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중암암 장군수
'글. 이정연'

밖은 아직 어둡고 고요한데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예불소리에 잠을 깼다. 푹신한 침대의 안락함도 좋지만 등으로 전해져 오는 온돌의 온기에 이불 속에서 몸을 빼기 싫어진다. 아이들은 아직 자고 있겠지. 아이아빤 일어나 아침 준비는 하고 있는 것일까. 단조로움에 지쳐 집을 나섰지만 떠나오면 자잘한 일상들이 더 그립다. 이 그리움이 생기를 잃은 삶에 탄력임을 안다면 어찌 잠시 떠나기를 망설일 것인가. 잃었던 삶의 윤기를 되찾는 데는 하루의 시간도 부족하지 않았다.
밝기 전에 올라가 일출이 좋은 장소를 찾아야 하는데 랜턴을 미처 가져오지 못했다. 산이 무섭지는 않은데 너무 가팔라 사물의 윤곽이 조금 드러나기를 기다린다. 바람도 자고 있는 고요한 산정, 오래된 3층 석탑이 맨 먼저 인사를 한다. 비바람에 모서리가 닳고 이끼가 낀 돌탑의 역사가 궁금하지만 우선 좋은 일출장소를 찾는 게 급선무여서 서둘러 능선을 넘었다.
숲은 아직 곤히 잠들어 있고 내 발자국 소리만 새들의 이른 잠을 깨운다. 일출의 각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른쪽으로 치우쳐 진행된다. 어제 봐 둔 건들바위에서 찍으려던 마음을 고쳐 오른쪽으로 내려가니 탁 트인 시야가 해맞이 장소로는 그만이다. 작은 실패가 때로는 인생에서 얼마나 더 훌륭한 성취를 가져오게 되는지 안다면, 그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지혜로운 경험이 되는 것이다. 혼곤한 새벽잠에 취한 듯 마을엔 솜이불 같은 짙은 안개가 덮여 있고 동녘은 먹구름이 가득하다. 하늘 전체가 구름이면 사진을 포기하겠는데 마치 검은 종이로 떠오르는 해만 가려 놓은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일출이 진행되는 만큼 따라서 구름층도 조금씩 올라와 기다리던 장엄한 해와는 마치 숨바꼭질하는 것 같다. 좋은 일출 사진을 얻기는 힘들 것 같아 광각으로 두 어 장 찍고 겹겹 파도같이 아득한 능선을 바라보았다. 구름 속에서 햇살이 나오자 잠들어 있던 산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봉우리에서 뻗어 내린 부드러운 등성이의 아침 햇살과 어둠에 웅크린 골짜기의 깊이가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처럼 산의 표정을 풍부하게 바꿔 놓았다.





어느 날 큰 바위에서 천둥소리가 나면서 암자를 덮칠 것처럼 요동을 쳐 놀란 스님이 부처님께 열심히 기도하자 움직임을 멈추게 되었다는 건들바위, 햇살을 퍼다 멍석에 펴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아침의 삼인암 사진을 찍었지만 이런 게 잘 나타나 줄까. 한 치 여유도 없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도 늠름한 기상을 잃지 않은 멋진 만년송이 좋아 또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나 홀로 산정에서 이 모든 걸 누린다.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만년송 푸른 솔잎 위로 하얀 아침 달이 정성껏 빚은 송편처럼 예쁘다.
청운의 꿈을 키우던 화랑 김유신이 이곳에서 심신을 수련했다는 말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부드러운 능선이 쭉쭉 뻗어 내리고 곳곳에 웅장한 암석 군락이 늠름하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큰 사람으로의 뜻을 품은 장소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큰 바위들을 옮겨 다니자면 좁은 바위틈을 지나다니든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건너뛰어야 한다. 대업을 이룬 화랑들이 이 좁은 바위틈 사이로 몸을 세우고 지나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람처럼 몸을 날려 바위와 바위를 날며 무예를 갈고 닦아 삼국통일의 위업을 향한 호연지기를 키웠을 것이다.
목이 마르면 아래 장군수로 내려가 물을 마시며 굳건하고 원대한 꿈을 다졌으리라. 장군수는 정상 부근의 수직 암벽 아래 돌 틈에서 솟는 물이다. 가을 가뭄이 계속 되었는데도 적당한 양의 물이 나와 정방형 샘에 가득 차고 넘친다. 이른 낙엽 몇 장이 깔린 돌샘에서 두 끼를 거르고 마신 한 조롱박의 물은 달콤하고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온 몸의 세포를 깨우듯 청정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내린다. 마시면 득남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지난 날 마신 장군수 덕에 나도 아들만 둘을 두게 된 건 아닐까. 고마운 마음이 들어 낙엽으로 지저분해진 샘을 청소한다. 바스락하는 소리가 들려 올려다보니 푸른 솔방울을 물고 가던 청설모가 남의 샘에 와서 뭐하냐는 듯이 빤히 내려다본다. 어쩌냐 청설모! 너도 마시고 김유신도 마시고 산까치도 마시고 이름 모를 어느 등산객도 감사하며 마셨을 돌샘의 물, 지금 이 순간의 주인은 나인 것을.





샘과 주변의 나뭇잎까지 깨끗이 그러내고 물이 차기를 기다리다가 신기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샘은 누가 정으로 정교하게 쪼아서 파 놓은 것 같은데 왼쪽은 사방 20cm 정도의 정방형이고 오른쪽은 그 절반 넓이 정도인데 왼쪽에 있는 정방형 샘에는 놀랍게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위에서 물이 조금 흘러내리긴 하지만 극히 적은 수량일 뿐이고 물은 오른쪽 작은 샘에서 나와 왼쪽 큰 샘으로 옮겨가는데 왼쪽의 샘이 다 채워지고 나서야 오른쪽 샘에서 흘러넘치도록 되어 있었다. 작은 샘만으로는 물이 충분치 않으니까 누가 돌을 쪼아 샘을 만든 것 같은데 두 샘간 물꼬의 높이를 계산해서 판 것이 틀림없었다. 두 샘에는 늘 새물이 가득차고 그 다음에 비로소 흘러넘치게 만든 지혜에 소름이 돋는다. 산에서 마실 작은 샘에 조차 이렇듯 선인들의 깊은 지혜가 스며있다. 샘 곁에는 쌀알 같은 꽃잎의 예쁜 바위떡풀이 돌 틈에서 수줍게 웃고 그 아래로는 소반처럼 생긴 돌이 하나 있다. 소반 같은 돌을 중심으로 대 여섯 명이 둘러앉아 간단히 음식을 나누거나 담소를 할 수 있는 의자 같은 작은 바위 여러 개가 있다. 수련하던 화랑들이 둘러앉아 잠시 한 바가지의 물로 마음을 새롭게 하던 곳은 아닐까. 삼국통일의 원대한 꿈을 처음으로 조심스럽게 펼쳐보던 곳이 바로 이곳은 아니었을까. 물 한 조롱박의 청신한 기운에 상상이 춤을 춘다.
지친 일상에서 빠져나와 잠시 산사에 머물 뿐이었는데 나는 구사일생으로 아군의 진지에 도착한 병사처럼 힘이 났다.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볍고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사무치게 그리웠다. 하루도 빌 날이 없던 직장의 내 일 바구니, 이제는 어떤 일이 나의 능력을 시험할까 궁금해서 귀가 일정마저 앞당기고 싶어졌다.

EDITOR AE류정미
이정연 작가
이메일 : manjuyeon1@hanmail.net
2003년 4월 수필문학 등단.
2004년 중부매일신문 세정유감코너 짧은 수필 집필 (1월-4월까지)
2004년 여름호 수필 ‘망월사에서’ 에세이문학 등단
2004년 영남수필 회원 –2019년
2006년~2008년 에세이문학 올해의 수필 20선 추천
에세이문학 수필과 비평 에세이21 수필사랑 대구문협지 다수 기고
2011년 - 현재 대구 달서구 현대힐공인중개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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