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손의 이력
'글. 최명임'

참 볼품없다. 손가락이 짧고 끝이 뭉툭한 데다 못생긴 손톱이 조갑지처럼 붙어 있다. 손바닥도 다른 사람에 비해 넓고 손등은 그에 걸맞게 살집이 두둑하다. 손끝이라도 매우면 묻혀가련만. 어쩌다 마음이 내키면 반지를 끼어보는데 돼지 목에 진주를 달고 있는 기분이 들어 하루도 못가고 벗어버린다. 가락지는 세모시 적삼 아래로 빠져나온 섬섬옥수에 끼어야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내 손은 민낯의 수수함이 차라리 돋보이는 편이다. 지나온 날을 돌이켜 보면 일복은 많은데 돈복은 그다지 없는 손이다. 그래도 애써 분발한 나의 이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올찬 손이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이 대략 보인다. 수 없이 보아오는 손이지만, 그들의 삶이 다 다르듯이 느낌도 다르다. 손 전문 모델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진정 그녀의 손을 두고 섬섬옥수라 하겠다. 30여 가지 화장품으로 관리를 하고 신주 모시듯 한다. 세모시같이 결이 곱기도 하지만 연분홍 살색이 돋보인다. 꽃가지에 걸린 달처럼 긴 손가락 끝마다 반달이 걸려 있어 달빛을 머금은 손이 해맑기도 하다. 그녀가 나풀나풀 손짓을 하면 누구의 심장 하나가 굳어버릴 것 같다. 생전 물 묻히고 산 적이 없는 어느 왕녀의 손 같아서 무수리 같은 내 손을 바라보다 그만 부끄러워진다.





그 손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순결한 아기의 손과 비교 할 수는 없다. 기도하는 손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노동으로 다져진 손도 비할 데 없이 훌륭하다. 삶의 끈을 놓은 사람의 손도 만져보았는데 힘이 다 빠져버린 두 손은 창백하지만, 그리 편안해 보일 수가 없었다. 손도 그 사람을 닮아 텅 비어 있었다.
이웃에 살고 있는 그의 손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온 이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 흔적을 대변하듯 손가락 하나가 없다. 단칸방을 전전하던 어느 가족의 보금자리를 지을 때 잃었다고 했다. 그의 손은 갑각류처럼 뻣뻣하고 거칠기 짝이 없다. 흉터가 곳곳에 나 있고 손가락은 닳아서 짧아진 듯 무뭉스름하다. 굳은살에, 지문이 남아있는지 궁금하고 손톱은 아예 자랄 새가 없는 것 같다. 사연 많은 그 손으로 술잔을 들면 주변이 울리도록 목소리가 우렁우렁해진다. 나는 그의 손을 우리 어머니 손과 사랑스러운 피아니스트 희아의 손 다음으로 꼽는다.
어머니의 손은 덕석같이 거칠다. 저승꽃이 만발했고 내어 준 것이 많아서인지 지문도 닳아 희미하다. 손바닥에는 어머니의 생애를 말해주듯 수 갈래 길이 나 있는데 주름살처럼 깊이 패었다. 95년 이력을 고스란히 담고도 온기만 느껴질 뿐 힘이 없다. 더 움켜쥐면 집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 손으로 갓 난 증손자의 손을 잡으셨다. 부서질라, 세상 때 전염될라, 조심스러워 하셨는데 아기는 마다않고 그 손을 꼬옥 맞잡았다. 새로 오신 손님과 조만간 떠날 객의 인사 같아서 공연히 눈물겨웠다. 오셨으니 소풍 즐기시라, 그간 즐거우셨느냐고 두 영혼이 교감하는 듯했다. 한 세기를 살아오신 어머니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물이 맺혔다. 아기가 움켜쥔 손을 놓지 않아 살그머니 벌리는데 힘이 만만치 않았다. 열 달 내내 세상과 맞설 준비를 하였나 보다.
선천적 장애로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는 희아가 건반 위에서 묘기를 부릴 때, 그 아름다운 노동은 누구보다도 위대한 손의 유희이다. 그녀의 손이 건반위에서 소용돌이치면 보는 이 듣는 이의 가슴도 따라 감동이 휘몰아친다. 그녀를 받친 어머니의 손에는 또 얼마나 많은 노동과 땀과 눈물이 맺혔을까.





그는 수수하고 순박한 노동자이다. 헛물만 켜는 백수건달이나 노동의 위대한 가치를 모르는 인간들의 불순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기 일에 당당하다. 웬만하면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자녀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시켰고 그 덕분인지 내놓고 자랑해도 좋을 만큼 잘 커 주었다. 자랑해도 흔쾌하게 수긍할 텐데 언제나 겸손하다. 그다지 부를 누리고 살아 보지 못 했고 빨간 딱지가 집안 곳곳에 붙을 만큼 험한 시간을 보냈어도 낙천적이다. 나는 그의 정직한 사고에 한 번도 토를 달아 본 적이 없다. 사람이 생각대로 한결같이 살 수 없지만, 그리 살고자 애쓰는 노력이 보이기 때문이다. 손이 그를 닮아서 불굴의 의지와 그 사람의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은 손가락이 짧아지고 음식을 만드는 이의 손가락은 점점 길어진다는 말이 있다. 삶의 가장 아름다운 영역을 이리 온당한 은유로 표현해 놓은 그는 누구일까. 누군가를 위해 노동을 하느라 닳아버린 손의 공덕을 말하는 것일 게다. 또한 노모의 생신 날 바치는 딸의 애틋한 국수 한 그릇의 의미처럼 음식으로 사람의 명을 이어주는 것도 공덕이라 말하는 것이다. 골똘히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없는, 그러나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할 일을 어떤 이가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우리는 그 미덕을 달리 상생이라 표현한다.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치고 아름답지 않은 손이 있으랴. 변화무쌍한 세상을 향해 무소처럼 치닫지 않고 박쥐처럼 웅크리지 않고 천천히 우회하는 아름다운 저 손들이 세상 한 영역을 꾸려간다는 사실에 우리의 심장은 또 한 번 고동쳐야 하리라.
내 손에서 나간 밥상의 온기로 따지자면 나도 조금 길어졌을까. 아니 노동으로 짧아진 건가? 두 손을 펴고 앞뒤로 살펴보니 굵어진 마다마디에 땀이 배었다. 섬섬옥수는 아니지만, 부끄러운 손도 헛물만 켜는 손도 아니었다. 손 크림 한 줌 덜어 바르고 애쓴다, 쓰다듬었다. 글말로 뱉어놓고 보니 외람되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내어볼 다짐이기도 하다.
아무튼 사람들의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을 똑 닮았다.

EDITOR AE류정미
최명임 작가
이메일 : cmi3057@naver.com
2014년 문학저널 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 회원, 내육문학회원 / 충청타임즈 ‘생의 한가운데’ 필진(전)
청주교차로 신문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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