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그 사람이 추천하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음악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안나 예이츠 서울대학교 인류음악학 교수'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 대부분은 판소리를 즐겨 듣든 즐겨 듣지 않든 판소리에 대해 ‘알고는 있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판소리를 연구하는 인류음악학자이자 소리꾼이기도 한 안나 예이츠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많은 한국인이 유럽의 관객만큼이나 판소리라는 장르를 잘 모르고 있으며, 오히려 고정관념에 갇혀 판소리를 즐길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관객과 함께 만드는 공연, 판소리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鼓手) 그리고 관객이 함께 만드는 공연입니다. 한 편의 이야기를 소리로 들려주는 판소리는 음악인 동시에 연극적인 성격이 강한데, 소리꾼 한 사람이 여러 등장인물의 감정과 스토리의 긴박감을 소리와 발림[科]*으로 표현해 내요.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소리꾼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관객의 추임새죠.”
안나 예이츠 교수는 런던대학교에서 문화정책을 연구하던 당시 런던 한국문화원에서 판소리 <적벽가> 공연을 보고 단번에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당시 해외 관객을 위해 제공 되었던 자막이 필요없게 느껴졌을 정도로 이야기의 서사와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압도적인 표현력은 그가 판소리에 호기심을 느끼고 인류음악학자의 길로 들어서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01. 판소리 <심청가>를 공연하는 고 성창순 보유자.
전통 판소리는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등 다섯 마당이다.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02. 11월 스위스에서 ‘세계 서사시’를 주제로 열린 인류음악학회 중 창작 판소리 <유관순가> 공연 모습.
현장성을 높이기 위해 작고 낮은 무대에서 공연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사진. yuri pires tavares)
03. 안나 예이츠 교수.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인류학으로 학사, 정치학으로 석사, 인류음악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인류음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판소리 소리꾼으로도 활동 중이다.


“판소리를 더 알고 싶어서 찾아본 논문 속 판소리는 역사의 일부로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어요. 현대의 판소리를 알기 위해 직접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소리꾼에게 선생님은 한 분이지만, 양해를 구하고 여러 선생님께 소리를 배웠어요. 외국인을 위한 단체수업, 동아리와 개인 교습까지 두루 경험했죠.”
연구하는 음악 장르를 직접 배우고 경험하는 것은 인류음악학의 학문적 방법론이기도 하다. 안나 예이츠 교수 역시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 민혜성 명창에게 사사받은 소리꾼으로 적지 않은 무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요즘도 공연을 계속하고 있는데, 소리꾼으로 무대에 설 때마다 연구자로서도 배우고 느끼는 것이 많다. 그중 북촌문화축제 공연은 소리꾼으로서도, 판소리 연구자로서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판소리는 원래 큰 무대를 위한 공연이 아니에요. 사랑방이나 마당, 시장처럼 관객과 눈도 맞추고 목소리도 주고받을 수 있는 거리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죠. 그날 공연장은 판소리를 공연하기 딱 좋은 한옥 공간이었고, 소리를 진심으로 즐기는 관객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그분들의 호응 덕에 소리꾼으로서 제가 가진 기량 이상으로 날아오를 수 있었어요.”
판소리는 비교적 자유롭게 추임새를 넣을 수 있어서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공연 분위기가 좋아진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의 마음이 동(動)하는 때에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 발림[科]: 판소리에서 소리꾼이 가락이나 사설의 극적인 내용에 따라 손·발이나 표정, 부채로 표현하는 몸짓을 뜻한다.

左) 창작 판소리 <유관순가>를 공연하는 소리꾼 김수미 명창과 고수 조용복 명고 (사진. yuri pires tavares)
中) 창작 판소리 <유관순가> 공연 장면. 소리꾼은 소리뿐 아니라 온몸과 부채를 활용한 발림으로도 감정을 전달한다. (사진. yuri pires tavares)
右) 판소리 <흥보가>를 공연하는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정순임 보유자. 안나 예이츠 교수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입문자가 즐기기 좋은 마당으로
다양한 감정선이 균형감 있게 배치되어 있고 흥겨운 재담 장면이 많은 <흥보가>를 추천한다. (사진. 문화재청)

과거의 문화재에서 이 시대의 음악으로
판소리 공연에서 관객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판소리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추임새이다. 클래식 연주회에서 박수가 허락되는 때를 알아야 하는 것과 비슷한데, 판소리는 비교적 자유롭게 추임새를 넣을 수 있어서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공연 분위기가 좋아진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의 마음이 동(動)하는 때에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판소리를 알리는 노력은 여러 단체를 통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10년 넘게 판소리 워크숍을 운영하고 판소리대회도 열었던 한국소리페스티벌(K-Vox Festival)이 있고, 올해부터 활동을 시작한 세계판 소리협회도 있죠. 이런 단체에서는 판소리를 소개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 왔어요. 특히 공연을 할 때는 판소리를 처음 접하는 관객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무척 공들여 준비합니다. 먼저 판소리가 어떤 장르인지 소개하고 추임새 요령도 알려주죠.”
이런 노력이 쌓여 요즘은 유럽에도 판소리를 즐길 줄 아는 관객이 많이 생겼다. 안나 예이츠 교수는 해외에서 판소리를 알리며 검증된 방법을 한국에서도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판소리가 현대 한국인이 즐기는 음악으로 향유되지 못한 채 과거의 유물로 잊혀 간다면 판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노력도 무의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음악학은 문화 간 비교연구를 기본으로 하지만,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는 시대 간 비교연구도 진행합니다. 판소리의 경우 현대 한국인의 선입견이 때로 저 같은 외국인의 문화적 차이보다 더 큰 장벽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장르라는 생각에 즐길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거죠.”
대중가요를 즐기기 위해 모든 가사를 알아들을 필요는 없는 것처럼, 판소리를 즐기기 위해서도 모든 내용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굶주림에 지쳐 먹을 수 있는 ‘무엇이라도’ 얻기를 청하는 조선인 흥부의 간절함을, 먹을 것이 풍족한 현대인도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떠올리며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매력에 푹 빠질 수도 있을 판소리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열린 마음이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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