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깽깽이풀
'글. 이정연'

제주에 사는 지인이 대구에 왔다가 깽깽이풀 사진을 함께 대화하는 밴드에 올려 주었다.
깽깽이풀은 흔히 눈에 띄는 야생화가 아니다. 수목원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자생지에서나 드물게 볼 수 있다. 카메라를 든 지 올해로 17년인데 한 번도 자생지의 깽깽이풀을 본 적이 없다.
가녀린 줄기 연보라빛 꽃잎이 하늘하늘 흔들리면 꿈속에 본 소녀처럼 예쁘다. 다섯 개 꽃잎은 분명하게 갈라져 어떤 렌즈에도 예쁘게 담긴다. 항공샷으로 담아도 예쁘고 옆에서 담아도 단아하다. 다른 사람이 먼 곳으로 출사 가서 사진을 찍어오면 나는 언제 저 예쁜 꽃을 한 번 찍어보나 부러웠는데 가까운 곳에 그 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다니 축복이 따로 없다.





얼른 톡을 보냈다.
“깽깽이 있는 곳 알려 줘요.”
사진인들은 귀한 꽃의 자생지를 절대로 알려 주지 않는다. 귀한 꽃일수록 욕심에 사진을 찍고는 꽃을 훼손하는 사람도 가끔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는다고 해도 알려주면 금방 소문이 나고 우르르 몰려가서 사진을 찍는 바람에 발길에 꽃이 밟히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꽃이 있겠나? 깽깽이는 금방 사그라지던데.......”
“그렇다 해도 깽깽이도 지각하는 놈이 반드시 있을 거예요.”
나는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또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더 포기하지 못한다. 다 지고 없으면 깽깽이 씨앗이라도 보고 그곳에 정말 깽깽이 풀이 있는지 시든 잎을 확인하는 것만도 내겐 큰 성과다. 올해가 아니면 또 내년을 기약하면 되니까. 오후 2시경이면 좋은 빛이 들어오는 장소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아침 출근하면서 카메라를 챙기는 내게 남편은
“사진 찍으러 가려고? 나는 오늘 결혼식 가야 되는데......” 그랬다.
“당신은 결혼식 가시고 저는 사진 찍으러 가면 되지요. 한 시간 정도만 나갔다 올 거예요 점심시간에.”
“사무실은 누가 지키고? 나중에 가면 안 돼?”
“깽깽이풀한테 물어 봐요 좀 있다가 져 줄 수 있는지…….”
내가 이렇게 한 번 비뚤어지기 시작하면 밧줄로 묶어 놓아도 갈걸 아는지 더는 남편도 말이 없었다. 설렌다. 어떤 남자도 날 이렇게 설레게 한 적이 없었다. 카메라 배터리가 충분한지 렌즈에 먼지가 쌓이지는 않았는지 피사체를 가장 예쁘게 표현해 주는 접사용 렌즈가 빠지지 않았는지 카메라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연신 시계를 쳐다보며 안절부절이다.





나는 톡 내용만 기억하고도 단번에 산길 무덤에 있는 깽깽이풀을 찾았다. 얼마나 깽깽이풀을 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던지 긴 카톡 내용이 사진 찍듯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산길로 한참 가다가 토끼가 다닌 듯 조금 반들반들한 길이 위쪽으로 나 있는 쪽을 유심히 보면 산소하나가 보이고……. ‘ 마치 족집게 무당처럼 그런 곳을 찾았다. 역시 상황은 현장에 가봐야 안다. 지인의 말만 믿고 다 시들고 지지부진 남은 한 송이라도 있으면 클로즈업 하려고 생각하며 출발했는데 깽깽이풀은 무덤에 아직도 소복소복 피어있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생전에 나처럼 깽깽이풀을 엄청 좋아했는지 무덤 위에 마치 일부러 심은 듯 소복소복 피어있었다. 그것도 차를 타고 먼 심산 계곡까지 가야 하는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일하다가 밥 한 끼 거르고 잠시 점심시간에도 다녀올 수 있는 곳에 있다니 행복해서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누가 지나갈 새라 엎드려서 조심조심 원도 없이 깽깽이풀을 담았다. 어떤 건 무리지어 하교하는 새침한 여학생들을 닮았고 어떤 꽃은 수업이 끝나고 피아노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던 보랏빛 원피스의 음악선생님을 닮았다. 점심도 거른 채 정신없이 담은 사진이 궁금해서 단숨에 산길을 뛰어 내려왔다.
마침내 원을 풀었다. 내 사진 파일에도 이제 깽깽이풀이 있다. 마치 아무도 가지지 못한 비밀의 화원을 가진 듯 행복하다. 컴퓨터에 바탕화면으로 해놓고 휴대폰에 바탕화면으로도 해 놓았다. 친구들에게도 휴대폰 바탕화면용으로 보내주었더니 모두 예쁘다며 놀랐다. 열망을 잊지 않으면 언제가 기회가 온다는 것 그 기회가 왔을 때 꼭 잡고 놓치지 않으면 꿈은 나의 현실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하였다.

EDITOR AE류정미
이정연 작가
이메일 : manjuyeon1@hanmail.net
2003년 4월 수필문학 등단.
2004년 중부매일신문 세정유감코너 짧은 수필 집필 (1월-4월까지)
2004년 여름호 수필 ‘망월사에서’ 에세이문학 등단
2004년 영남수필 회원 –2019년
2006년~2008년 에세이문학 올해의 수필 20선 추천
에세이문학 수필과 비평 에세이21 수필사랑 대구문협지 다수 기고
2011년 - 현재 대구 달서구 현대힐공인중개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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