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그 녀석
'글. 최명임'

다섯 살짜리의 흐느낌은 들을 것이 못 된다. 어른의 가슴을 가시로 찌르는 것 같다. 해가 어스름 깔리자 녀석이 창가에 붙어 서서 눈가가 벌게진다. 세상없어도 어미 품에서 잠드는 녀석인데 어미 없는 밤이 서러운 게다. 울음을 삼키느라 얼굴까지 시뻘게지더니 기어이 흐느낀다.
딸애가 조기진통으로 입원을 하게 되어 한 달을 넘게 손자 토리 녀석과 함께 지냈다. 어미는 동생을 데려오겠노라고 간신히 달래놓고 병원으로 갔다. 엄마 뱃속에 예쁜 동생이 살고 있다는 말에 폴짝폴짝 뛰며 흥분했던 녀석, 동생과 엄마를 기다리며 잘 참아낸다 싶었는데. 아기가 저의 성으로 들어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는 녀석이 안쓰럽다.
너무 이른둥이를 데리고 온 날부터 식구들이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밤낮없이 온 신경이 아기에게 쏠려 있는 사이 녀석이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나는 누가 사랑해줘?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없떠.’ 하더니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한동안 녀석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엄마로부터 한 걸음 떠나 온 녀석이 아기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자장가를 불러준다. ‘해님달님’ 이야기도 소곤소곤 들려준다. 밤이 되면 엄마를 대신해줄 상어 인형을 끌어안고 잠이 든다. 그런 날을 얼마나 겪어내야 어른이 되는지 녀석은 모르겠지만, 훌륭하게 한 걸음 뗀 것이 기특하다.
녀석은 좋아하는 상어를 탕어라고 한다. 나도 따라하면 “아니, 탕어, 타앙어!”라고 목청을 높인다. 저는 ‘바담 풍’ 해도 할머니는 ‘바람 풍’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야 구강 구조가 완성되는 시기이면 자연스레 바로 잡힐 터이다. 어른들은 구강 구조가 완성 되었는데도 머리와 가슴이 타협하지 못해 나오는 탕어를 끝끝내 탕어라고 믿는 비속한 습성이 있다. 녀석이 그런 나를 돌아보게 한다.
말도 어눌한 녀석이 며칠째 날고 싶다고 안달이다. 할미를 졸졸 따라다니며 보챈다. 날아다니는 새를 잡아 한 번 보잔다.
“사람은 날 수가 없어. 대신 비행기를 타고 날잖아. 새는 절대 비행기를 만들 수 없을 걸. 새가 비행기 만드는 것 봤어”
“못 봤떠. 아니, 비행기가 아니고 내가 날고 싶다고. 왜 사람은 날개가 없는 거야?”
날개가 없는 줄 빤히 아는 녀석의 맹랑한 욕구를 어찌 채워줄까. 날개가 있으면 무얼 할 거냐고 물었더니 하늘 높이 날고 싶단다. 행간이 좁은 저 욕구가 점점 넓어져 하늘을 범하려던 이카로스를 닮으면 어떡하나.
녀석이 콩콩 뛰어가더니 A4 용지 두 장을 가지고 나온다. 소파에 올라가 종이를 양어깨에 대고 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녀석의 신념이 두둑하게 깔아놓은 매트 위로 고꾸라졌다. 어미는 날 수 없는 숙명을 재확인이라도 시키려나. 보자기 두 개를 양어깨에 묶어 주었다. 이번에는 식탁 위에 올라서서 보자기 날개 끝을 양손으로 잡고 눈빛이 심각해진다. 어미가 달아준 날개이니 어련할까, 그리 믿는 눈치다. 추락하는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보자기가 파닥이기에 날았다고 했더니 강하게 부정한다. 날개의 개념을 분명하게 아는 녀석이다.





“맞아, 어른이 되면 마술을 부리면 돼. 날개야, 나와라. 얍! 미세먼지야, 없어져라. 얍! 하면 될 걸.” 참으로 엉뚱한 이 녀석.
비행기도 날고픈 소망에서 비롯된 산물이니 녀석은 한술 더 떠 날개가 나오는 변종의 유전자를 개발이라도 하려나.
사람들이 걷고 있다. 날개 대신 두 팔을 파닥이며 걷는다. 더러는 날 수가 없어서 걷고 더러는 날기 위해 오늘 걷는다. 햇빛이 휘청거리는 날 날고픈 욕구가 발길에 차이고 돈에 차이고 습(習)에 걸려 넘어진다. 보자기 날개로, 종이 날개로 날 수가 있다고 믿는 어긋난 신념과 충돌하는 세상이 소리로 부대낀다. 소리는 가슴과 머리가 타협하지 못한 오류의 산물이려니, 나는 때때로 저 무모한 신념에 혀를 내두르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욕망으로 얽은 날개는 참으로 삿되다. 다이달로스는 아들을 위해 뭇 새들의 깃털을 모아 거대한 날개를 만들었다지. 애증에 얽힌 미궁에서 벗어날 목적이었다. 날개는 탈출의 방편이 될지언정 욕망의 산물이어서는 안 된다는 아비의 간절함도 있었으리라. 너무 높이 오르면 태양열에 녹아버리고 낮게 날면 바닷물에 젖어버릴 테니 하늘과 땅 어름에서 날기를 당부했다. 비상하는 쾌감을 주체 못 한 아들은 하늘을 범하려다 아득한 바다로 추락하고 말았다. 진리는 살아있으나 진부해져버린 신화다. 여전히 우리는 크레타 섬에 살고.
토리에게 생각의 날개가 돋았다. 싹수로 보아 건강한 욕구를 잘 키워 나갈 거다. 종이 날개와 보자기 날개의 허무는 각인 되었을 터, 당장은 깊은 뜻을 모를지라도 살면서 오늘 일을 기억해 낼 거다. 날개는 추락할 때 더 단단해진다는 사실과 그럴 때 비로소 하늘이 푸르게 다가온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행여, 빛나지 않더라도 괜찮다. 빛나는 무엇이 어느 순간 변절하여 욕망이 되면 허무를 불러올지도 모를 일. 모래 한 알도 우주를 이루는 일원임에야.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빛이 난다. 나는 녀석이 선의의 날개를 달고 무한 날기를 소망한다.

EDITOR AE류정미
최명임 작가
이메일 : cmi3057@naver.com
2014년 문학저널 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 회원, 내육문학회원 / 충청타임즈 ‘생의 한가운데’ 필진(전)
청주교차로 신문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필진(현)
우리 숲 이야기 공모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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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시니어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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