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어머니들의 기도
'안동민속박물관 ‘기자(祈子)습속 ’'

조명이 어두운 1층 전시실에서 유독 강열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마치 외가에 온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킬 만큼 친숙한 풍경은 기자(祈子) 습속을 재현해 놓은 전시물이었다. 커다란 남근석과 개다리소반, 정화수 그릇. 그 앞에서 치성을 드리고 있는 곱게 쪽진 머리의 여인과 겹쳐지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외할머니였다.
간절한 심정으로 정화수 앞에 앉아있는 여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붙잡힌 것은 평생을 낮달처럼 숨죽이고 사시던 외할머니의 삶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리라.
외가는 딸만 여섯이라 동네에서도 딸 부잣집이라고 불렀다. 외할머니는 딸 여섯 명과 아들 네 명을 낳았는데 이상하게도 아들은 네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 평생 아들에 대한 한을 안고 사셨다.
단양이 기자(祈子) 풍습이 성행했던 안동과 가까운 탓도 있었지만, 외할머니는 그 시대 어머니들이 주로 믿고 의지하던 민간신앙에 심취해있었던 것 같다. 조항신이 있다며 부엌에도 정화수를 떠놓고, 뒤란 장독대 위에 돌탑을 쌓고 남근석 앞에 개다리소반을 놓아 신성한 장소로 만들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이 마치 당신만의 잘못인양 족쇄를 안고 사는 외할머니는 삼신할머니께 손가락의 지문이 닳도록 빌고 또 빌었다.



기자(祈子)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자식을 점지해달라고 삼신할머니께 비는 습속이다. 지역에 따라 남근석 같은 돌이나 나무에 치성을 올리는 치성 기자와 부적같이 특정한 물건을 몸에 지니거나 음식을 먹어 아들을 주문하는 주문 기자가 있는데 안동지역에서는 치성 기자가 성행했다고 한다.
외할머니도 치성 기자 습속을 신앙처럼 믿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무엇이든 귀한 것은 가장 먼저 남근석 앞에 올리고 절을 했다. 초하룻날에 만드는 팥시루떡같이 특별한 음식은 물론 그해 농사를 지은 것 중에서도 가장 실하고 좋은 것만 올렸다. 그만큼 가정을 이룬 딸들이 무탈하게 아들을 낳길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은 간절했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장녀인 친정어머니가 혼인해 첫 아이를 잉태할 무렵 십리길을 걸어 아들 셋을 낳은 산모의 속옷을 얻어다 친정어머니께 입혔다. 남이 입던 속옷이라 안 입겠다고 울먹이는 어머니한테 당신 앞에서 직접 속옷을 갈아입게 했다. 외할머니의 정성에 삼신할머니도 감복했는지 친정어머니는 결혼한 지 2년 만에 아들 둘을 내리 낳아 외할머니의 한을 풀어주었다.
간절한 듯 두 손을 모은 여인의 모습 위에 비손 하는 외할머니가 나타나며 외할아버지의 얼굴도 언뜻언뜻 보이는 듯했다. 남아선호 사상이 심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외할아버지는 대를 잇지 못하는 딸자식은 남의 집사람이라며 자식으로 치지 않으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50년이 지났고 어린아이였던 내가 벌써 외할머니 나이가 되었다. 왜 그랬는지. 기자 앞에서 서른 살이 넘은 딸애가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하던 말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인간의 정서까지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로 지방 소멸의 위기도 심각하고 급속도로 빨라지는 고령화를 생각하면 관망할 일만은 아닌 듯싶다.
마치 외가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민속박물관 기자(祈子) 습속 앞에서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필연적인 이유를 갖고 생겨난다지만, 그 시대에 우리는 저렇듯 지극한 어머니들의 치성(致誠)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머니들은 눈에 나무 한그루 심고 평생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더 귀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출생의 의미를 귀히 여긴다는 기자 습속 앞에서 한참 동안 발을 떼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자식을 바라는 어머니의 기도가 닿아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경건한 마음마저 들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과 자녀를 데리고 온 젊은이들도 신기한 듯 기자 습속을 관람했다. 개다리소반 위에는 박물관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던져 놓은 동전과 돌멩이들이 눈에 띄었다. 소반 위에 흩어져 있는 동전 위에 마치 외할머니와 친정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은색 동전 한 개를 보탰다. 기자(祈子)의 의미는 아니지만, 외동인 딸애의 앞길이 무탈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였다.
코로나가 사라지고 또 시간이 주어지면 딸애와 함께 외할머니를 느낄 수 있는 이곳을 다시 찾으리라.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해드려야겠다. 당신이 그토록 귀하게 여기던 손주들이 결혼해서 모두 아들을 낳았으니 그곳에서는 비손 한 두 손 풀고 마음 편히 지내시라고.

EDITOR AE류정미
박종희 작가
이메일 : essay0228@hanmail.net
2000년 『월간문학세계』수필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전국시흥문학상, 매월당 문학상, 김포문학상
2015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제1회 119 문화상 소설 최우수상 수상 외 다수
2008년 ~ 2019년까지 중부매일, 충북일보, 충청매일에 수필 연재
저서: 수필집 『가리개』『출가』
한국작가회의, 한국산문작가협회, 충북작가회의 회원
청주시, 세종시 수필창작 강사. 충북작가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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