간을 맞춘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간이 맞다는 것은 그만큼 두루 소통하고 있다는 말이 아닐지 싶다. 음식을 만들면서 사람의 성격과 입맛까지 배려하는 것. 그 사람이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상대의 마음을 읽고 그 사람에게 맞게 음식을 만든다면 정말 화기애애한 밥상이 될 것 같다. 바로 음식과 사람을 한 통속으로 만드는 화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리라.
더 나이 먹기 전에 세상과도 간을 맞추는 연습을 해야겠다. 어느 누구와도 통할 수 있도록 성찰하고 나를 돌아보아야겠다.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않으리라. 조금 짜면 물을 더 붓고, 싱거우면 소금을 더 넣으면 되듯이 이제는 스스로 정한 틀을 깨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야겠다.
너무 싱거워 맛을 모르겠다는 남편이나 조금 짜다고 숟가락을 놓는 딸애한테도 서운해하지 않고 간 맞추기에 실패해도 의기소침하지 않아야겠다. 조심스럽게 뒤집다 보면 바삭하고 구수하게 익어가는 부침개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싶다.

EDITOR AE류정미
박종희 작가
이메일 : essay0228@hanmail.net
2000년 『월간문학세계』수필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전국시흥문학상, 매월당 문학상, 김포문학상
2015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제1회 119 문화상 소설 최우수상 수상 외 다수
2008년 ~ 2019년까지 중부매일, 충북일보, 충청매일에 수필 연재
저서: 수필집 『가리개』『출가』
한국작가회의, 한국산문작가협회, 충북작가회의 회원
청주시, 세종시 수필창작 강사. 충북작가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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