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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행
나무를 닮아가는 사람들
'충북의 숲과 나무?옥천Ⅱ'

나무가 있어 마음이 평온해진다. 단오 그네 타던 아이들, 마을의 안녕을 빌던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듯 오늘도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을 쉬게 하는 옥천군 청산면 효목리 목골 400년 넘은 느티나무, 그리고 그 나무를 닮아가는 사람들.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사람들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운 군서면 은행리 왕버들나무의 고마움을 닮은 사람들, 역사의 격동기 동학의 역사를 고스란히 전하는 500년 느티나무의 이야기, 그리고 그곳을 가꾸는 사람들. 오래된 나무를 닮아가는 사람들.
느티나무 그늘에서 만난 사람들
굽은 길을 펴며 마을로 들어서는 찰나 마음이 평온해진 건 멀리 보이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때문이었다. 하늘, 햇볕, 산, 들녘, 비닐하우스에 곡식을 부리는 농사꾼 부부도 그 풍경의 주인공이었지만, 그 서사의 절정은 커다란 나무 한 그루였다.
들녘 두렁에 올라 그 나무를 잘 보았다. 모나거나 이지러진 곳 없이 둥그렇게 자란 나무가 가지를 퍼뜨려 그늘을 넓게 드리웠다. 나무 그늘 아래 앉은 세 사람의 그림자도 나무를 닮아 유순해 보였다. 나무와 그들 사이의 사연을 짐작하며 나무까지 걸었다.

충북 옥천군 청산면 효목리 목골 400년 넘은 느티나무. 옛날에는 사진 위 오른쪽으로 뻗은 가지에 그네를 매달아 그네를 뛰고 놀았다.



나무는 400년 넘게 청산면 효목리 목골을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였고, 나무 그늘에 앉은 세 사람은 백발이 편안한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였다. 그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무의 안부를 묻는 질문에 아저씨는 나무 밑동을 가리키며 원래 세 줄기였는데, 줄기 하나가 고사해서 꺾였다신다. 그래도 남은 두 줄기가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말씀 뒤에 잘 뻗은 나뭇가지를 보며 당신 어릴 때 추억을 말씀하셨다. 단오 날이면 나뭇가지에 그네를 매고 그네를 뛰며 놀았다. 전에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제사도 지냈었다.
이야기는 마을 옛이야기로 이어졌다. 마을 어디쯤에 물구멍이 세 개인, ‘삼탕물 약수’가 있었는데, 물 좋기로 소문이 나서 나병환자가 그 물을 찾아와 먹었다는 이야기에 이어 임금님도 이 마을을 지나갔다는 옛 어르신들 말씀까지 풀어놓는다. 목골마을은 예로부터 경북 상주와 충북 영동을 넘나드는 길목이었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마을 이야기는 느티나무 고목의 유래로 이어졌다. 조선시대에 명나라 장수가 마을을 에워싼 산줄기의 주맥을 끊어 수일간 핏물 같은 붉은 물줄기가 솟았다는 전설과 함께 산줄기의 주맥에 쇠말뚝을 박아 산천의 기운을 잠재우려 했는데, 산천의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 심은 나무가 지금도 생기 넘치게 마을을 지키고 있는 이 나무라는 것이다.
마을 이야기 나무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세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신다는 말에 시계를 보니 정오가 넘었다. 커피 한잔 하고 가라시는 백발 할머니 주름진 웃음이 느티나무 고목이 드리운 그늘 같았다.

충북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5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 저수지 아래 문바위 동학기념공원


동학의 숲에 살아남은 나무 한 그루
효목리에서 서쪽으로 산줄기를 하나 넘으면 한곡리다. 한곡리 문암저수지 남쪽 산기슭에 500년 넘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옛날에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절 부근 바위 모양이 예사롭지 않아 한 스님이 그곳에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바로 이 느티나무 고목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이 나무 주변에 동학농민군의 지휘소와 훈련장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옛 이야기를 증명하듯 느티나무 고목으로 가는 길목인 문암저수지 아래 ‘문바위 동학기념공원’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1894년 동학 교주 최시형은 이 마을에 동학 대도소(동학의 집강소 및 일반사무를 보던 기관)를 설치하고 지냈다. 최시형은 이곳에서 동학도 총동원령을 내렸으며, 의암 손병희와 구암 김연국 등도 지도했다. 문바위에 새겨진 이름이 당시 동학군들의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문바위 위에 올라 마을을 바라보았다. 돌담 흙벽 골목이 남아있어 정겨운 풍경에 주렁주렁 감이 열린 감나무까지 어울렸다. 반백년 전에 멈춘 시간의 풍경이다.
제폭구민의 기치 아래 혁명의 깃발을 올린 동학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바위에는 꽃이 피었다. 누군가 바위에 꽃을 심은 것이다.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왔다. 꽃을 심은 분이었다. 동학 역사의 증거인 바위에 꽃을 심은 마음을 읽는다. 붉은 꽃송이가 역사의 바위 위에서 산다.
한곡리 문바위 마을에 남아 있는 느티나무 고목과 동학의 역사, 그 역사 위에 꽃을 피게 한 사람의 마음을 품고 운해와 일출로 유명한 옥천읍 삼청리 용암사로 향했다.

左)충북 옥천군 용암사 마애여래입상
右)충북 옥천군 군서면 은행리 빨래터와 왕버들나무 고목. 고목 아래 마을 토박이 아저씨 두 분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용암사 숲을 거닐고 빨래터 왕버들나무 고목 앞에 도착하다
장령산 북동쪽에 자리 잡은 용암사는 숲에 안긴 둥지다. 절을 품은 산줄기 한쪽 날개에 탑 두 개 놓인 소나무 숲이 있고 다른 한쪽 날개 아래에는 종각이 있다. 동쪽으로 열린 공중으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상상하며 절 뒤 바위절벽에 새겨진 부처상을 보러 산으로 올라갔다.
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이라는 이름의 부처상은 통일신라 혹은 고려시대 초기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에 이곳에 올라 망국의 한을 울음으로 토해냈다는 이야기와 훗날 사람들이 마의태자를 추모하며 바위에 부처상을 새겼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마애여래입상 위로 오르는 데크길을 따라가면 세 개의 전망대가 나온다. 3전망대를 지나 1, 2전망대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장령산 줄기가 어떻게 흘러 어디로 잦아드는지, 저수지가 있는 들녘 넉넉한 풍경의 끝이 어느 마을에 닿는지, 옥천의 산하를 굽어보는 동안 시간은 흘러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발길을 재촉했다.
옥천군 군서면 은행리에는 그야말로 ‘우물가에 버드나무’ 같은 ‘마을 공동 빨래터에 왕버들나무’가 남아 있었다. 230여 년 된 왕버들나무 그늘 아래 빨래터를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이용한단다. 마을 앞 시냇물에 보를 만들어 물이 모이게 하고, 그 물을 마을로 흐르게 하여 빨래터를 만든 것이다.
빨래터 왕버들나무 남쪽과 북쪽에도 왕버들나무가 자란다. 북쪽 왕버들나무 주변에는 수문을 만들어 마을 앞 들녘으로 물을 대 농사를 짓는다.
빨래터 왕버들나무 아래에 앉아 아까부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아저씨 두 분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왕버들나무 그늘은 빨래터이자 쉼터다. 정자에 앉은 할아버지는 아까부터 손주 재롱에 웃음이 한가득이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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