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음 세대 기록인
청주동물원 수의사 ‘김정호’
'청주 작은 동물원의 의미 있는 변화를 기록하여 야생 동물과 공존을 위해 노력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의사’로서 다음세대 기록인에 선정되셨는데요,현재하시는 일이 기록인의 선정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을까요?
안녕하세요, 청주 동물원에서 수의사로 일하고 있는 김정호입니다. 2019년에 왕민철 감독님이 청주동물원을 기록한 ‘동물,원’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고 이어 작년에는 제가 동물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코끼리 없는 동물원’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영화가 협업이었다면 이후 발간한 책은 오롯이 저의 기록인 셈이죠. 동물원이라는 곳에 20년 넘게 근무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록해야 할 것들과 기록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그게 동물복지와 연결되어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대되었는데 그 덕에 이런저런 자리에 많이 불려 나갔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엮어져 ‘다음세대 기록인’으로까지 선정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서 ‘코끼리 없는 동물원’은 동물원의 기록이자, 선생님 개인의 기록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가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쓰게 되셨나요?

먼저, 동물원에서 일했던 저에 대한 기록을 저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동물원에서 20년 넘게 근무를 했지만 전반기 10년은 거의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래서 이 책을 쓸 때도 거의 뼈대만 남아있는 흔적을 되짚어서 썼습니다. 제가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더 동물원에서 근무를 할 텐데, 이 경험도 역시 기록하지 않으면 제 기억에서 없어질 거란 생각이 동기가 되었죠. 또 한국에서는 저처럼 한 곳의 동물원에서 오래 근무하는 케이스가 많이 없습니다. 청년기의 대부분을 청주동물원에서 보냈으니 그 역사의 흐름을 가장 잘 아는 것도 역시 저라고 생각했고요. 우리나라 동물원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창경원에서 시작해 100년이 넘습니다. 그런데 옛 사진들은 종종 남아있어도 이 동물원을 서사적으로 알 수 있는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청주동물원 역시 97년에 개원했으나 제대로 된 기록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고요. 이 책은 저를 위한 기록임과 동시에 동물원을 위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동물원이 과거 유흥을 위한 전시 공간에서 현재는 어떠한 사회적 역할을 가지고 존재하는지, 그 서사적인 맥락을 이 책을 통해 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나의 바람은 학교 선생님들이 이런 기록을 많이 접하셨으면 합니다. 동물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이 많이 필요한 시점에서 그 확산의 중심은 교육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종종 학교로 강연을 하러 갈 때, 저의 쓰임이 제대로 잘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스라소니 삼형제 행복·희망·꿈돌이


동물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교육현장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학생 10명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선생님 한 분을 깨우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불러온다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늘 만나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선생님이잖아요. 한 분의 선생님이 동물복지, 그리고 야생동물과의 공존에 더 열린 시각으로 아이들을 교육한다면 동물원은 그 선생님의 건강한 파트너로서 생태교육의 장이라는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에서 소개된 ‘독수리 청주와 하나’의 이야기 역시 동물원의 존재 의미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코끼리 없는 동물원’으로서 청주동물원은 이미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고 보이는데요.
네, 우선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해나가는 중입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야생에서 구조되었으나 홀로 살아갈 수 없는 동물들을 동물원에서 보호하고, 동물원의 건강한 아이들은 야생 방사훈련을 위해 ‘야생동물구조센터’로 보내는 일입니다. 그렇게 맞바꾼 동물이 바로 독수리 ‘청주’와 ‘하나’입니다. 부리가 비뚤어진 ‘하나’는 사냥이 힘들어 야생에서는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실제 구조 당시에도 거의 아사 직전의 상황이었죠. 이런 스토리는 관람객들에게 좋은 교육이 되기도 합니다. 웅담 체취를 위해서 길러지던 곰을 저희가 구조한 사례도 마찬가지죠. 본래는 자연 생태계에서 살았던 동물들이 불의의 사고로 혹은 인간의 욕망으로 이곳에 오게 된 과정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건강한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겠죠. 이런 과정들이 바로 동물원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동력이 되리라 생각했고, 청주동물원이 다른 동물원들보다는 비교적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左) 동물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동물원을 리모델링 하는 모습 右)코끼리 없는 동물원


그리고 외래종은 차근차근 내보내고 한국 토종 동물들만 남겨두거나 들여오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 산천에서 너구리와 오소리는 흔한 동물인데 이를 육안으로 구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코끼리의 특징은 정확하게 그려도 오소리나 너구리는 그렇지 않아요. 한국의 토종 동물들은 우리 산야의 보호색을 띠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외래종보다는 덜 화려한 면이 있어 동물원에서 소위 인기 있는 동물이 아니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한국 토종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그들을 건강한 서식지로 돌려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곳이 바로 동물원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우리와 함께 살고있는 동물들을 교육하는 곳으로 나아간다면, 동물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동물을 만나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토종 야생동물에 관한 연구와 기록이 더욱 확산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물원에서는 이러한 연구와 기록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궁금한데요.

동물관련 일지는 매일 남기지만 반복적인 부분이 많아 ‘Ctrl c, Ctrl v’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단순히 쓰기 위한 기록보다는 중요한 부분을 추출해 가공하고 편집하는 기록이 더 유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야생동물의 특성상 사람에게는 본인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해요. 야생에서는 약하다는 것이 곧 포획물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니까요. 이상이 있어도 자꾸 감추니까 사람이 잘 찾아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동물이 혼자 있을 때의 CCTV 화면을 돌려서 체크합니다. 많은 데이터가 쌓이는 만큼 과거 10년보다 최근 몇 년간이 동물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보들은 자동으로 저장되는 편리함 뿐, 데이터가 유의미한 기록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가공이 필요합니다. 필요 구간을 발췌하고 편집하는 것이죠. 그런 기록이 이제는 더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물의 유전자 기록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서방’이라고 이름 붙인 붉은여우 에피소드를 책에서 읽으면서 국내의 야생동물 유전자 관리 시스템은 현재 어떤 단계인지 궁금했습니다.
동물의 유전자를 관리하는 이유 중에는 사라진 동물을 복원하거나 멸종위기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붉은 여우의 기록은 국립공원공단 생물종보전원 중부센터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 호랑이의 경우에는 근친으로 인한 장애를 방지하고자 동물원에서 가계도를 관리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서울대공원을 중심으로 이러한 기록을 통합하여 구축하는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특정 동물에 대해서 코디네이터를 두어 한 기관이나 전문가가 동물의 생체정보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는데요, 우리나라도 서서히 이런 정보들을 모으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보가 모여서 계열화·체계화되면 그 자체로 힘을 발휘하는데, 이 기록들이 결국에는 야생동물 복지를 위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물과 사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선생님의 철학을 담아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이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의 답을 듣고 싶습니다.
코로나로 많은 것이 불편해졌지만 이로 인해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깨닫는 계기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동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은 인간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죠. 동물원이 과거처럼 사람들의 오락거리가 아니라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서 야생동물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원서식지로 돌려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시민들에게 교육하는 역할도 동물원이 해야 합니다. 청주에 있는 작은 동물원의 의미 있는 변화를 기록하여 야생동물과 공존을 위해 노력했음을 다음세대에 전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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